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틀즈의 LP판과 아날로그의 반격

【AI와 슬기로운 동거 생활】

by Henry

절멸의 위기에 내몰린 아날로그 제국

"이제 종이의 시대는 끝났어!!"

"누가 불편하게 크고 무거운 LP 판으로 음악을 들어?"


빨라도 너무 빠른 디지털 기술이 세상을 지배한다. 하루가 멀다고 쏟아지는 디지털 기술 때문에 정신이 혼미할 지경이다. e북과 태블릿의 집요한 공격에 종이책이 전멸할 거로 예상했다. 그런데 여전히 종이를 넘기는 즐거움은 남아있다. 디지털 음원은 아날로그 음반의 숨통을 완전히 끊은 줄 알았다. LP 레코드판은 살아남아 끈질긴 생명을 이었다. 느긋한 시간과 더딘 여유를 그리워하는 마음이 사람들의 발길은 다시 종이책과 노트, LP 레코드판, 필름으로 향하게 한다.


퍼스널 컴퓨터, 인터넷, 스마트 폰, 알고리즘, 딥러닝 AI는 아날로그 기술을 맹폭했다. 이들은 아날로그 감성을 쓸모없고 가치 없는 것으로 취급했다. 하루가 지나면 손으로 만질 수 있는 감성이 사라지고 손에 잡히지 않는 디지털이 그 자리를 채웠다. 질감을 음미할 수 없는 디지털 세상은 사람들의 감성을 각박하고 메마르게 했다. 사람의 마음은 디지털의 빠른 속도를 감내하기에는 너무 여리다.


음악만 해도 그렇다. 디지털 음원의 스트리밍 서비스가 폭발적으로 인기를 끌었다. 사람들은 점차 물리적 음반을 멀리하기 시작했다. 레코드판은 크기도 크고 무겁다. 스크레치가 생기면 바늘이 레코드판의 홈을 건너뛰면서 노래가 이상해진다. 게다가 먼지는 또 얼마나 달라붙는지 음악을 틀 때마다 손봐야 한다. 보관 공간도 많이 차지하고, 햇볕에 노출되면 휘어진다. 마지막 결정타는 운전하거나 운동할 때 들을 수 없다는 것이다.


USB 하나에 수백 혹은 수천 곡을 담을 수 있는 편리한 세상이다. 스마트폰의 이어폰을 귀에 꽂으면 어디서든 음악을 들을 수 있다. 이러니 크고 불편한 LP 레코드판을 거들떠보기라도 보겠는가. 디지털 음원 하나면 음악 듣는 것은 다 끝난 줄 알았다. 그런데 알게 모르게 디지털 기술의 무심함이 사람을 지치게 한다. 디지털 음악은 USB에 담겨 있어 볼 수 없다. 무슨 곡이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없다. 게다가 음악이 너무 많아 무엇을 들을지 선택하는 것도 피곤한 일이 됐다.


비틀즈의 명반, 아날로그의 반격을 알렸다.

디지털 음원에 지친 사람들의 발길이 레코드판 가게로 옮겨졌다. 사람들은 조금씩 디지털 음원의 차가움에서 LP 레코드판의 따뜻한 질감으로 방향을 틀었다. 세상사 참 알 수 없다. 이런저런 LP판의 단점이 오히려 장점이 될 줄 누가 짐작이나 했나.


물리적 형태를 갖춘 LP판은 재킷을 볼 수 있고 만질 수 있다. 손으로 들면 무게감이 느껴져서 좋다. 손으로 판을 한 장씩 넘길 때마다 가수를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LP 판 재킷과 음악을 만드는 리코딩 기술 그리고 LP판 매장은 아날로그 감성을 집약했다. 이곳에서 명반이라도 하나 건지면 부자가 된 듯 기분이 흐뭇하다.


The Beatles(비틀즈) ‎– Abbey Road Anniversary [LP]


비틀즈의 최고 명반 [Abbey Road]의 50주년 기념 음반이 2019년에 발매됐다. 사람들이 이 음반을 사기 위해 난리가 났다. 이 음반에는 존 레넌, 폴 매카트니, 조지 해리슨, 링고 스타로 이루어진 비틀즈의 역사와 시대적 상징성이 담겨있다. 레코트판을 턴테이블 걸면 론 레넌과 폴 메카트니의 아날로그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그들의 노래를 들으면서 마시는 커피는 맛이 좀 좋을까. 이 맛에 사람들은 환장했다.


팝 역사상 가장 위대한 밴드인 비틀즈의 멤버들이 횡단보도를 건넌다. 워낙 유명한 사진이라 따로 설명이 필요 없을 정도다. 재미있는 사실은 다들 커버 사진 찍으러 멀리 가기 귀찮아했다. 하는 수 없이 그냥 대충 동네 앞에서 사진을 찍었다. 런던의 애비로드 횡단보도를 건너는 이 시크한 장면이 세계적인 명소가 됐다. LP판이 아니고서야 이 장면을 볼 수 없었다.



초창기의 비틀즈


이들의 초기 앨범에는 단정하고 깔끔한 정장 스타일의 사진이 등장한다. 그들은 깔끔하고 단정한 이미지로 인기를 끌었다. 강렬한 의상 대신 피에르 가르뎅의 단정한 슈트를 착용했다. 머리는 머시룸 스타일로 앞머리를 길고 둥글게 자른 스타일을 연출하였다. 이들은 가끔 슈트에 터틀넥을 받쳐 입기도 했다. 이런 사진을 보는 것도 아날로그가 주는 즐거움이다.


디지털 시대의 아날로그 감성

비틀즈의 LP판은 아날로그의 반격을 이끌었다. 디지털 음원 혁명이 완성됐다고 판단한 순간, LP판이 기적적으로 되살아났다. 우리는 그들이 절멸한 것으로 착각했지만, LP판은 꾸준히 자기 영역을 고수하고 있었다. 디지털 음원이 세상을 폭격해도 LP판을 고수한 마니아들은 굳건하게 영토를 사수했다. 그들 덕분에 사람들은 레코드판의 아날로그 매력에 빠져들고 있다.


역설적인 이야기지만, 디지털 기술은 LP판의 부활에 일조했다. 온라인을 통해 개인들 간의 명반을 활발하게 거래했다. 나아가 인터넷 기술을 이용한 명반 경매 시장이 활성화되자, 아날로그 LP판 시장이 되살아나기 시작한 것이다. 인터넷과 디지털 기술은 오히려 LP판의 거래를 크게 활성화했다.


디지털 음원은 개인 간 거래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 게다가 경매에 참여하면서까지 디지털 음원을 살 사람도 없다. 소장할 수도 없는 스트리밍 음악은 듣는 걸로 끝이다. 한때는 디지털 음원이 아날로그 음악의 숨통을 완전히 끊을 거로 생각했다. 바로 절체절명의 그 순간, 디지털 기술 덕분에 LP판은 화려하게 부활했다.


AI니 디지털이니 해서 너무 그곳에만 빠져들지 말자. 가끔 발품을 팔아 동네 책방에도 들러보자. 그곳에 가면 은은한 종이 냄새가 가득하다. 운 좋으면 깊은 산의 침엽수 냄새를 맡을 수 있다. 책방 옆에 레코드 가게가 있으면, 가수의 재킷을 보는 재미를 덤으로 얻는다. 강력한 디지털 시대에도 아날로그 감성은 여전히 살아 숨 쉬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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