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는 물색(物色)이 없다.

【빛과 색의 유혹】

by Hen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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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 아침 서울역을 출발한 기차는 남쪽을 향한다. 광명까지 건물과 건물이 어깨를 맞대고 섰다. 중간에 끊어짐이 없는 거대한 빌딩들이 숲을 이룬다. 서울이라는 회색 도시의 그림자가 멀리까지 뻗었다. 사람들은 너나없이 질식할 것 같은 이곳으로 몰려온다. 각자 나름의 사연을 안고서 그렇게 온다.


열차는 광명에 들러 몇 사람을 더 태우고, 쏟아지는 햇빛 속으로 내달린다. 차창으로 눈부신 5월 햇살이 부딪힌다. 부서진 햇살의 조각들은 초록 비로 쏟아진다. 그 바람에 산과 들판은 온통 초록이다. 해변에서 멀리 떨어진 내륙에도 초록의 바다가 펼쳐진다. 연한 것에서 짙은 것까지 온통 녹색 물결이 넘실거린다.


9시가 넘은 시간, 열차는 남쪽 도시에 도착한다. 그곳에는 마음 착한 사람이 있는 바다가 있다. 바다는 물색(物色)이 없다. 바닷물을 손에 담으면 쪽빛이 온데간데없다. 에메랄드 바다도, 울트라마린의 바다도 없다. 그저 맑고 투명한 물만 손안에 가득하다. 저렇게 짙은 바다는 제 몸의 색이 없다.


바다의 색은 빛의 색이다. 색채의 덩어리인 햇빛은 바닷물 속으로 자유낙하를 한다. 파장이 긴 붉은색 계열은 곧바로 물에 흡수된다. 수심 30미터 깊이로 내려가면 붉은빛은 사라진다. 이때쯤이면 파장이 짧은 파란색의 빛만 물속의 미립자와 부딪혀 깨진다. 그렇게 깨진 파란색 빛의 고통은 바닷물을 멍들게 한다. 바다가 깊을수록 파장이 짧은 파랑만 남아 산란한다. 그 바람에 바다는 쪽빛으로 물든다.


에메랄드의 초록 바다를 보면 마음을 뺏긴다. 바닷속 식물성 플랑크톤에 부딪힌 빛이 초록의 바다를 만든다. 식물성 플랑크톤의 색소를 만난 빛은 갈색이나 적갈색의 바다를 만들기도 한다. 초록색과 파란색이 적절하게 섞인 에메랄드빛 바다는 수심이 낮고 물에 사는 산호초의 석회 성분 때문이다. 말하자면, 바닷속의 플랑크톤이나 산호초가 햇빛과 만나 갈색, 적갈색, 초록색의 바다를 만든다.


동해는 짙은 코발트나 인디고의 파란색이다. 2,000m에서 3,000m 정도로 매우 깊은 동해에는 파장이 짧은 파란색으로 뒤덮인다. 남해의 바다도 동해의 짙음만 못해도 깊은 푸른색이다. 태평양으로부터 물이 흘러들어와 남해도 깨끗함을 자랑한다. 바다 깊이가 얕아 펄이 발달한 서해는 바닷물 속에 진흙 같은 침전물이 많아서다. 서해의 바다가 동해나 남해만큼 푸른빛을 띠지 않은 이유가 이 때문이다.


어느 바다를 좋아하느냐는 개인의 취향에 따라 다르다. 짙푸른 동해가 좋다는 사람도 있고, 파란 남해가 좋은 사람도 있다. 조용하고 갯벌이 넓은 서해를 찾는 사람도 많다. 그곳에 가면 바다를 닮은 사람이 있을 것이다. 넓은 바다만큼이나 착하고 아름다운 그런 사람을 만나러 가고 싶다.


아직 제철 맞지 않은 바닷가는 조용하다. 천천히 백사장을 거닐거나 먼 수평선을 본다. 마음이 느긋해지고 정적(靜的)이 된다. 파도는 밀려왔다가 밀려간다. 말없이 그저 바라만 봐도 좋다. 포말로 부서지는 파도를 보면 바쁜 삶이 덧없게 느껴질 때도 있다. 그땐 아득한 옛이야기를 떠올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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