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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nry Aug 07. 2023

화가를 가난에 빠뜨린 소녀의 파랑

【색(色)의 인문학 10】



먼 바다를 건너온 울트라마린 블루

값비싼 청금석으로 만든 안료

그 때문에 화가는 가난했고

그 때문에 위대한 작품을 남겼어




화가는 늘 가난했다.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1665) 페르메이르


파랑 중에도 귀하디 귀하신 몸인 내 이야기를 해볼까. 나는 울트라마린 블루(ultramarine blue)야. 컬러의 세계에서 나는 자수성가의 모델이라고 할 수 있어. 한때는 바닥에서 빡빡 기는 신세였다가 12세기부터 성모 마리아의 파랑이 되었어. 나는 천상의 여왕인 성모께서 신과 인간을 중재하는 역할을 하는 색이 되었어. 성모 마리아가 입고 있는 강렬한 파란색은 보통 파란색으로는 발도 못 붙이지. 가장 귀하고, 가장 권위 있는 나, 울트라마린 블루만 그 일을 할 수 있어.


사실 먼저 고백할 게 있어. 나를 좋아하는 화가들이 참 많았어. 내가 워낙 뛰어난 컬러잖아. 내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 화가들이 돈을 펑펑 썼어. 레오나르도 다 빈치도 그렇고 요하네스 페르메이르도 그랬어. 나 때문에 돈을 너무 지출해서 파산한 화가들도 한둘이 아니야. 그걸 생각하면 미안하기도 하고 마음이 아파.


자, 이제 위의 그림을 봐. 고개를 돌려 화가를 쳐다보는 소녀의 큰 눈망울, 관능적인 선홍색 입술, 도드라지게 빛나는 얼굴, 파란색 터번에다 진주 귀걸이가 밝게 빛나. 그녀를 제외한 모든 것은 칠흑 같은 어둠에 묻혀 있어. 밝음과 어둠을 극적으로 대비한 덕분에 소녀의 모습이 더 돋보이지. 알지 못하는 것을 동경하는 것이 사람 마음이라 소녀의 신비로운 모습이 사람들의 시선을 끌어.


네덜란드 화가 요하네스 페르메이르(Johannes Vermeer, 1632~1675)의 작품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의 이야기야. 페르메이르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빛과 어둠의 대조 기법으로 이 그림을 그렸어. 그래서 ‘모나리자’의 분위기와 무척 닮았어. 네덜란드 사람들은 이 작품을 ‘네덜란드의 모나리자’ 혹은 ‘북유럽의 모나리자’라고 부를 정도야. 이 그림을 국보라 자랑하는 네덜란드 사람의 자부심이 하늘을 찌르고도 남지.

 

딱 봐도 소녀의 옷은 남루해. 값비싼 진주 귀걸이를 한 것이 뜻밖이야. 당시 부자나 상류층 여인이 아니면 할 수 없는 귀걸이야. 입은 옷으로 봐서는 부잣집 딸이 아니고, 오히려 하녀로 보여. 그렇다면 진주 목걸이는 어떻게 된 것일까? 더구나 그 비싸다는 울트라마린의 파란색 터번은 또 뭔가? 호기심인 꼬리에 꼬리를 물어. 어쩌면 화가의 연인이 아닐까 하는 추측이 나올 법도 해.


미국 여성 소설가 트레이시 슈발리에(Tracy Chevalier)는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를 주제로 소설을 썼어. 이 소설은 영화로도 만들어졌지. 콜린 퍼스(Colin Firth)가 페르메이르로, 스칼렛 요한슨(Scarlett Johansson)이 소녀의 역할을 했어. 아름다운 소녀 그리트가 페르메이르의 집 하녀로 들어오면서 이야기가 시작되지. 그녀는 청소와 빨래 같은 집안의 허드렛일을 도맡아 해. 페르메이르의 화실 청소를 하면서 그림에 관심을 보여.


페르메이르는 그녀의 예술적 재능을 한눈에 알아봤어. 그는 그녀에게 명암과 색채에 관해 설명해 주지. 그는 값비싼 광물을 이용해 염료를 만드는 법도 가르쳐. 울트라마린의 파랑을 만드는 그 비싼 청금석도 등장하지. 그림 속 소녀가 쓰고 있는 두건도 울트라마린 블루야.


