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벽루 기둥을 잡고 통곡했다.
해동(海東) 제일의 문장가로 명성이 자자한
고려의 대시인 김황원(金黃元, 1045년 ~1117년)
그의 글은 중국에서도 크게 칭송받았다.
그런 그가 시를 쓰다 말고 통곡한 일이 있었다.
김황원은 대동강 부벽루에 올라 절경을 보고 넋을 잃었다.
아름다워도 이렇게 아름다울 수가 있을까.
그는 부벽루 정자에 걸린 다른 사람이 쓴 글을 모두 불태웠다.
마음에 드는 글이 하나도 없었다.
대신 직접 붓을 잡고
한 번에 글을 써 내려갔다.
"長城一面溶溶水(장성일면용용수)
大野東頭點點山(대야동두점점산)"
긴 성곽의 한쪽에는 강물이 넘치고,
넓은 들 동쪽으로 점점이 산이로구나.
시작은 너무 좋았다.
거기서 붓이 멈추고는 한 글자도 나가지 못한다.
강변의 아름다움을 글로 완성하지 못하고 끙끙거렸다.
부벽루 난간 앞으로 나아가 바라보기를 몇 시간째
해는 이미 지고 풍경은 어둠 속으로 사라진 지 오래다.
새하얀 종이에 남은 긴 여백
붓을 잡은 그의 손은 떨기만 했다.
끝내 부벽루 기둥에 얼굴을 묻고 통곡했다.
우리는 속으로 운다.
일이 잘 안 풀려 속상하고
뜻대로 되지 않는 일 때문에 가슴 아프다.
글 쓰는 일도 그렇고
공부하는 일도 그렇고
살아가는 일도 그렇다.
세상은 그리 만만하지 않고 녹록하지도 않다.
형가의 노래
“바람은 쓸쓸하게 불고 역수 강물 차갑다.
장사 한번 가면 다시 돌아오지 못하리 “
風蕭蕭兮 易水寒(풍소소혜 역수한)
壯士一去兮 不復還(장사일거혜 불부환)
사마천의 『사기』에 나오는 자객 형가(荊軻)의 노래 일부다.
형가가 진나라 시황제를 암살하러 떠나면서 역수 강가에서 부른 노래다.
비장함으로야 이보다 더 한 것도 없다.
아직 봄은 오지 않았다.
바람은 쓸쓸하고 한강 물도 차다.
매일 비장한 마음으로 집을 나선다.
누굴 죽이려 하는 것은 아니지만 늘 긴장하며 산다.
김황원도 글이 되지 않아 통곡했고
형가도 길 떠나 돌아오지 않았다.
그러니 나야 달리 할 말이 있겠나.
글을 쓰든, 일을 하든
오늘도 열심히 살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