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의 인문학 6】
원자의 내부가 대부분 비웠다고
그곳에 아무것도 없는 것이 아니야
전자기력의 상호작용이
세상의 물질을 구성하지
공(空)이라고 아무것도 없는 게 아냐
원자 내부의 대부분이 비어있음을 고려하면, 그것들이 모여 형성된 물질 역시 공간의 대부분이 비어 있다고 할 수 있어. 그렇지만, 이 '비어있는 공간'은 그저 무의미한 빈 공간이 아니야. 원자 속의 전자가 핵으로부터 탈출하지 않도록 강력한 전자기력이 그 곳에 존재해. 이 전자기력은 원자핵과 전자 사이의 중요한 상호작용을 맡고 있죠어. 전자기력의 상호 작용이 없다면, 전자는 원자 밖으로 탈출하고, 우리 몸과 물질은 해체될 거야.
이쯤 되면 불교 경전 ≪반야심경≫의 유명한 “색즉시공 공즉시색(色卽是空 空卽是色)”이라는 구절이 떠올라. 공(空)은 인도 경전 속의 산스크리트어인 "슈니아타Śūnyatā"를 번역한 말이야. 원래의 뜻은 물질이나 사상은 독립적으로 존재하지 않고, 다른 것과 상호의존하며, 끊임없이 변한다는 것을 말한다고 해.
모든 물질과 현상은 ①독립해서 존재하지 않고, ②무엇인가 일어나게 하는 요소나 원인이 되는 인(因)이 있으면, 외부의 특정 조건이나 환경인 연(緣)과 상호작용하지. ③그 결과로 새로운 물질과 현상인 색(色)이 만들어지고, ④이렇게 만들어진 물질과 현상은 다시 외부와의 상호작용을 거치면서 끊임없이 변화하고 최초의 상태는 사라져. 바로 이 네 단계의 개념을 합한 것을 공(空)의 개념으로 받아들였어.
일반인들은 빌 '공(空)'이라는 한자에 먼저 눈이 가지. 많은 사람들이 '공'을 물질적인 빈 공간으로 생각하기 쉬워. 그래서 '공(空)'의 진짜 의미를 잘못 해석하는 경우가 많아. '공'의 진정한 의미는 모든 물질과 현상이 독립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나타내지. 이것들은 상호작용과 변화를 통해 생겨나고, 변화하며, 결국 소멸하게 돼. 그렇게 해서 원인과 조건이 만나 형성된 것들, 즉 '색'은 시간이 흐름에 따라 변화하고 사라질 거야.
색(色)은 원인과 연이 상호작용해서 생긴 물질, 현상을 말해. 거기에는 당연히 생각과 욕망도 포함되지. 이렇게 생겨난 것들은 외부와 상호의존되어 있고, 외부 환경의 영향을 받음에 따라 시간이 지나면서 변화하지. 그래서 최초의 생각이나 욕망이 달라지고 사라져, 생겨난 색은 언젠가 변하고 사라져서 다시 공(空)으로 돌아가지.
양자물리학의 원자론과 불교의 '공' 개념은 서로 다른 영역에서 나온 이론이야. 하지만, 둘 사이의 연관성을 발견할 수 있어. 원자의 내부 구조를 연구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특성이 '공'의 개념과 어느 정도 일치한다는 사실은 굉장히 흥미로워. 그래서 양자물리학과 반야심경의 만남이 더욱 기대되는 것이 현실이야.
공(空)에서 색(色)을 만드는 전자
전자가 공(空)에서 색(色)을 만드는 것을 보려면, 먼저 전자가 움직이는 모습을 이해해야 해. 전자는 불연속적으로 특정한 궤도를 따라 움직여. 그래서 자기 궤도가 아닌 곳에서는 모습을 보이지 않아. 이걸 다른 말로 하면, 전자는 특정 에너지 레벨(궤도)에서만 존재한다고 하지. 전자의 궤도를 결정하는 에너지의 크기는 불연속적인 특정 물리량(값)을 가졌어. 전자의 궤도가 특정한 물리량(物理量)을 가졌다는 것을 그 궤도의 에너지가 양자화(量子化)되었다고 표현하지. 여기서 Quantum Physics라는 말이 나왔고, 이것을 양자물리학(量子物理學)으로 번역했어.
그림에서 왼쪽의 공은 연속적인 흐름을 보이며 비탈면을 내려오지. 반면에. 오른쪽 계단을 내려오는 공은 특정한 높이 값의 계단을 내려오지. 이렇게 불연속적으로 떨어지는 계단을 원으로 생각하면 원의 궤도가 불연속적으로 이어진 모습이 되는 거야. 정리하면, 전자가 움직이는 궤도는 특정한 에너지 크기로 양(量)이 정해져 있어. 궤도를 이동하더라도 특정한 에너지 값, 즉 양자화된 자기 궤도로만 움직이기 때문에, 전자는 마치 여기서 번쩍, 저기서 번쩍하는 모습을 보이지.