여기서 잠깐 짚고 넘어갈 게 있어. 물감의 안료 중 비싸기로야 보라가 제일이야. 나중에 보라색을 이야기할 때 자세히 설명하겠지만, 가격으로 따진다면 나도 보라에 비할 바가 못 돼. 하지만 화가들이 그림 그릴 때 보라색을 쓸 일이 그리 많지 않아. 하지만, 파란색은 어때? 파란색을 칠할 곳이 많아도 너무 많아. 이왕이면 최고의 파랑인 나를 사용해 그림을 그리려는 것은 화가의 로망이잖아.


여담이지만, 영화 속 두 사람의 관계는 모호하고 아슬아슬해. 유명한 화가와 아름다운 소녀는 주인과 하녀이자 스승과 제자이기도 해. 욕망과 열정이 폭발할 기회를 몇 번이나 넘기고 말지. 두 사람은 그림이 완성되는 날까지 어떤 고백이나 사랑의 밀어도 속삭이지 않아. 화가는 그림을 완성하지만, 사랑을 미완으로 남겼어. 관심 있는 사람은 영화를 보면 되니까 그 이야기는 이만 그칠게.  



바다 건너온 귀한 몸

울트라마린 블루의 청금석 가루


나는 파란색 가운데서 가장 아름답다는 명성을 얻었지. 화가들은 오랫동안 색이 바래지 않는 완벽한 파랑인 나를 사랑해. 울트라마린인 나는 보석인 청금석을 갈아 만들었어. 당연히 색이 변하지 않고 오랫동안 아름다운 파란색을 유지할 수 있어. 그러니 내 몸값은 다른 파랑보다 100배 이상이나 비싼 가격으로 거래됐지. 화가들은 그림 주문받으면 울트라마린 가격을 별도로 첨부할 정도였어.


나를 만들려면 먼저 보석인 청금석을 구해야 해. 중세와 르네상스 시대에 청금석은 대부분 지금의 아프가니스탄에서 생산됐어. 유럽의 안료 상인들은 이곳에서 캐낸 청금석을 바닷길로 수입했어. 내 이름인 울트라마린은 라틴어인 울트라마리누스(ultramarinus)에서 나왔어. 그것은 ‘바다를 건넌’, ‘바다 너머’라는 뜻이야. 이제 내 이름이 왜 '바다를 건너온(ultra-marine)' 파란색이라는 이름을 가졌는지 알겠지.


사정이 이렇다 보니, 나는 금보다 비쌌어. 중세와 르네상스 화가들은 고귀한 분이신 성모마리아의 옷을 칠할 때만 특별히 나를 사용했지. 나는 빛나는 성모마리아의 색이며 위대한 어머니의 색이라는 상징성을 가졌어. 가장 고귀한 분한테 사용하는 색으로 나는 존경과 권위의 상징이 된 거야. 이때의 기분을 어떻게 말로 다 하겠어?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성모 마리아를 그릴 때는 나만 고집했어. 그는 그림을 그릴 때 최고의 물감만 사용하는 그런 화가였어. 그건 자기 작품에 대한 자긍심이라고  봐. 그는 그림이 안 팔려 파산하는 일이 있더라도 강하면 울트라마린 블루만 사용했어.



조반니 바티스타 살비 '기도하는 성모 마리아(1640년 ~ 1650년경 추정)'


이탈리아 화가 조반니 바티스타 살비(Giovanni Battista Salvi: 1605-1689)의 그림「기도하는 성모 마리아」야. 울트라마린 블루가 아름다움과 신성함을 제대로 보여주고 있어. 지금도 변색하지 않고 꼿꼿이 처음 그대로의 신성한 본색을 유지하고 있어.


「우유를 따르는 여인」(1658) 페르메이어


네덜란드 화가 요하네스 페르메이어도 늘 울트라마린 블루를 사용했어.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와「우유를 따르는 여인」에 내가 나와. 진주 귀고리가 한 소녀가 머리에 쓴 파란 두건과 우유 따르는 여인의 치마가 나야. 말하자면, 그는 내 팬덤이야. 그 바람에 뛰어난 명성에도 그는 늘 형편이 늘 쪼들렸어. 그건 참 미안하고 마음에 걸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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