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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nry Sep 05. 2023

빛,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빛의 인문학 5】


전자는 여기 번쩍, 저기 번쩍

불연속적으로 움직여 

그런 이상한 나라의 전자가

빛을 만들어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토끼ㅣㅊ


원자,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글을 쓰고 있는 나는 지금 파리의 노천카페에 있어. 그런 내가 같은 시간에 뉴욕 맨해튼에도 있고, 일본의 요코하마에도 있지. 그뿐만 아냐. 나는 양양 해변에도 있고, 포항 칠포 바닷가에도 있어. 한날한시에 나는 세계 각국의 수천 아니 수만 개의 도시에 있어. 그중 어느 곳에 내가 있을지는 확률로만 알 수 있어. 그러다가 누군가 내 위치를 확인하기 위해 레이저 같은 장비로 관측하는 순간, 나는 그 많은 도시 중의 한 곳에만 남지. 나머지의 나는 모두 사라지고 없어.


이렇게 말하면 사람들은 나보고 이상하다고 쑤군대겠지. 무슨 말 같지 않은 소리를 하냐면서 짜증 내는 사람도 있을 거야. 성질 급한 사람은 세상에서 그런 일이 어찌 일어나느냐고 타박하겠지. 그런데 이런 일이 실제로 일어나는 곳이 있어. 정말이야. 원자 안의 세상에서는 지금도 이런 일이 벌어져. 원자의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은 '이상한 나라에서 경험한 엘리스의 모험'이라고 하면 될 거야. 영화 <오펜하이머>에 나오는 양자물리학 버전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이야기라고 할까.


우리는 빛을 찾아 떠난 여행의 두 번째 역에서 내렸어. 이제 물질의 내부에서 발생하는 빛의 근원을 찾아볼 거야. 온도를 가진 물질은 빛을 낸다고 해. 그건 그 물질 내부의 전자가 열을 받아 일어나는 현상이야. 물질이 내는 빛을 탐구하려면, 전자의 움직임을 알아야 해. 그래서 이상한 나라, 원자 내부로 들어가야 하는 거야.  


우리가 아는 세상의 물리법칙은 계산이 딱 맞아떨어져야 해. 별들의 공전 궤도는 정확한 주기를 갖고 있어. 우리가 사는 땅 위의 물리법칙은 확정적이고 정확하지 않으면 안 돼. 그게 불규칙적이고 불확실하면 저 먼 우주로 탐사선을 내보낼 수도 없고, 별의 움직임을 정확하게 관찰할 수도 없어. 물리법칙이 확정적이지 않다면, 우리가 일군 세상이 한순간 와르르 무너질지 누가 알아. 


원자의 세상은 불확정적인 곳이야. 물질의 기본 단위인 원자를 구성하는 것은 핵과 전자야. 전자는 가운데 있는 핵 주위를 움직이고 있어. 전자가 지금, 이 순간 어디 있는지 위치를 알 수 없어. 또 한 개의 전자가 같은 순간에 동시에 여러 군데 존재해. 물질을 구성하는 원자가 내부 전자는 이렇게 불확정이어서야 불안해서 살겠나. 그런데도 원자는 붕괴하지 않고, 세상은 잘 돌아가. 


이상한 원자 나라에서는 무슨 이런 얼토당토않은 일이 벌어질까. 이걸 알아보기 위해 수소 원자 내부로 들어가 볼 거야. 수소는 우주에 가장 많이 존재하면서 양성자(핵) 1개와 전자 1개로 이루어진 가장 단순한 구조야. 그래서 우리가 탐험하기에는 더할 나위가 없지. 수소 원자 모형은 태양의 핵융합 이야기할 때 이미 소개했어. 우리는 원자 내부의 핵 주위를 전자가 돈다는 것을 소개했어. 그걸 그림으로 표현하면 아래 모양이 나올 거야.




궤도가 하나인 수소 원자 모형


수소 원자는 양성자인 핵을 중심으로 전자가 돌고 있는 것은 이 모양이 맞아. 그렇지만, 수소 원자는 이렇게 하나의 궤도를 매끄럽게 도는 모양이 아니야. 마치 전자가 궤도의 한 점에서 위치가 서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전자는 계속 움직이고 있어. 그것도 한 곳에만 있는 곳이 아니고 여러 곳에, 동시에 존재해. 


궤도가 3개인 수소 원자 모형


이 그림에서는 전자 3개가 3개의 궤도 위를 움직이는 것처럼 보여. 그림에는 전자가 3개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건 아니고 한 개의 전자가 동시에 세 군데 존재하고 있어. 이게 무슨 뚱딴지같은 말인가. 전자는 하나인데 어떻게 세 곳에, 동시에 존재한다는 말인가. 이런 현상을 양자 중첩이라고 말해. 이것도 수소 원자의 정확한 모양이 아니야.


여기도 있고, 저기도 있고


궤도가 전자구름인 수소 원자 모형


실제 수소 원자 내부는 이런 모형이야. 핵을 가운데 두고 전자가 구름 모양으로 퍼져 있어. 전자가 한 군데만 있는 게 아니고, 세 군데도 아니고, 동시에 이렇게 많은 곳에 퍼져 있어. 내가 세계의 수만 개 도시에 존재한다는 이야기가 바로 이거야. 이게 무슨 말일까. 전자는 하나인데 이렇게 많은 곳에, 동시에 존재하다니, 이게 말이나 되나. 그렇다면 도대체 전자가 어디에 있느냐고 반문할 거야. 답은 위의 그림 속 점들이 다 전자가 있는 곳이야. 각각의 점은 그곳에 전자가 위치할 확률을 이야기해.


