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驛)을 위한 역사 기행(驛舍紀行)

『역사 기행(驛舍紀行)』2

by Henry
폐역.JPG 사진 출처 http://playplus.co.kr/webapp/news.php?m=v&no=1365&nid=c1


옛날에는 기차만큼 빠르고 편리한 교통수단도 없었다. 사통팔달로 뻥 뚫린 도로 위를 질주하는 자동차는 시골 작은 역의 목을 조였다. 빠르고 편리함에 길든 사람들은 길게 뻗은 고속도로와 고속철도의 철길에 익숙해졌다. 속도가 더 빨라진 KTX의 등장은 전국을 하루 생활권으로 묶어버렸다. 도시로 인구가 몰려들고, 농촌 마을은 사람이 떠났다. 그 자리에는 낡은 선로와 역사(驛舍)만 남았다.


농촌이나 산골 마을 인구가 줄자 서민들의 애환을 실어 나르던 열차의 운행 횟수도 줄었다. 대신 고속열차가 인구가 많은 대도시에만 선다. 시골 마을의 젊은이들은 대도시로 떠난 지 오래된 마을에는 어른들만 산다. 다른 도시로 갈 일이 없는 그들을 위해 시골 간이역에 정차할 기차는 없다. 도시화와 현대화에 밀려 기차가 서지 않는 곳에는 역사만 덩그러니 남아 비바람에 쇠락한다.


기차가 서지 않는 간이역과 폐역은 늘었고, 아예 선로조차 사라진 곳도 많다. 개중 일부는 관광지가 되어 사람들의 향수를 일깨워주기도 하고, 또 일부는 사진 촬영의 명소가 된 곳도 있다. 사람들은 수십 년 전 지어진 낡은 목조 건물 냄새에 취해 기적 소리 끊어진 선로를 걷는다. 지금은 낡고 허름해졌지만, 폐역의 건물은 세월의 흔적을 훈장처럼 달고 있다.


역의 대합실은 늘 기쁨과 슬픔이 교차하고, 만남과 이별이 오갔다. 떠나는 이와 보내는 이는 눈물로 이별한다. 돌아오는 이를 반기는 사람들의 얼굴에는 웃음꽃이 떠나지 않는다. 도시로 공부하러 갔다 방학을 맞아 집으로 돌아오는 아들을 맞는 어머니의 입은 한껏 찢어졌다. 방학 한철 고향에서 보낸 아들이 길 떠나는 날이면 역사에는 어머니의 눈물로 흥건해진다. 그런 추억을 뒤로한 채 간이역사는 시간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있다.


사람마다 누구나 역을 떠올리면 잊지 못할 사연 한둘을 끄집어낸다. 대부분 사람의 머릿속에 역은 애틋함과 추억의 장소로 남았다. 그러나 역은 그보다 이보다 더 많은 의미를 가진다. 어떤 사람은 역을 단지 감상의 대상으로만 봐서는 안 된다고 지적한다. 일제 강점기 시절에 지어진 역은 식민지 수탈의 통로로 이용됐기에 아픈 역사의 눈으로 봐야 한다고 한다. 또 어떤 이는 그보다 역사 속 건축학적 의미를 새겨야 한다고 주장한다.

다 좋다. 역을 추억의 장소로 보든, 식민지 수탈의 아픈 장소로 보든, 건축의 미학으로 보든, 그건 보는 사람의 마음이다. 사라진 역 이야기를 쓴 책을 찾아봤다. 몇 권의 책을 구할 수 있었다. 간이역과 폐역의 풍경을 표현한 책이 많고, 드물게 역의 건축미를 묘사한 책도 있다. 시선을 돌려 주변의 풍경뿐만 아니라 간이역과 폐역의 역사(歷史)를 더듬어 볼 것이다. 이들 마을의 옛 영광을 회상하는 역사 기행(驛舍紀行)을 시작한다.


전국 곳곳에 흩어져 있는 폐역과 간이역을 모두 방문하고 글을 쓴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자료를 구하는 일도 만만치 않았다. 이리저리 자료를 찾다 보니 폐역의 건물이 문화재로 지정된 곳이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문화재청에 연락해 폐역 가운데서 문화재로 등록해 보존하는 24곳의 명단을 받았다. 우선 이곳을 중심으로 글을 쓰기로 마음먹었다. 그렇다고 문화재로 등록되지 않은 곳이라도 사연이 깊으면 방문할 계획이다.


먼저 경기도와 강원도에 소재한 폐역과 간이역을 갈 것이다. 가서 그곳의 풍경을 스케치하고 사연을 알아보려 한다. 역이 있는 마을은 어떻게 변했는지, 옛날 모습은 어땠는지 궁금하다. 일제 강점기에 지어진 곳이라면 그곳의 역사도 조사해봐야 할 것이다. 아쉬운 것은 내가 건물의 미학을 보지 못하다는 점이다. 폐역의 추억과 역사성 그리고 쇠락하는 시골의 현실을 함께 살펴보려 한다.


첫 여행지로는 강원도 삼척시 늑구리에 있는 고사리역과 고사리에 있는 하고사리역으로 꼽았다. 일제 강점기 만들어진 역이고 불과 2킬로미터 간격을 둔 두 마을에 폐역이 있어 관심이 갔다. 고시리에 있는 역은 하고사리역이고 늑구리에 있는 역이 고사리역이다. 이렇게 된 데에는 일제의 석탄 수탈 역사와 관계가 있다. 하고사리역 국가뮨화재로 등록되어 있고, 고사리역은 그렇지 않은 사연을 알아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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