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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nry Sep 09. 2023

빛의 조각이 그리는 세상  

【빛의 인문학 7】


눈으로 장미를 보는 것이 아니야

장미를 보는 것은 우리의 뇌야

눈으로 보는 걸 다 믿지는 마

보이는 게 다가 아니야



물체는 같은 색의 빛을 반사한다.


https://berkeleyopinion.com/770


눈앞에 검은색, 빨간색, 하얀색의 세 공이 놓였어. 이 공들을 어떻게 보일까? 그 위에 투영된 무지개색 빛은 무엇을 의미할까?


검은색 공은 빛의 모든 색을 흡수하여 아무것도 반사하지 않아. 그러므로 무지개색 빛이 검은 공에 부딪히면, 색이 그냥 사라진고 검은색 그대로야. 빨간색 공은 다른 색은 모두 흡수하고 오직 빨간색 빛만을 반사해. 다른 색은 모두 흡수될 것이다. 하얀색 공은 모든 색을 다 반사하기 때문에, 무지개색의 가시광선을 그대로 반사해. 이렇게, 물체의 색은 해당 색의 빛만 반사하고, 나머지는 색은 모두 흡수하는 원리를 가졌어. 


만약 빛 속에 빨간색만 존재한다면 어떨까? 검은 공은 여전히 빨간색 빛을 흡수하고, 빨간색 공은 빨간색 빛을 반사하겠지. 그런데 파란색 공은 파란색 빛만 반사하기 때문에, 빨간색 빛을 흡수하게 하지. 파란색도 마치 검은색처럼 어둡게 보일 거야. 빛 속에 빨간색만 있다면, 세상은 검정, 빨강, 그리고 어두운 색으로만 구성될 거야. 


'원 속의 원' (1866) 칸딘스키



우리는 빛이 얼마나 고마운 존재인 줄 새삼 느낄 수 있어. 가시광선의 무지개색 파장 덕분에 우리는 3월의 분홍색 벚꽃과 4월의 보라색 라일락 꽃향기를 맡을 수 있어. 5월의 빨간 장미를 보는 것도 다 가시광선 속의 화려한 색채 덕분이야. 가시광선의 무지개색이 없다면, 앙리 마티스의 야수적 빨강도, 마르크 샤갈의 몽환적 초록도, 바실리 칸딘스키의 기하학무늬의 색채도 구경할 수 없어. 빛은 세상을 낳고, 색은 세상을 아름답게 키웠다고 말할 수 있어.


물체를 보는 것이 아니라 빛의 조각을 모으는 거야.

눈으로 직접 색이나 물체를 인식한다고 생각한다면, 그건 착각이야. 눈은 단순히 반사된 빛을 시신경으로 전달하는 역할만을 해. 사물의 색깔이나 형태를 판단하는 능력이 눈에는 없어. 흥미로운 사실, 아닌가? 이제 그 원리에 대해 알아보자.


눈은 외부의 정보를 가장 많이 받아들이는 감각기관이야. 미각은 1%, 촉각은 2%, 후각은 4%, 청각은 10%로 정보를 전달하는 반면, 나머지 83%는 시각을 통해 전달돼. 그런데 시각 기관이라는 것은 눈의 망막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야. 시각 정보의 전달과 처리는 눈의 망막, 시신경, 그리고 뇌의 시각 피질을 포함한 복잡한 구조를 통해 이루어지지. 




빨간 장미꽃을 바라볼 때, 우리는 눈으로 장미꽃을 "보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 눈은 꽃의 모양이나 색깔을 직접 보는 것이 아니야. 눈은 단순히 장미꽃에서 반사되는 빛을 시신경 세포로 전달하는 역할만을 해. 실제로 장미를 보는 일은 뇌에서 이루어져. 다시 말하면, 뇌가 장미를 보고, 해석하고, 판단하는 거야. 




https://brainstuff.org/blog/tag/Photoreceptor


망막 내부에는 주로 두 종류의 시각 세포가 존재하지, 그건 막대세포(간상세포, rod)와 원뿔세포(원추세포, cone)야. 


막대세포, 약 1억 2천만 개가 있으며, 주로 명암을 구분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담당해. 이 세포는 빛의 변화에 빠르게 반응하고, 광범위한 시야를 갖추고 있지. 그래서 먼 풍경이나 빠르게 움직이는 물체를 효과적으로 포착해. 인류의 원시적인 조상들이 주로 밤에 활동했을 때, 명암 구분이 중요했기 때문에 발달한 세포야. 막대세포는 원뿔세포에 비해 에너지 사용이 효율적이라는 특성 때문에 수가 훨씬 많아. 


반면 원뿔세포는 총 600~800만 개 정도로, 색채를 구분하는 일을 하고 있어. 이 세포는 파랑, 녹색, 빨강의 세 가지 종류로 나누어져 있어. 인류가 진화하는 과정에서 낮 시간 활동을 늘리면서, 다양한 색채의 물체, 예를 들어 꽃이나 열매를 더욱 선명하게 구별해야 했어. 그래서 발달한 것이 색을 구분하는 원뿔세포야. 



