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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nry Sep 10. 2023

색, 빛의 원초적 아픔

【빛의 인문학 8】


산란하고 흩어지는 빛은 색을 만들고 

색은 세상을 아름답게 칠하지

아름다움은  

빛의 원초적 아픔이 만든 거야





빛과 색에 관한 오랜 생각들

아주 오랜 옛날부터 사람은 빛과 색을 생각했고, 빛의 신비함과 색의 아름다움에 매료됐지. 빛과 색의 미학이 존재하지 않을 것 같은 원시에도 아름다움이 있어. 산속 깊은 오지 마을에서는 쏟아지는 별빛을 감상하고, 투박하지만 강렬한 원색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지. 아프리카 모로코의 베르베르(Berber), 안데스 원주민 케추아(Quechua)는 빛이 선물한 색의 아름다움을 원색 직물에다 옮겨 놓았어.  


빛의 근원을 찾는 여행을 하고 있어. 두 개의 역에서 빛 이야기를 들었어. 이제는 빛과 색의 관계를 알아볼 순서야. 색은 무엇일까? 빛과 색의 관계를 정확하게 알기 전에도 많은 학자가 이것을 연구했어. 고대 그리스 학자들은 물체의 색은 물체가 방출하는 입자가 결정한다고 했어. 또 다른 학자는 눈이 쏘는 빛이 색을 결정한다고 했지. 이때야 빛의 본질을 알 수 없을 때니까 추측만 난무했어.


고대 그리스 이후 빛과 색의 탐구는 별 진전이 없었지. 그러다가 중세에 이븐 알하이삼(Ibn al-Haytham, 965~1040)이라는 이슬람의 광학자가 혜성같이 등장했어. 그는 빛이 직선으로 이동하고, 빛의 굴절 현상도 설명했어. 물체가 색을 방출하거나 눈에서 빛이 나와 물체의 색을 본다는 기존 이론을 완전히 뒤집어엎었어. 그는 물체에 반사된 빛의 특정 성질 때문에 색상이 결정된다는 것을 이론화했어. 지금으로 봐서도 꽤 근사한 주장이야.   


알하이삼은 광학, 천체 물리학, 그리고 과학적 연구 방법론의 개척에 큰 업적을 남겼어. 이론과 실험을 강조하는 과학의 시대를 열었다는 평가를 받을 만큼, 그의 연구 결과는 물리학, 그중에서도 빛을 연구하는 광학의 발전에 크게 기여했어. 후대에 수많은 과학자가 그의 연구에 기반하여 빛과 색의 본질에 관한 연구 업적을 쌓을 수 있었지. 


르네상스의 천재 학자 데카르트는 빛이 입자로 구성되어 있으며, 이 입자들이 물체와 상호 작용하면서 색을 만든다고 주장했어. 그는 물체의 표면이 빛의 입자를 다르게 반사하거나 흡수함으로써 다양한 색상이 생성된다는 사실을 알아냈어. 기본 색상은 단일한 성질의 빛에 의해 생성되며, 복합 색상은 여러 종류의 빛이 혼합되어 생성된다고 설명했어. 데카르트의 주장은 현대 광학에서 설명하는 빛과 색의 관계에 상당히 접근했다고 볼 수 있어.


색의 비밀을 푼 뉴턴

이제 과학적으로 빛의 비밀을 탐구할 준비는 끝났어. 아이작 뉴턴이라는 천재 물리학자가 그 일을 해냈어. 뉴턴은 프리즘을 이용해 태양광을 분해(분광)했고, 다양한 색의 광선이 태양광 안에 섞여 있음을 입증했어. 그는 가시광선의 스펙트럼을 7개의 색으로 나누고, 다시 이것을 합쳐 심지어 원래의 백색광(태양광)으로 되돌리는 실험도 보여주었어. 뉴턴이 과학적 빛의 세계를 활짝 열어젖혔다고 볼 수 있지.


데카르트와 뉴턴은 과학적으로 빛과 색의 근원을 탐구했다면, 이 두 사람과 전혀 다른 방향으로 이 문제에 접근한 사람이 있어. 빛과 색을 인문학적 상상력으로 탐구한 괴테가 바로 그 장본인이야. 괴테가 누구인가? <파우스트>와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쓴 위대한 문학가이며, 뛰어난 과학자이면서도 철학자이기도 해. 그는 『색채론』(괴테·정희창 옮김, 민음사, 2020)에서 문학적 색채관을 밝히고 있어.


