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선하고 좋은 해산물을 얻기 위해 해녀는 하루에 몇 번씩 깊은 바닷속에서 물질한다. 제대로 된 장비 하나 없이 맨몸으로 물속으로 뛰어든다. 싱싱한 소라나 고등을 구하기가 쉬운 일은 아니다. 숨이 막히는 고통을 견디며 한 길 넘는 바닷속을 헤집는다. 해초 다발 사이에 숨어 있거나 바위 틈새에 위장한 놈들을 일일이 손으로 거둬야 한다. 시간이 흘러 물 위로 올라온 해녀의 걸망에는 청정한 해산물이 한가득하다.
시인은 맑고 고운 언어로 시를 지어 올리는 해녀다. 그는 푸른 언어의 바다에 풍덩 뛰어든다. 천 갈래, 만 갈래 얽힌 글의 바위틈에 몸을 숨긴 흑진주 닮은 언어 하나를 건진다. 들숨 날숨 참으며 찾은 아름다운 단어를 시의 망태기에 담는다. 시인은 해녀가 되어 깊고 넓은 언어의 바닷속을 헤집는다. 방금 건져 올린 등 푸른 언어와 은빛 언어로 예쁜 시를 짓는다. 청정 바다에서 방금 건져 올린 언어로 지은 시는 일상에 지친 사람의 마음을 따뜻하게 위로한다.
아름다운 시어나 감칠맛 나는 단어를 뽑아내는 일도 해녀의 물질과 다를 바 없다. 글 쓰는 이는 넓고 깊은 언어의 바다를 하루에 몇 번씩 오르내린다. 영민한 감각과 열정으로 망망한 바다에 뛰어든다. 바위틈을 헤집고, 해초 더미를 일일이 만지는 수고를 아끼지 않는다. 기어코 건져 올린 귀한 언어는 햇살에 황금색 비늘을 반짝인다. 눈이 부시게 고운 글을 지으면 그날 언어의 식탁은 풍성하고 감미롭다.
해산물이 식탁의 풍성함을 더하듯, 잘 갈고닦은 한 줄 문장은 영혼의 식탁을 맛깔나게 채운다. 시인은 깊은 언어의 바다에서 갓 건져 올린 싱싱한 단어들로 문장을 요리한다. 그런 글은 입에 착 감기고 가슴에 향기를 채운다. 아름다운 글을 짓기 위해서는 얼마나 많이 언어의 바닷속을 자매질 했을까.
솜씨 좋은 해녀와 재주 좋은 시인은 수없는 성공과 실패를 맛봤을 것이다. 그들도 조개껍질 하나 건지지 못해 앙가슴을 쥐어뜯는 날도 있었을 것이다. 빈 망태를 들고 집으로 돌아오는 해녀와 때깔 좋은 단어 하나 건지지 못한 시인의 뒷모습이 쓸쓸하긴 매한가지다. 그런 숱한 번민과 고통의 순간을 견디며 그들은 오늘도 물질에 나선다.
사람마다 글을 쓰는 나름의 까닭이 있고, 글의 향기도 다르다. 어떤 이의 글에는 가을 햇살에 잘 익은 사과 향이 그윽하다. 다른 이의 글에서는 봄 미나리의 상큼함과 속살 뽀얀 무의 시원함도 있다. 실한 햇볕을 아래 자란 청양고추의 톡 쏘는 맛이 나는 글도 있다. 이런 글을 읽으면 잃었던 입맛 돌아오듯 무딘 감동이 되살아난다.
갓 구워낸 빵의 부드럽고 고소한 맛과 같은 글도 있다. 버터와 잼을 발라 치즈와 함께 먹으면 프랑스의 카페가 눈앞에 아른거린다. 혀끝에 감기는 그 맛에 입맛을 다시다 보면 어느새 영혼은 포만감에 젖는다. 그런 글을 읽다 보면 탁한 내 마음이 깨끗하게 정화된다. 쉼 없이 언어의 바다에 뛰어든 글쓴이의 수고 덕분에 맑고 고운 언어의 맛을 즐길 수 있다. 인터넷과 SNS가 탁한 언어를 남발해도 그들이 있기에 여전히 아름다운 글을 맛볼 수 있다.
재주 없는 사람도 열심히 글을 쓰다 보면 아름다운 문장 한 줄 건질 수 있지 않을까. 늘 망태기 가득 빈 하늘만 채워도 쉬지 않을 것이다. 언젠가 햇빛에 반짝이는 싱싱한 단어와 문장 몇 개쯤 쓸 날이 오리라 기대해 본다. 끝내 그런 글을 만나지 못한다 해도, 부족한 재주 탓이라 여기며 받아들여야지.
삶도 마찬가지이다. 하루에도 몇 번씩이나 생존의 바다에 자맥질한다. 살아가는 일이 힘들고 고통스럽다 해도 포기할 수 없는 일이다. 무얼 하더라도 열심히 할 뿐이다. 훗날 누가 알아줄 것이며, 무얼 기약할 수 있겠는가. 아는 이 하나 없어도 그저 그렇게 살아갈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