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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nry Aug 06. 2023

지적인 파란색 넥타이와 파랑의 힐링

【색(色)의 인문학 9】


야만의 색이자 시체의 색에서

성모 마리아님의 색으로

지식 기업의 색이자

전문가의 넥타이 색으로



'시체의 색'에서 '성모(聖母)의 색'으로

파랑의 스펙트럼


가을날 하늘을 올려다봐. 파란 하늘 속으로 풍덩 뛰어들고 싶게 만들어. 자세히 보면 하늘은 하나의 파랑이 아닌 걸 느낄 거야. 저 높은 하늘은 인디고 블루(indigo)가 보이고, 코발트블루(cobalt blue)와 네이비블루, 울트라 마린 블루(ultramarine blue)가 가을 하늘의 층을 이루지. 때때로 스카이 블루, 퍼시안 블루, 이집션 블루 등 다양한 파랑이 보이기도 해.


사실 나는 가시광선 중에서 450~495 nm의 파장을 가졌어. 무지개색 일곱 가지 중에서 다섯 번째로 파장이 짧아. 내 밑으로는 인디고와 보라만 남아. 아무튼 나는 평온함과 평화로움의 상징이 되었어. 파랑은 관용, 자기 성찰, 이해를 상징하는 차분하고 지적인 색이야. 그러면서도 파란 가을 하늘과 끝 간 데 없는 수평선을 바라보는 고독의 색이기도 하지. 자유롭지만 외롭고, 지적이지만 고독한 색이 바로 나야.


색깔 중에서도 파랑은 많은 시련과 부침을 겪은 색이야. 색의 역사로 보면 파랑은 빨강보다 한참 늦게 세상에 등장해. 로마 시대는 파란색을 ‘죽음의 색’ 혹은 ‘야만인의 색’이라고 경멸했어. 그도 그럴 것이 로마의 변경에 사는 켈트족과 게르만족이 얼굴과 몸에 파란색 칠을 하고는 로마에 쳐들어왔어. 이들은 로마인을 잔혹하게 살해하고 재물을 약탈하고 불을 질렀어. 로마인들은 파란색만 보면 이를 갈고 저주했지.


중세가 시작되면서 켈트족과 게르만족이 유럽 역사의 전면에 서게 되었어. 그들이 선호하던 파란색은 점차 인기를 회복하기 시작했어. 12세기에 교회의 파란색 스테인드글라스가 사랑받으면서 파랑의 인기도 함께 상승했어. 13세기 중반을 지나면서는 파란색의 옷감과 의복이 큰 인기를 끌었어. 14세기에는 파랑이 성모 마리아의 색으로 여겨져 특별한 존중을 받았지.


중세 후반, 유럽 사회의 도덕적 풍조가 파랑의 인기를 더욱 높였어. 15세기에는 중세가 저물며 세상이 큰 변동을 겪었지. 그 시기, 신앙의 경건함과 검소함을 강조하던 종교개혁 운동이 일어났어. 성모 마리아를 파랑의 의상으로 그리면서 파랑의 중요성은 더욱 강조되었지.


18세기에는 파랑의 사용처가 옷에만 국한되지 않았어. 새로운 합성 안료의 발명과 신대륙에서 유입된 인디고 덕분에 파랑의 인기는 정점을 찍었어. 이때 멕시코, 안데스 산맥 등 신대륙의 인디고가 유럽으로 밀려왔어. 이 훌륭한 인디고 블루는 경제적이면서도 품질이 좋아 유럽 사회에서 큰 사랑을 받았어. 중세 이후 이어진 색의 패권 전쟁은 결국 파랑의 승리로 마무리됐다고 할 수 있지.


산업자본주의의 도래에도 파랑의 인기는 계속됐어. 20세기가 되면서 젊은이들 사이에서 파랑은 가장 선호하는 색 중 하나가 되었어. 특히 1950년대 이후 인디고로 염색된 청바지는 파랑의 인기를 더욱 부각했어. 시간이 흘러도 여전히 세계의 젊은이들은 바래진 청바지의 파란색에 열광하는 거야.

