높은 분들의 셀프 가스라이팅

【외부인의 컨설팅, 내부인의 비판】

by Henry

상사의 셀프-가스라이팅

"이것 보라고, 내 인기는 아직 식지 않았어."


상사들은 왜 부하 직원들이 자기를 좋아한다는 착각에 빠질까? 다른 사람들과 달리 자기는 부하 직원과 참 잘 지낸다고 생각한다. 회식 한번 하자면 부하 직원들이 득달같이 모인다. 내가 말을 하면 다 좋다고 손뼉을 치니 얼마나 훈훈한 분위기인가. 나니까 부서를 이렇게 화목하게 이끌 수 있다.


“이만하면 아직 쓸 만한데..”


아침마다 거울을 보며 아직 전성기가 끝나지 않았다고 자뻑한다. 얼굴에 주름이 잡히긴 해도 또래보다 젊게 보여 흐뭇하다. 사실 누가 봐도 딱 자기 얼굴로 보이는 걸 본인만 모른다. 착각 속에 본인이 행복한 거야 누가 뭐랄까. 다만, 그것을 다른 사람들 앞에서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게 문제다.


"역시 나는 똑똑하고 능력 있어!! 사람들은 나를 긍정적으로 생각해. 조직 구성원은 내 말을 잘 따른다. 거래처 사람들도 모두 나를 칭찬한다. 모두 내게 좋은 말을 하고 덕담을 아끼지 않는다. 역시 나는 소통 잘하고 유연한 사고를 하는 상사다."


착각은 자유고, 자아도취에 빠진 걸 탓할 것까지는 없다. 하지만, 부하 직원들의 마음은 영 편치 않다. 성공한 상사들은 늘 자기 확신에 차있다. 자신은 항상 똑똑하고 능력 있다고 판단한다. 부하 직원이 다들 그걸 인정한다고? 아니 왜 부장님은 혼자 저런 망상에 사로잡힐까. 좋은 말을 할 수밖에 없는 부하직원의 속내를 헤아리면 생각이 달라질 것이다.



사진 출처 : https://www.mk.co.kr/news/it/9959345


예의를 친절로 오해하고, 친절을 호감으로 착각한다. 이런 착각을 스스로 확대하고, 재생산하는 것은 문제다. 높은 분은 스스로 현실을 왜곡하고 자기 심리를 조작한다. 그들은 부하 직원들은 자기를 좋아한다고 여긴다. 그런 그릇된 판단 때문에 부하 직원의 감정을 통제하려 든다. 직원들이 싫어하는 데도 억지 감정을 강요한다. 이것은 정서적 폭력이고 셀프 가스라이팅(self-gaslighting)과 다를 바 없다.


셀프 가스라이팅을 반복하면 현실을 곡해하고, 자기식대로 해석해 확신한다. 시간이 지나면서 확신은 신념으로 바뀐다. 뇌가 스스로 자기를 세뇌해 뇌 회로를 그렇게 변형한다. 이 정도 되면 상사는 부하 직원들이 자기 말 듣는 것을 좋아한다고 철석같이 믿는다. 자연스레 부하 직원을 앞에 두고 길게 설명하고 충고를 하는 것을 낙으로 생각한다.


나를 좋아하는 걸까?

예의상 던지는 부하 직원의 멘트를 골라 듣자. 상사가 뭘 해도 잘한다고 해야 하는 것이 직원의 입장이다. 회식 자리에서 상사의 건배사에 물개처럼 손뼉 치며 환호한다. 외모가 멋지다고 치켜세우고, 상사의 말에 맞장구친다. 상사가 생각하는 것만큼 부하 직원은 상사를 좋아하지 않는다. 부하 직원들은 직장 생활이 요구하는 예의 바른 행동에 충실할 뿐이다.


"나를 좋아하는 걸까?"


예쁘장한 여직원이 보낸 문자를 본 상사가 흐뭇한 미소를 짓는다. 여직원이 보낸 메시지에 떡하니 ♡가 보인다. 나이 차가 10년도 더 나는데 호감은 무슨 호감? 착각에 빠지면 안 된다. 상대는 관심이 없는데, 매일 명언이나 그날의 좋은 말을 보낸다면 이건 낭패다. 보내는 상사의 생각은 호의겠지만, 받는 부하 직원은 큰 부담으로 느낀다. 나이 어린 여직원이라면 부담을 넘어 두려움마저 느낄지도 모른다.


나이가 들수록 친절과 호감이 다르다는 사실을 새기자. 호감이 없으면 친절함도 없다는 것은 낡은 꼰대 철학이다. 상사는 자기가 제일 많이 안다는 착각에서 벗어나야 한다. 디지털과 AI가 하루가 멀다고 신기술을 쏟아낸다. 빛의 속도로 변하는 세상에서 케케묵은 옛날 지식을 자랑하는 것은 민망하다. 젊고 빠릿빠릿한 직원들 말을 경청하고, 그들한테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들어보자.


개구리 올챙이 시절 모른다는 말이 들어맞는다. 지금의 상사들도 신입 직원일 때는 자신들의 상사를 울며 겨자 먹기로 억지 존경했다. 욕하면서 배운다는 말처럼 상사는 그 시절을 까마득하게 잊었다. 부하 직원들은 상사가 진짜 잘 안다고 손뼉 치는 것이 아니고, 진짜 호감이 있어서 상냥하게 대하는 것도 아니다. 대부분은 슬기롭게 직장 생활하기 위한 처세술이다. 상사들은 셀프-가스라이팅을 그만하고, 자뻑이 빠지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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