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부인의 컨설팅, 내부인의 비판】
소리는 귀가 듣는 게 아니다.
"어이 김 대리, 왜 나한테 미리 말 안 했어?"
갑자기 부장님의 불호령이 떨어졌다. 이야기한 지가 언젠데 인제 와서 생난리다. 나는 분명 말씀을 드렸다. 그때 귀담아듣지 않은 부장님이 상무님한테 깨졌다. 그걸 왜 내게 화풀이하느냐고. 영문도 모르고 혼난 부하 지원의 속이 부글부글 끓는다. 도대체 부장님의 귀는 뒀다 뭐 하는지 모르겠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날까? 부장님이 일부러 골탕 먹이려 하는 걸까? 그게 아니라, 우리가 말을 귀로 듣지 않기 때문에 일어나는 일이다. 뭐, 소리를 귀로 듣지 않는다고? 이렇게 말하면 사람들은 그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냐고 타박한다. 말 같지 않은 소리 하지 말라는 볼멘소리가 터져 나올 것이다.
그래, 귀로 소리를 안 들으면 무엇으로 듣나? 생뚱맞아 이해가 잘 안 된다. 사람이 소리를 듣는다는 것은 말의 뜻을 안다는 것이다. 그런데 귀의 구조를 뜯어보면, 소리를 듣고 이해할 만한 기관이 없다. 귀는 소리의 파동이 통과하는 경로에 지나지 않는다.
소리의 파동은 고막을 통과해 달팽이관의 유모세포(有毛細胞)를 흔든다. 귓속 발전기인 유모세포는 소리의 파동을 이용해 전기를 만든다. 이제 소리는 전기 신호가 되어 머릿속의 뇌신경 세포에 도착한다. 귀의 중요한 역할은 소리의 파동을 전기 신호로 변형하는 일이다.
우리 머릿속에는 약 1,000억 개의 뇌신경 세포인 뉴런이 있다. 한 개의 뉴런은 수천 혹은 수만 개의 가지를 지닌다. 그래서 뉴런과 뉴런이 만나는 접점, 즉 시냅스의 수는 약 150조 개를 넘는다. 우리 머릿속은 뉴런과 시냅스가 복잡한 전깃줄처럼 씨줄과 날줄처럼 이어졌다.
머릿속의 뉴런은 생물학적 전선이다. 뇌신경 세포인 뉴런에 도달한 전기 신호는 뉴런 내부를 통과한다. 이 전선이 굵고 튼튼하면 전기가 잘 흐른다. 반대로 전선이 끊어진 곳에서는 전기가 흐르지 않는다. 정보는 앞으로 나가지 못하고 중간에서 사라진다.
뉴런과 시냅스를 따라 이동한 전기 신호는 최종 목적지인 전두엽에 도달한다. 전두엽은 이렇게 입수한 전기 신호의 정보를 분석하고, 종합해 판단을 내린다. 비로소 우리는 상대의 말을 듣고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귀가 소리를 듣는 것이 아니라 뇌가 소리를 듣는 것이다.
높은 분들은 듣고 싶은 말만 듣는다.
머릿속의 생물학적 전선이 끊어지면 어떻게 될까? 당연히 외부 정보인 전기가 흐르지 않는다. 다른 사람의 말이 전전두엽까지 도달하지 못한다. 상대는 열심히 설명했지만, 정작 듣는 사람의 반응이 시큰둥하다. 소리는 분명 귀를 통과했는데 전두엽까지 오지 않는 인지적 난청이다.
머릿속 전선은 왜 끊어질까?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그중에서도 대표적인 것이 노화 때문이다. 세월과 함께 세포는 늙고, 신체 기능은 떨어진다. 새로운 도전을 싫어하고 단조로운 생활에 안주한다. 자극이 없으면 전기는 흐르지 않는다. 전기가 흐르지 않는 구리 전선이 삭는 것처럼 머릿속 전선도 끊어진다.
공부하지 않고 토론하지 않는 뇌는 노화가 빨리 일어난다. 새로운 정보가 제대로 흐르지 않는다. 줄곧 사용한 뇌만 활발하다. 성공 신화에 갇힌 상사들의 뇌가 이렇게 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과거 정보만 남아 자기 경험을 되새김질한다. 부하의 말이 머릿속으로 들어올 리가 있나. 분명 구도로 보고했는데 상사는 못 들었다고 한다.
더 심각한 것은 토막 난 정보만 듣는 경우다. 상사의 뇌 회로가 군데군데 끊겼다. 정보를 통째로 인지하지 못하고 띄엄띄엄 받아들인다. 이러다 보니 같은 내용을 서로 다르게 이해한다.
“이봐 김 대리, 자네가 언제 그렇게 보고했어? 그게 아니잖아!!!”
실컷 설명해도 나중에 부장님이 이렇게 말한다. 부하 직원은 속 터지고 환장할 노릇이다. 이래서 모든 것을 문서로 남겨 그 자리서 확인해야 한다는 말이 나온다. 부하 직원이 상사한테 매번 확인서를 요구한다고? 인지적 난청이 빚은 웃픈 사연이다.
높은 분의 머릿속 신경회로는 자기가 좋아하는 것들만 흐른다. 듣기 싫은 것들이 오가는 통로는 오래전에 사라졌다. 자기 방식대로 노력해 출세한 사람은 더 그렇다. 내가 해보니까 다 되더라. 하라면 하지 무슨 말이 그렇게 많냐? 다른 의견을 제시하는 부하 직원들을 타박하기 일쑤다. 스스로가 자기 신념의 증거인 셈이다.
높은 분들도 경청한다. 단, 듣고 싶은 것만 듣는다. 그 많은 내용 가운데 높은 분들 머리에 남는 건 단 하나, 좋아하는 것만 남는다. 숱한 전투를 치른 자신은 조직을 다 안다고 확신한다.
"니들이 뭘 알아? 까불지 말고 내 말대로 해!!"라고 소리친다. 이래서 맨주먹으로 출세한 상사일수록 모시기가 힘들다.
소통을 잘하는 어른이 필요하다. 부하 직원의 말이라도 허투루 듣지 말아야 한다. 디지털 시대는 경험도 중요하지만 번뜩이는 총명함을 요구한다. 진지하게 경청하고 하나라도 더 배우려고 노력해야 한다. 그래야 우리 뇌는 듣기 싫은 소리도 듣고, 보기 싫은 사람도 본다. 상사는 더 그래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