그림은 두 개의 궤도를 가진 전자의 움직임을 보여주고 있어. 그림 왼쪽의 높은 에너지 상태는 바깥쪽 궤도를 돌고 있는 불안정한 상태야. 이와 달리 오른쪽은 전자가 낮은 에너지 준위를 가졌기에 '정상 상태'라고 말하지. "정상 상태" 가장 낮은 에너지 궤도를 갖기 때문에 핵에 가까이 있어. 그렇지만 핵에 달라붙지 않는 까닭은 가장 낮은 에너지의 궤도가 경계를 지어주지. 가장 낮은 에너지 궤도에 도달하면 전자는 더 이상 에너지를 방출할 수 없고, 그래서 핵 쪽으로 붙을 수 없는 거야.
반면, 전자는 정상 상태보다 높은 에너지 궤도에 있으면 "흥분 상태"(excited state)에 놓여. 전자는 정상 상태의 낮은 에너지에서 높은 에너지로 가는 것을 몹시 꺼려. 왜냐고?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 현상이라 말할 수밖에 없고, 뚜렷한 이유는 몰라. 아무튼 전자가 안정된 상태로 내려가려면, 에너지를 방출해야 해. 바로 이때 빛이 발생하는 거야. 그림의 오른쪽은 낮은 에너지 상태로 돌아가 안정된 전자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지.
전자는 독립적으로 존재할 수 없고, 밖으로 탈출하려는 (-)의 전자를 (+)의 양성자(핵)와 묶어두는 전자기력에 상호의존하고 있다고 했잖아. 위의 그림 오른쪽을 보면, 빛(인)을 외부로부터 공급받은 조건(연)이 상호작용한 결과, 전자는 상위 궤도로 올라가는 새로운 현상(색)이 생겼어. 새로운 궤도로 점프한 전자는 흥분한 상태가 되어 낯선 환경의 영향을 받는 걸 싫어해. 전자는 에너지를 빛으로 방출하고 원래의 낮은 에너지의 상태로 돌아가. 그게 왼쪽 그림에 나와 있는 모습이야.
처음 정상 에너지 상태에 있던 전자는 외부로부터 에너지 공급이라는 상호작용, 즉 인과 연으로 새로운 빛(색)이라는 현상을 만들었어. 전자가 빛을 방출한 것은 흥분 상태에서 외부 환경을 견디지 못한 결과라고 보면 될 거야. 그렇게 빛을 방출한 전자는 원래의 상태인 공(空)으로 돌아간 거야. 나는 전자의 움직임을 '공즉시색 색즉시공'이라고 해석했어. 물론 이러한 해석이 어찌 불교의 심오한 공의 개념을 제대로 반영할 수 있을까만, 이해하고 받아들이기 위해 이렇게 생각한 거야.
이미 있던 것이 훗날에 다시 있을 것이며
원자 내부의 전자기력은 전자와 핵 사이의 밀당을 유도하고, 이러한 상호 작용은 원자와 분자의 구조와 안정성을 결정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해. 다시 말하면, 핵과 전자 사이의 상호 작용으로 원자를 형성하고, 원자들이 모여 분자를 만들지. 그 분자들은 물질을 형성하고, 물질이 실체적인 형태를 갖추면 물체가 되는 거야.
우리의 두뇌도 세포와 단백질이라는 물질로 이루어져 있어. 두뇌가 생각과 욕망이라는 현상을 만들지. 두뇌의 신경세포인 뉴런과 시냅스도 분자와 원자로 이루어져 있어. 원자와 분자의 구조를 결정하는 것이 전자기력이라는 상호 작용이라고 했어. 그렇다면 생각과 욕망인 색(色)을 만드는 것도 원자 내부 핵과 전자의 상호 작용인 공(空)의 결과물이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
이렇게 해석하면, “색즉시공 공즉시색(色卽是空 空卽是色)”과 물질의 근원인 전자의 움직임은 많이 닮았어. 둘 다 상호의존성, 상호작용, 변화와 불확실성을 내용에 담고 있어. 그렇지만, 서로가 워낙 다른 접근 방법을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둘 사이의 유사성을 증명하는 과학적 증거는 아직 많지 않아. 그저 내 생각이 그렇다는 거야.
빛은 태양 속에도 있고, 물질 속에도 있어. 쇠는 용광로 속에서 높은 열을 받아 펄펄 끓으면서 빛을 마구 쏟아내지. 사람의 몸도 열이 있기 때문에 빛을 낸다고 해. 하지만, 우리 몸에서 나오는 빛은 가시광선보다 파장이 길어 눈으로 볼 수 없어. 이 대목에서 "이미 있던 것이 훗날에 다시 있을 것이며, 이미 일어났던 일이 훗날에 다시 일어날 것이다. 이 세상에 새것이란 없다."라고 하는 구약 성경의 구절이 생각나.
생각과 욕망이 생겨날 수 있는 상태인 공(空)은 이미 내 속에 있어. 욕망을 끊어내지 않으면 그것이 인(因)이 되어 연(緣)과 상호작용하겠지. 실체도 없고 본질도 없는 헛된 욕망은 다 내 속에서 만들어지고, 외부와 상호작용하면서 무럭무럭 자라는 거야. 그걸 알면서도 욕망의 씨앗을 끊어내지 못하고 있지. 깨달음을 얻지 못하고, 그저 머릿속에서만 존재하는 내 빈약한 지식 탓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