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의 편리함과 아날로그의 감성
새로운 것을 보거나 읽을 때 자주 수첩에다 손 글씨로 메모하고 적는다. 자음과 모음을 이용해 연속해서 글자를 쓰면 문장이 되고 이야기가 된다. 띄어 쓰거나 의도적으로 줄 바꾸기를 하지 않으면 자음과 모음은 끊김이 없이 쭉 이어진다. 매일 쓴 글을 몇 년 동안 모으면 공책이 몇 권이나 된다. 이것들을 책상 한편에 저장해 두고 가끔 생각날 때마다 꺼내 읽어본다.
사실 대부분 글을 쓸거나 자료를 정리할 때는 컴퓨터를 이용한다. 지금도 이 글을 키보드와 모니터를 이용해서 작성한다. 컴퓨터는 이 글을 내부의 회로를 통해 전송하고, 저장장소인 하드디스크에 기록한다. 내가 입력하는 자음과 모음, 그것들이 모여 만들어진 단어와 문장을 그대로 컴퓨터 내부의 회로로 보내지 않는다. 이것들을 모두 0과 1로 변환해서 회로를 통해 하드디스크로 보낸다. 아니면 USB로 저장하기도 한다.
아날로그 방식과 디지털 방식의 차이다. 공채에 쓰는 글은 우리가 읽을 수 있고, 볼 수 있는 형태 그대로 기록된다. 자음과 모음을 모두 활용해 쭉 이어 문장을 만든다. 가끔 글자를 잘못 쓰는 바람에 지워가나 두 줄고 그은 흔적도 있다. 글 내용이 마음에 안 들어 새로 글을 덧붙인 곳도 군데군데 보인다. 아날로그 글쓰기는 감성과 느낌이 종이마다 배어 있어 좋다.
디지털 방식은 자음과 모음을 0과 1의 조합으로 인식한다. 컴퓨터는 0과 1이 어떻게 조합되었는가를 읽고 글자를 알아챈다. 모은 글자와 문장을 0과 1로만 인식하고 저장하기 때문에 속도가 빠르고 저장 공간도 작다. 속도도 빠르고 금방 글 한 편을 뚝딱 쓸 수 있어 좋다. 잘못 쓴 글이나 문장을 수정하기도 편리하다. 글을 쓸 때의 감성까지 기록할 방법이 없어 아쉽긴 하다.
여행에도 디지털 방식과 아날로그 방식이 있다. 집에 앉아서 인터넷과 스마트폰을 이용해 세계 어느 곳의 풍경을 감상할 수 있다. 시간도 절약되고 편리하다. 이에 반해, 아날로그 여행은 발품을 팔아야 한다. 시간도 걸리고 이동해야 하고 직접 가봐야 한다. 여행은 디지털과 아날로그의 차이를 확실하게 느끼게 해 준다.
아날로그 강원도 여행
강원도 삼척시 도계읍 늑구리에 있는 고사리역(古士里驛)을 보러 갔다. 폐역에 관한 이야기를 쓰려고 자료 조사하러 갔다. 고사리역은 일제 강점기인 1940년에 석탄 자원을 수탈할 목적으로 개통되었다. 우리의 아픈 역사를 간직한 고사리역은 석탄산업의 쇠퇴로 역할이 사라지면서 역의 위상도 추락했다. 화물과 여객 취급이 중단되고 2008년에는 간이역으로 격하되었다가 지금은 폐역이 되었다.
인터넷 검색을 통해 고사리역 사진을 찾았다. 앞서 다녀간 사람들이 남긴 사진이 많다. 정성 들여 글과 사진을 올린 덕분에 풍경을 감상할 수 있다. 그렇지만 인터넷을 통한 정보로는 느낌이 양이 차지 않는다. 디지털 여행으로 끝을 맺기는 아쉬운 마음에 직접 가서 보는 아날로그 여행을 해보기로 했다.
처음에는 시외버스나 열차를 타고 가려 계획을 잡았다. 내가 사는 곳에서 그곳까지 가려면 교통편이 수월치 않았다. 청량리역까지 가서 동해역으로 가는 KTX나 도계역으로 가는 무궁화를 이용하는 방법이 있다. 둘 다 한 번에 늑구리까지 가는 것은 아니다. 마지막에는 삼척 버스를 타고 그곳으로 가야 한다. 문제는 주말에는 버스 편이 하루 한 번 혹은 두 번밖에 없다는 것이다. 요모조모 따져봐도 연결하는 차 편을 맞출 수 없다. 자칫하면 가는 데만 1박 2일이 걸릴 판이다.
한참을 고민했다. 하루 만에 갔다 오려면 차를 이용하는 방법밖에 없다. 하는 수 없이 장거리 여행에서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원칙을 깨고 손수 운전했다. 서울을 빠져나가는 길은 늘 차들로 붐빈다. 가다 서기를 반복한다. 경기도를 지나 제천시를 거쳐 영월을 빠져나갔다. 영월을 지나면서 점점 고도가 높아지고 산이 줄지어 다가온다. 해발 1,000미터 고지를 넘어 구불구불한 도로를 내려가자 태백시가 나타났다. 태백시에 도착하니 출발한 지 5시간 가까이 됐다.
태백시를 지나면서부터 날이 어두워진다. 아침 10시에 출발했으니 오후 3시가 가까웠다. 하늘은 잔뜩 흐리고 간간이 눈발이 날렸다. 태백시에서 고개를 넘어 삼척 방면으로 향했다. 첩첩산중이라는 말이 달리 없을 법하다. 높고 험한 산으로 이어진 강원도의 힘을 느낄 수 있다. 산과 고개를 수없이 넘어 드디어 고사리역이 있는 늑구리에 도착했다. 집을 나선 지 5시간 20분 만에 도착했다.
돌아오는 길은 설국을 지나는 기분이다. 전날 동해안에 내린 눈 덕분에 동해안 고속도로를 끼고 강릉 방면으로 달리는 풍경은 하얀 눈 천지다. 산골짜기마다 눈이 쌓였고, 나무들도 눈을 이고 섰다. 겨울의 끝자락에 생각지도 못한 근사한 눈 풍경을 선물 받았다. 이것이 아날로그 여행이 주는 재미일 것이다. 편리함과 간편함도 좋지만, 때로는 먼 길을 떠나보는 감성도 좋다. 다음에는 버스나 열차를 이용해 더 느린 아날로그 여행을 하리라고 다짐해 본다.
고사리역과 하고사리역 그리고 도경리역을 들러보는 여행을 마쳤다. 자세한 이야기는 따로 글을 정리할 생각이다. 사진이 주는 느낌보다 현장이 주는 느낌이 다르다. 찾는 사람 하나 없는 폐역의 쓸쓸함과 외로움이 가슴에 닿는다. 한때의 영광을 뒤로하고 빛바랜 사진처럼 낡아가는 건물이 세월의 무상함을 느끼게 한다. 폐역의 낡은 역사(驛舍)는 사라지는 옛 영광의 역사(歷史)라 하기엔 너무 초라하다. 강원도의 하늘은 눈이라도 퍼부을 듯이 잔뜩 흐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