곁가지가 많은 말은 깨지기 쉽다.
몸통에서 뻗은 가지는 나름 튼튼하고 풍성하다. 몸통에서 뻗은 가지는 다시 수많은 곁가지를 낳는다. 곁가지에 새순이 돋고 움이 튼다. 그리고 꽃 피고 열매 맺는다. 곁가지가 너무 많이 솟으면 오히려 꽃과 열매가 부실해진다. 곁가지를 적당히 솎아내는 가지치기를 해야 실하고 맛있는 열매를 수확한다. 곁가지 자르는 일은 어렵지 않다. 사방으로 뻗은 곁가지들은 힘이 없어 잘 부러진다. 부러질 때면 시끄럽고 소란스럽다.
나무의 몸통은 잘 부러지지 않는다. 아무리 작은 나무라도 쉽게 뽑을 수도 없다. 몸통은 무겁고 진중하다. 그걸 건드리면 나뭇잎과 가지들이 요동친다. 나무를 제대로 제거하려면 몸통과 뿌리를 뽑아야 한다. 그걸 그냥 두고 잔가지를 백날 쳐봤자 나무는 요지부동이다. 곁가지는 정답이 아니고 핵심이 아니라는 뜻이다.
과제를 추진하거나 프로젝트를 수행할 때도 마찬가지다. 핵심을 보지 못하고 변죽만 울리면 아무것도 안 된다. 다른 사람에게 뭔가를 설명하는 일만 해도 그렇다. 내용을 제대로 아는 사람은 간결하게 말한다. 중언부언하는 것은 당사자가 핵심을 분명하게 이해하지 못한 경우가 태반이다. 사람에 따라서는 말주변이 없어 장황하게 설명하는 사람도 있다. 그렇지만 대개 내용을 잘 모를 때 말이 길어지고 사족이 많아진다.
토론에서 핵심을 보지 못하고 변죽을 울리면 깨지기 쉽다. 상대의 허점을 파고들기 위해서는 논쟁의 본질을 정확하게 이해해야 한다. 본질에 부합하는 논리적 근거를 제시하지 않으면 상대는 수긍하지 않는다. 애초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을 설득하기는 무척 힘들다. 차근차근 말해서 설득이 된다면 다행이지만, 토론에서는 그게 잘 안된다. 각자 자기 논리로 무장하고 토론장에 나오기 때문이다.
앗, 이성이 납치됐다.
논리로 상대를 꺾는 일은 후유증이 남기 쉽다. 되도록 상대의 마음이 상하지 않도록 해야 하는데, 그게 말처럼 쉽지 않다. 토론이 격해지고 논쟁이 치열해지면 누구든 흥분하게 마련이다. 예상치 못한 논리가 나를 무력하게 만들면 머리가 하얘진다. 심한 경우 상대가 이죽거리면 순간적으로 화가 머리끝까지 솟는다. 자칫하면 이성을 잃고 화를 폭발하기 쉽다. 아뿔싸, 우리 뇌의 감정 조절 기관인 편도체가 극도로 화가 나 이성을 마비시키는 '편도체 납치 현상'이 일어난다.
우리 뇌의 중간층에는 감정을 만드는 변연계가 있다. 이곳은 뇌 가장 안쪽에 있는 본능과 제일 바깥쪽의 이성을 연결한다. 감정을 생성하고 조절하는 변연계에서 편도체는 공포 반응과 흥분 조절에 깊숙이 관여한다. 원래 우리 뇌는 본능, 감정, 이성이 조화를 이룰 때 성숙한 인격체가 된다. 이들 세 개의 영역이 가끔 따로 놀 때가 있다. 기분 나쁜 일이 생길 때 편도체는 이성의 통제를 받지 않고 제멋대로 행동하고 화를 폭발시킨다. 토론에서 이런 모습을 보이면 백전백패할 수밖에 없다.
토론을 잘하기 위해서는 평소 편도체를 강하게 단련해야 한다. 쉽게 흥분하지 않는 사람이 그런 사람이다. 그렇다고 편도체만 강하다고 해결될 일은 아니다. 토론은 성격 좋은 사람을 선발하는 경연장이 아니다. 자기 논리가 충실하지 않으면 자기 마음을 통제하기 힘들다. 몸통을 틀어쥐고 곁가지는 버리는 지혜가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부분만 보지 않고 전체를 보는 능력을 길러야 한다. 그래야 상대가 뭐라고 말해도 느긋하게 상대를 배려하며 말할 수 있다.
논쟁이나 토론을 잘하는 기술을 알려주는 글도 많다. 상대가 무슨 말을 할지 준비를 철저히 하라든가, 미리 브레인스토밍을 철저히 하라는 충고도 있다. 그것 말고도 세부적인 팁도 많고, 그것들이 틀린 말은 아니다. 토론 하나만 놓고 보면, 가장 뛰어난 사람들은 고대 그리스 시절의 궤변론자들이다. 그들은 상대의 허점 파고들기, 말꼬리 잡기, 말 비틀기 분야에서 역대 최강이다. 그들과 붙으면 정상적인 현자들도 견뎌내지 못할 때가 많다.
궤변론자들은 교묘한 말발로 상대방을 교란하여 참과 거짓을 구분하지 못하게 만들어 논쟁에서 이긴다. 심지어 이들은 논리적으로 틀리거나 거짓조차 상대방이 쉽게 반박할 수 없게 하는 재주가 있다. 상대의 감정을 건드리거나 자존심을 자극해 상대의 마음을 뒤흔드는 데 탁월한 능력을 발휘했다. 고대 그리스의 현자인 소피스트 중에서도 오직 말다툼에 이기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사람이 궤변론자들이다. 이들의 궤변이 하도 심해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조차 이들을 '궤변가(詭辯家)'라 부르며 비난했다.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그런 궤변의 기술이 아니다. 참을 참이라 하고, 거짓을 거짓으로 밝히는 실력을 갖춰야 한다. 토론의 기술도 중요하지만, 토론의 근본 원리를 이해해야 제대로 토론을 이끌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평소 편도체가 과민하지 않도록 감정 조절을 잘해야 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충분한 지식을 습득하고 그것을 자기 것으로 소화해야 한다. 그렇게 되면 어떤 경우도 흔들지 않고 담대하게 토론에 임할 수 있다. 비록 내 논리가 틀렸더라도 흔쾌히 인정하는 사람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