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기행(驛舍紀行)』1
필름 카메라, 전화번호부, 카세트 플레이어, 지하철 노선 안내 종이 지도, 비디오테이프 대여점, 공중전화, 버스 안내양, 빨간 우체통, 시내버스 토큰과 회수권, 구형 전화기, 성냥 공장, 극장 간판..
이제는 멀어진 이름을 들으면 무슨 생각이 날까? 30~40대 이후의 세대는 이 중 몇 개와 애틋한 추억이 있을 것이다. 50대 이후 세대는 더 많은 추억이 떠오를 것 같다. 어디 이뿐이랴. 곰곰이 생각하면 셀 수 없는 많은 것들이 우리 기억 속에서 사라졌다. 한때는 죽고 못살던 것들도 한 번 사라지면 쉽게 잊힌다. 세월이 주는 모든 사라지는 것의 아픔이다.
시간을 거슬러 가면 많은 것들과 만난다. 개중에는 신기술 때문에 사라진 것들이 대부분이다. 기술은 늘 빠른 속도로 발전하고 있어 앞으로 더 많은 것들이 사라질 것이다. 지금은 우리 곁에 머물지만, 어느새 눈에 보이지 않게 된다. 낡은 것은 떠나고 새로움이 채워지는 것이 세상의 이치다. 그렇다고 해도 손때 묻어 정이 든 것들이 눈에서 보이지 않는 허전함은 남을 것이다.
손 편지를 집어던지고 SNS에 익숙한지 이미 오래다. 밤을 새워 편지 쓸 일이 없으니 아침이면 찢어버릴 일도 없다. 지난 15년간 서울 강남에서만 사라진 빨간 우체통이 70여 개라고 한다. 이제 남은 27개의 우체통에서 나온 하루 우편물은 겨우 20통도 되지 않는다. 군대 간 남자친구에 보내는 연애편지나 스승의 날 보내던 손 편지는 하루 한 통을 보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새로운 기술은 늘 더 많은 것을, 더 빨리 버리라고 한다. 디지털 기술과 인공지능 알고리즘은 아날로그 감상을 버리라고 한다. 익숙한 것들을 버리고 편리하고 새로운 것들에 적응하라고 충고한다. 급하게 쓴 메시지를 눈 깜짝할 새 취소하는 기능까지 생겼다. 이러니 사람들은 디지털이 주는 속도의 늪에서 헤어날 길이 없다.
세상이 아무리 신기술로 무장하고 급하게 변해도 버릴 수 없는 것은 사람 마음이다. 자판을 두드려 마음을 입력하지 않는 이상 슬프고, 기쁘고, 안타까운 아날로그 감상을 버릴 수 없다. 어디 마음뿐인가. 우리 일상에도 버릴 수 없는 아날로그 풍경도 많다. 사람을 만나고, 얼굴을 보고, 따뜻한 마음을 나눠야 한다. 사람 사이의 정은 디지털 기술로 전송할 방법이 마뜩잖다. 아날로그 감성으로 전달해야 온정의 깊고 진한 맛을 제대로 느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