세 종류 원뿔세포의 파장 영역, https://news.samsungdisplay.com/31617을 수정


우리가 색채를 인식하는 건 원뿔 세포 덕분이야. 빨강, 파랑, 녹색의 원뿔세포가 조합해서 색을 만드는 거지. 원뿔세포의 적색 반응 영역은 450~750nm의 파장이고, 노란색에서 빨간색을 인식하자. 녹색 원뿔세포는 400~675nm 파장으로 녹색과 파랑의 색에 반응해. 청색 원뿔세포는 380~550nm 파장의 파란색과 보라색 사이의 빛에 반응하는 영역을 갖고 있어. 빛의 삼원색은 이들 세 종류의 원뿔세포들이 인식하는 빨강, 초록, 파랑을 말해. 세 종류의 원뿔세포가 서로 섞이면서 다양한 색을 인식하는 거야.


https://news.samsungdisplay.com/31617


인간 외에도 여러 포유류들은 원뿔세포를 가지고 있지만, 세 가지 종류의 원뿔세포를 모두 갖춘 것은 인간뿐야. 개나 고양이는 빨간색 파장을 인식하는 원뿔세포가 없어서 빨간색을 정확히 인식하지 못해. 그 대신 주로 파란색과 노란색 스펙트럼의 빛에 반응하지. 이 때문에, 개나 고양이는 빨간색을 갈색이나 회색처럼 본다고 해. 결국, 빨강, 파랑, 녹색의 원뿔세포를 모두 갖춘 인간에 비해 개나 고양이는 색의 다양성을 덜 느끼며 살고 있어. 


장미꽃 빛의 파편 모으기

물체로부터 반사된 빛의 조각들은 망막의 시신경 세포를 통과해 뇌 뒤편의 시각 피질로 전달돼. 시각 피질에서는 이 빛의 조각들을 재구성하여 물체의 형태를 파악하지. 특히, 뇌의 후두엽에 위치한 여러 종류의 시각 피질은 몇 단계의 처리를 거쳐 사물의 형태, 색상, 움직임까지 확정해. 이 과정에서 뇌의 다양한 영역이 연계되는데, 해당 경로는 제시된 그림에서 확인할 수 있어. 이 그림은 시각 경로를 이해하는 데 참고로만 활용하면 될 거야. 


출처 https://www.harvardcounselors.net/cells-fire-together-wire-together.html 수정



우리가 장미꽃을 인식하는 과정을 살펴볼게. 장미꽃은 꽃잎 모양을 따라 빨간색 빛을 반사하고, 나머지 색은 흡수하지. 반사된 빨간색의 장미꽃 모양 파편은 눈의 망막으로 들어오는 거야. 망막의 막대세포와 원뿔세포는 장미꽃 빛의 조각을 명암과 색으로 구분해서 전기신호로 변환하지. 이제 이 정보들은 뇌 뒤쪽의 주시각 피질(V1, V2, V3 등)로 전달되지. 각 시각 피질은 각각 장미꽃 빛의 파편들을 선, 평면, 입체, 그리고 색깔로 모아 형태로 재구성하는 역할을 담당해. 


후두엽의 시각 피질이 빨간색 장미꽃 이미지를 완성하면, 이 정보는 측두엽으로 전달되는데, 측두엽은 복잡한 물체와 얼굴을 인식하는 역할을 담당하고 있어. 측두엽은 후두엽에서 온 이미지가 '장미꽃'임을 판단하게 되지. 이 정보는 그다음 전두엽으로 전달되며, 전두엽은 이를 분석하고, 다른 뇌 부위와 연계하여 장미꽃과 관련된 기억과 추억을 찾아내지. 뇌의 여러 영역은 전두엽에게 장미꽃과 관련된 정보를 제공해 주고, 전두엽은 눈으로 본 이미지와 이전의 경험 및 추억을 통합해 장미꽃을 인식하는 거야. 


똑같은 장면을 봐도 사람마다 느낌이 달라. 이는 막대세포와 원뿔세포의 수와 성능, 그리고 시각피질과 시냅스의 연결 강도가 사람마다 다르기 때문이야. 더구나 각 개인의 경험과 학습, 감정과 정서 또한 모두 달라. 그래서 같은 시간과 장소에서 같은 것을 본다 해도, 각자 다르게 느끼는 거야. 이는 목격담이 사람마다 달라지는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해. 


'보는 것이 다가 아니고,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니다.'라고 하는 말을 기억하면 좋겠어. 왜냐하면 우리가 보는 것은 눈이 아니라 머릿속이기 때문이야. 눈은 중요하지만, 너무 믿어선 안 돼. 어떤 경우에는 인지적 편향으로 인한 잘못된 해석에 빠질 수 있거든. 좀 더 깊이 생각하고 통찰해야 물체를 정확하게 인식할 수 있어. 눈으로 보지 말고, 깨담으로 봐야 해. 깨달음의 길은 항상 어렵지만 그만한 가치가 충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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