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大)를 위해 희생해야 할 소(少)가 당신이라면?

by Henry
행복의 저울.jpg https://www.sisajournal.com/news/userArticlePhoto.html


행복을 측정하는 저울이 있다면 다수의 행복과 소수의 행복 크기를 비교할 수 있다. 그렇게 되면 이해가 충동하는 문제를 판단하기가 한결 수월해진다. 사회 전체로 봤을 때는 행복이 더 큰 정책을 택하면 된다. 그렇다고 해도 희생당하는 소수의 잃어버리는 행복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는 여전히 숙제로 남는다. 오히려 희생당하는 소수가 잃어버리는 행복의 크기가 다수의 행복 크기보다 더 크다면 어떻게 될까. 사회 전체로 보면 행복의 크기가 줄어드는 역설적인 상황에 부딪힌다.


흔히 우리는 구조조정을 할 때 다수를 위해 소수의 희생은 불가피하다고 말한다. 또 조직을 위해 개인이 양보해야 한다는 말도 덧붙인다. 그런데 해고 대상이 되는 사람이 느끼는 행복감의 크기와 그가 기여할 몫이 높은 분들보다 더 큰 경우도 많다. 단지 직급에 밀리고, 계급에 치이다 보니 애먼 직원만 정리 대상이 된다. 이럴 때는 사회나 조직은 스스로 최대다수의 최대행복의 원칙을 스스로 훼손한다. 현대 사회는 힘의 논리가 작용하는 약육강식의 사회와 다를 바 없기 때문이다.


집단의 의사결정이 어려운 이유가 바로 공리주의가 갖는 이러한 맹점 때문이다. 소수가 느끼는 행복이나 혹은 해고될 때 불행의 크기를 계량화할 수도 없다. 그것을 측정할 수 없다는 난점 때문에 공리주의를 폐기하기 힘들다. 대를 위한 소의 희생이 진리는 아니지만, 여전히 집단과 조직이 결정을 내릴 때 여전히 그것이 기준이 된다. 더 많은 사람이 동의하는 일이라면 수긍하는 것을 강요한다. 안타깝지만, 무엇이 최대다수의 최대행복을 치열하게 논쟁하지만, 일단 결론이 나면 강력하게 추진해야 하는 것이 현실이다.


모두가 만족하는 이상적인 방안을 만들 수 없다는 것이 세상의 이치다. 최대한 많은 사람의 동의를 구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그보다 중요한 것은 일단 토론을 거쳐 결론이 나면 모두 받아들이는 일이다. 설혹 100% 만족하지 못하더라도 일단 누구든 결정되면 따라야 한다. 그리고 힘을 합해 조직이 발전하는 데 힘을 쏟아야 제대로 된 구조조정이 될 수 있다. 미루다 타이밍을 놓치면 더 큰 화를 부르는 것이 위기에 대응하는 대책이다.


세상이 변혁의 물결 속에서 요동치고 있다. 조직은 혁신하지 않으면 살아남기 힘들다. 그 속에서 개인은 설 자리가 좁고 생존하기 힘들다. 꼬리가 몸통을 흔들 수 없기에 조직이 시키는 대로 따를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해도 조직이 현명하게 대처하고, 슬기롭게 위기를 극복하는 역량을 갖춰야 한다. 개인의 희생과 자기 혁신을 요구하기 전에 조직이나 높은 분들이 현명해야 한다. 무능한 병사는 혼자 죽지만, 무능한 장수는 병사들을 떼죽음시키기 때문이다.


개인이 똑똑해야 하지만, 조직은 더 똑똑해야 한다.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빨리 알아차리고 대비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게 없으면 코끼리 뒷다리를 만지거나 장님 문고리 잡는 일이 벌어진다. 곁가지만 잡고 몸통을 놓치면 추락하기 딱 좋다. 핵심과 근본을 보는 명민함이 있어야 한다. 그래야 제대로 구조조정도 하고, 위기를 헤쳐갈 방안을 찾을 수 있다. 힘없는 샐러리맨을 닦달할 것이 아니라 높은 분들이 먼저 대오각성해야 한다.


구조조정의 칼바람은 가뜩이나 시린 겨울의 끝을 더 춥게 한다. '봄이 와도 봄 같지 않다'는 옛말이 기억난다. 소수가 희생해 조직을 살리는 것도 좋고, 공리주의도 받아들인다. 누구나 그 소수가 내가 아니라면 다 좋다고 생각할 것이다. 대를 위해 희생해야 할 소수가 당신이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


keyword
작가의 이전글라이언 일병 구하기와 공리주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