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자리에 모인 소녀들, 누가 제일 아름다울까?

【AI와 슬기로운 동거 생활】

by Henry



예쁘다고 늘 좋은 건 아니다.

예쁘다고 무조건 좋은 건 아니다. 사연이 없으면 느낌이 없고, 느낌이 없으면 감동도 없다. 어떤 이야기를 가졌는지가 중요하다. 성형 수술로 얼굴을 다 뜯어고쳐도 그럴 만한 사정이 있으면 이해할 수 있다. 설혹 사정이 부족하다 해도 여전히 가슴 따뜻한 사람이라면 봐줄 만하다.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의 소녀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제일 왼쪽은 페르메이르가 그린 1665년의 소녀다. 가운데는 2003년 개봉한 영화 속의 소녀 스칼렛 요한슨이다. 마지막은 AI 화가 미드저니가 창조한 2023년의 소녀다. 세 소녀의 태어난 시기와 장소 그리고 사연이 제각각이다.


세 소녀는 각자 고유한 개성을 지녔다. 소탈하고 자연스러운 얼굴이 있는가 하면, 똑소리 나게 세련된 얼굴도 있다. 고전적인 스타일도 있고, 현대적인 스타일도 있다. 이야기가 있는 소녀도 있고, 그렇지 않은 소녀도 있다. 이 때문에 세 소녀가 주는 감동에도 차이가 있다. 그런데 어째 AI 소녀는 그림 속 소녀보다 영화배우 스칼렛 요한슨을 많이 닮아 보인다.


여기서 의문이 생긴다. 왜 AI가 그린 소녀는 그림의 소녀보다 스칼렛 요한슨을 닮아 보일까? 그건 페르메이르의 원작 자료가 부족했기 때문일 것이다. 페르메이르는 약 30여 편의 작품을 남겼다. 그 때문에 작품 가격이 무척 비싸게 거래된다. 미술사가와 미술 애호가가 그를 좋아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림 수가 적고 비싼 가격 탓에 오죽하면 도둑들까지 페르메이르를 좋아한다는 말도 있다.


AI도 페르메이르의 작품을 구하지 못해 애를 먹었을 것이다. 열심히 공부하고 싶어도 이미지 자료가 많이 없다. 성적이 떨어지는 게 당연하다. 원작 이미지보다 오히려 영화 자료를 구하기 쉽다. ‘진주 목걸이를 한 소녀'의 영화 자료는 인터넷에 널려 있다. 그런 이유로 AI 화가가 페르메이르의 소녀보다 스칼렛 요한슨에게 더 익숙하다.


아는 만큼 본다.

사람은 아는 만큼 보고, 보는 것만큼 느낀다. 그건 AI도 마찬가지다. 기계는 학습한 이상을 볼 수 없기에 더 할 것이다. 아직 인간보다 상상력이 떨어지는 AI는 학습한 대로 실행한다. 학습 자료의 양이 AI의 학습 결과를 결정한다. AI는 스칼렛 요한슨의 얼굴을 더 많이 학습했다. AI가 그린 소녀가 스칼렛 요한슨을 더 많이 닮은 데는 이런 사연이 있다.


어느 소녀가 제일 아름다운가? 아름다움은 주관적 감정이라 질문이 좀 그렇다. 예쁘기로만 따진다면 AI가 그린 소녀가 제일 낫지 않은가? 내게는 딱 거기까지만 보인다. 기계가 그린 소녀가 무슨 스토리가 있겠나. 소녀의 이름도 궁금하지 않다. 가공한 인물이라 흥미가 일지 않는다. 이래서 예쁘다고 무조건 다 용서되는 건 아니라는 말이 이해된다.


그나마 영화 속에 등장하는 소녀는 관심을 끈다. 소녀 역을 맡은 영화배우가 누굴까? 누가 그 역할을 했는지 알고 싶었다. 그녀의 이름은 스칼렛 요한슨이다. 이름을 확인하는 순간 영화 '천일의 스캔들(2008년)'과 영화 '블랙 위도우(2021년)'가 떠오른다. 그렇지만 영화는 영화일 뿐이고, 관심은 여기까지다.


하지만, 그림 속 소녀는 다르다. 그녀가 누군지 궁금한 점이 한둘이 아니다. 화가의 연인일까. 단순히 모델일까, 아니면 그 집 하녀였을까? 그녀는 어떻게 살았을까? 궁금증이 봇물 터지듯 쏟아진다. 왜냐고? 그녀는 사연과 이야기를 가진 사람이기 때문이다. 르네상스를 살다 간 그녀의 이야기를 듣고 싶다.


사연이 있는 화가의 삶도 느낌이 다르다.

그뿐인가? 페르메이르의 삶도 알려진 바가 없어 궁금하기 짝이 없다. 그는 네덜란드의 전성기라 불리는 17세기 ‘황금시대'의 화가다. 그는 작은 운하 도시 델프트에 살면서 작품 활동을 했다. 그가 살던 시대에는 네덜란드가 해양 강국으로 위용을 떨쳤다. 그렇게 축적한 경제적 풍요 덕분에 수도인 암스테르담에는 700여 명의 화가가 왕성한 작품 활동을 했다.


페르메이르는 사람들의 일상적인 모습을 화폭에 담았다. 그는 섬세한 질감으로 빛과 밝음을 표현했다. 단순하지만 선명한 색채가 돋보이는 뛰어난 그림을 남겼다. 그는 43세의 젊은 나이에 부인과 10명의 자식을 남겨두고 죽었다. 지금 남아 있는 작품은 불과 30여 점에 불과하다.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 못지않게 화가도 사람들의 궁금증을 자아낸다.


바로 이것이다. 그림과 화가의 스토리가 사람 마음에 와닿는다. 소녀가 궁금하고 페르메이르의 삶도 안타깝다. 인생의 정점에서 세상을 떠난 그가 하필 작품도 많이 남기지 않았다. 그런 사연들이 그의 이야기를 풍성하게 한다. 사람들의 아날로그 감성에 잘 맞는 이야깃거리를 가진 화가다.


AI가 그린 그림이 아무리 빼어나도 감동은 보는 순간에 끝난다. 스토리가 없는 이야기를 듣고 싶어 하는 사람은 없다. 그림도 작가도 그저 디지털 기술의 결과물일 뿐이다. 사람 냄새가 나는 이야기는 아날로그 감상을 소환한다. 기계가 어찌 감히 이런 스토리를 담아낼 수 있겠는가. 그러니 AI가 예술의 몰락을 가져온다고 지레 겁먹을 이유가 없다.


이제 정리하자. AI 화가에게도 번뜩이는 아이디어가 있다. 가끔 이들의 도움을 받는 것은 나쁘지 않다. 이들과 협업해 새로운 화풍을 개발하는 것도 좋을 듯하다. 뉴미디어아트 예술가들은 이미 알고리즘과 미술의 융합을 시작했다. 알고리즘 아트(Algorithmic Art)라는 이름으로 말이다. 이것도 AI와 슬기롭게 동거하는 방법의 하나다.


나도 그림을 좋아하고, 매주 화실에 간다. 부족한 재주 때문에 자주 슬럼프에 빠진다. AI 화가의 도움을 받는 건 어떨까. 이름을 날리기 위해 그림을 시작한 것이 아니다. 그저 삶의 여백을 아름답게 채색하기 위함이다. 그러니 AI 화가와 공동 작업을 하는 것도 좋겠다. 세상이 빠르게 변한다. 디지털 속의 아날로그 감성, 그런 협업이 필요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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