전자가 있는 위치를 한 곳으로 딱 확정할 수 없는 것을 불확정성 정리라고 해. 말도 안 되는 이야기로 들릴 거야. 오죽하면 "전자가 어디에 있는지는 확률로만 알 수 있다"라고 말한 양자물리학자의 주장에 아인슈타인이 발끈했을까. 아인슈타인이 "신은 주사위 놀이를 하지 않는다."는 유명한 말을 내뱉은 까닭이 이거야. 아인슈타인의 불편한 심기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양자물리학자들은 아인슈타인의 말을 조목조목 반박했어. 결과는 원자 내부에서 일어나는 이상한 현상이 옳다고 판명 났어.


지금 우리는 빛의 근원을 찾아 원자 내부를 여행하는 중이야. 순조로운 여행을 위해서는 전자가 어떻게 움직이는가를 이야기해야 해. 전자는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는 도저히 일어날 수 없는 행동을 하고 있어. 그래서 이상한 나라 원자 속의 전자라고 이야기할게. 


우리는 양자물리학의 세계로 들어왔어. 아 참, 진짜 중요한 이야기가 있어. 이걸 이해하려고 노력하면 힘들고, 개념을 이해했다면 그냥 받아들여야 해. 왜 이런 일이 벌어질까 하고 고민하면 안 돼. 원래 양자물리학의 세상은 이해할 수 없는 그런 나라야. 원래부터 그런 세상이구나 생각하면 속 편할 거야. 


전자는 에너지를 얻으면 더 높은 궤도로 튀어 올라. 반대로 에너지를 잃어버리면 낮은 궤도로 내려오지. 전자는 '정상 상태'라고 불리는, 에너지가 낮은 자리를 좋아해. 외부로부터 에너지를 얻으면 높은 자리로 옮기지만, 다시 안전한 낮은 자리로 가려고 에너지를 방출하지. 이때 빛이 발생하는 거야. 이 내용은 다음 글에서 상세하게 이야기하기로 하고, 대신 수소 원자 내부의 이상한 모습을 설명할게.


세상은 텅 비었다?

수소 원자 내부는 양성자 하나에 전자 하나로 단출해. 수소 원자의 크기는 25피코미터(2.5 곱하기 10의 마이너스 11승)라고 했어. 이 크기는 0.00000000001미터에 해당해. 얼마나 작은 크기인지 짐작할 수 있을까. 이 좁은 공간 안에 핵과 전자가 있다는 이야기야. 핵은 더 작은 크기인데 지름이 약 1펨토미터(10의 마이너스 15승)로 0.000000000000001미터야. 전자는 지름이 10의 마이너스 18승(0.000000000000000001) 미터로 정말 작아.



수소 원자, 핵, 전자의 지름 추정


원자 내부의 크기를 유추하기 위해 이렇게 그려봤어. 전자의 지름을 1미터라고 가정하면, 핵의 지름은 1킬로미터가 될 거야. 수소 원자의 지름은 10만 킬로미터가 돼. 이것은 12,742킬로미터인 지구 지름의 약 7.8배에 해당해. 이건 내가 이해를 돕기 위해 추정한 값이라 상대 비교로만 활용하면 좋을 거야. 지구 지름보다 7.8배나 큰 수소 원자 안에 1킬로미터의 핵이 하나 있고, 겨우 1미터에 불과한 전자 하나가 있어. 나머지 공간은 어떻게 될까? 놀랍게도, 그 나머지 공간은 대부분 빈 공간이야. 


원자 내부 공간이 얼마나 비어 있는지 정확하게 알아보려면, 원자핵의 부피와 전자구름의 부피를 계산해야 해. 이건 챗GPT 4.0의 도움을 받아 계산했어. 그랬더니 원자핵의 부피는 약 4.2 곱하기 10의 -45승 세제곱미터이고, 전자구름의 부피는 약 4.2 곱하기 10의 -30승 세제곱미터야. 이 둘을 나눠보면, 원자에서 핵이 차지하는 공간은 10의 -13승 %가 되는 걸로 나와. 이걸 수치로 환산하면 0.0000000000001%가 된다고 해. 이 말은 원자 내부 공간의 99.99999999999%가 비어 있다는 뜻이야.


이런 사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세상을 구성하는 원자의 내부가 대부분 비어 있다는 것, 이건 정말 놀라운 사실이잖아. 이게 말이 돼? 믿기 힘들지만, 사실이라고 해. 지구에 사는 80억이나 되는 사람들의 원자 내부 빈 곳을 빼고 나면 그 크기가 우리 눈에 보일 정도로 줄어들어. 그렇다면 우리가 갖고 싶어 하는 강남의 아파트도 빈 곳을 빼면 먼지보다 작아지겠지.


이상한 나라의 원자 이야기를 하다 보면, 모든 게 허망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까. 확실한 것은 아무것도 없고, 그저 확률로만 존재하는 세상을 우리는 살고 있어. 그것도 우리 몸의 실체가 텅 비었다고 생각해 봐. 사랑도 우정도 빈 껍데기의 사람이 하는 일이라고 말하면 지나친 감정의 비약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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