괴테는 색채를 빛의 스펙트럼이나 파장이 아니라 빛과 어둠의 상호 작용의 결과라고 봤어. 빛과 어둠이 만나는 경계에서 색채가 발생한다고 주장했어. 그는 두 가지 기본 색채인 노란색과 파란색을 색의 출발점이라고 생각했어. 노란색을 빛의 밝음, 파란색을 어둠의 색으로 보고, 이 두 색채가 혼합하면서 다양한 색채가 생긴다는 것이 괴테의 생각이야. 말하자면, 노랑과 파랑의 상호 균형과 대립으로 경계가 합쳐지고 중첩되는 것이 색의 발생 원인이라는 거야.


괴테의 색채론은 물리학적 접근법이 아니라 자신의 색채 경험과 인식에 바탕을 둔 접근법이야. 그의 주장은 수학과 물리학에 기반을 둔 색채 과학자들로부터 외면받았어. 하지만 화가들과 문학가들은 괴테의 색채론을 좋아했어. 그의 색채론은 색상을 어떻게 인지하고, 감정에 어떻게 작용하는지를 잘 설명하고 있어. 


'양산 쓴 여인' 모네(1875)


색채의 근원이 빛과 어둠의 상호작용이라는 괴테의 주장은 인상주의 화가에 큰 영향을 끼쳤어. 클로드 모네를 중심으로 한 인상주의 화가들의 그림에서 볼 수 있는 빛과 색채의 강렬한 대비는 괴테 덕분이라고 할 수 있어. 모네는 '양산 쓴 여인'에서 빛이 양산과 드레스, 그리고 언덕의 들꽃에 비치는 모습을 묘사했어. 그는 특정 시간에 일어나는 빛과 그림자의 상호 작용으로 나타나는 미묘한 변화를 캔버스로 옮겼어. 


색은 빛의 행위이자 아픔

"색채는 빛의 행동, 다시 말해 빛의 행위이자 아픔이다"


색채와 빛은 관계를 근사하게 시적으로 표현했어. 괴테가 자신의 저서『색채론』에서 한 말이야. 괴테는 파랑과 노랑, 그리고 밝음과 어둠의 치열한 힘겨루기는 빛 내부의 고통이라고 본 거야. 그 고통의 결과가 아름다운 색이 된다는 것이 괴테의 주장이지. 색채에 관한 괴테의 생각은 문학적이고 경험적인 표현이야.


괴테의 색채관을 뉴턴의 색채관에 대입하면 어떻게 될까? 빛은 대기 중의 공기나 먼지 입자와 충돌하고, 이 충돌로 빛의 스펙트럼은 공중에서 산란하지. 그것을 괴테가 말한 '빛의 행위이자 고통'으로 해석하고 싶어. 하늘에서 파편으로 흩어지는 빛의 고통과 멍울이 하늘을 파랗게 물들인다고 보는 거야. 대기 중에 아무것도 없다면 고통도 멍울도 없겠지. 빛은 상처도 없지만, 색을 뿌리지도 못하고 투명한 백색광으로 쏟아지겠지.

   

괴테는 파란색과 노란색을 좋아했다고 해. 파란색 특유의 고독하면서도 우울한 느낌 때문일까. 괴테는 1774년 소설 『베르테르의 슬픔』을 발표하면서 베르테르의 고독과 우수를 파란색으로 표현했어. 베르테르가 입었던 연미복의 파란색이 그거야. 사랑 때문에 고뇌하던 베르테르는 끝내 권총으로 자살해. 그가 죽던 날 받쳐 입은 조끼의 노랑과 연미복의 파란색은 괴테의 색이야.


괴테의 『베르테르의 슬픔』이 발표되자 유럽의 젊은이들이 덩달아 자살했어. 청춘의 열정으로 방황하던 그들은 고독과 우수에 찬 얼굴로 스스로 목숨을 끊었어. 소설 속 베르테르처럼 파란 연미복과 파란 조끼를 입고. 훗날 사람들이 '베르테르의 효과'라고 부르는 동조 자살 현상이 최초로 일어났어.


괴테의 색채론은 과학적이지는 않지만, 낭만적으로 가슴에 와닿아. 화가와 문인들은 그가 들려준 색깔 이야기에 많은 사람이 귀 기울이지. 열정이 넘치지만, 우울하고 고독한 베르테르가 생각 나는 시간이야. 색은 빛의 아픔이고, 사랑은 베르테르의 아픔이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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