  

지적이며 고독한 색

세계적 기업의 로고


1750년대 런던의 부유한 문인들 사이에서 여성 문인의 대화방이 개설되었어. 이들은 저명한 문인들을 초청해 문화와 예술에 대해 토론했지. 당시의 상류 사회 여성들이 카드놀이나 가볍게 수다를 떨던 것과는 확연히 달랐어. 어느 날 한 여성 회원이 파란색 스타킹을 신고 모임에 참석했고, 이로 인해 이들의 모임은 '블루 스타킹 소사이어티(blue stocking society)'로 불리게 되었어. '블루 스타킹'이란 단어는 여성의 교육과 사회적 지위 향상을 추구하는 신진 여성들의 모임을 의미하게 되었지. 


세계적 기업의 로고에서도 파랑의 존재는 두드러져. 인텔, 메타, IBM, 삼성 등 많은 IT 및 첨단 기업들이 로고에 파란색을 활용하지. 국내외 다양한 기업들도 파랑의 지적이고 전문적인 이미지를 활용하고 있어. 사람들은 파랑을 보면 무의식적으로 정직하고 진실성 있는 이미지를 떠올려. 이런 사람들의 심리적 반응을 꿰뚫어 본 기업들은 파랑을 활용하지 않을 수 없어. 게다가 파랑은 어딘지 모르게 전문가의 이미지를 가졌잖아. 


현대에 오면 파랑은 더욱 환상적이고 매력적인 색으로 여겨졌어. 하늘, 바다, 산토리니의 아름다운 경치, 여행, 사랑, 낭만, 휴식 등 많은 아름다운 상징들과 연관돼. 파랑은 마치 먼 이국의 향기처럼 다가와. 지중해나 에게해의 깊은 파란 바다를 연상케 하며, 우리를 어느 순간 멀리 에뜨랑제의 하늘 아래로 데려가 줄 것만 같아. 


파랑은 우리에게 충격이나 상처를 주지 않지. 그것은 반항적이지 않으며, 우리의 충동을 일으키지도 않아. 유행에 민감하지 않으면서도 조용하고 평화로운 느낌을 줘. 파랑은 우리에게 꿈을 꾸게 하지만, 그 꿈은 마치 우수에 젖은 이방인의 꿈과 같아. 아마도 파랑은 다른 색들보다 덜 거부감을 주기 때문에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색일지도 모르겠어. 갑작스럽게 어딘가로 떠나고 싶은 생각이 들 때, 그것은 나의 마음이 파랑에 물들었다고 보면 돼. 


기업, 유명 인사, 언론은 신뢰를 얻기 위해 종종 파란색을 활용해. 정치인들이 신중한 정책을 발표할 때 파란색 넥타이를 선택하는 것도 신뢰감을 주기 위해서야. 신뢰를 기반으로 하는 뉴스 매체는 종종 파란색을 로고나 대표 색상으로 사용하지. 또한, 공정, 진리, 안전, 평화를 상징하는 파란색은 유엔, 세계보건기구, 유니세프와 같은 국제기구의 상징색으로 사용되곤 헤. 


파랑은 때로 고독의 색으로 느껴지기도 해. 그 차분한 빛깔은 혼자의 시간, 성찰과 명상에 어울려. 때문에, 파란색을 슬픔이나 우울함의 색으로 연상하는 사람들이 많아. 영어에는 "feeling blue"라는 표현이 있어, 슬프거나 우울한 감정을 뜻해. 문학과 예술에서도 파란색은 외로움, 그리움, 미련과 같은 감정으로 묘사되곤 해. 바다와 하늘의 광활한 파랑은 무한함을 상징하면서, 그 속에서 인간의 한계와 작음을 깨닫게 하지. 


사실, 파란색이 고독의 상징으로 자리 잡게 된 것에는 괴테의 소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도 큰 영향을 미쳤어. 그 작품 속 주인공, 베르테르는 파란 연미복을 입은 채 슬픔에 젖어 있었어. 이러한 모습이 많은 젊은이들에게 큰 영향을 주었지. 하지만 파란색과 함께할 때, 고독도 포근해지고, 외로움도 아름다워져. 


파란색의 힐링

평온하고 안정적인 느낌을 주는 파랑은 스트레스나 불안을 감소시키는 데에 효과적이야. 감정을 진정시키고 명상을 도와주기도 해. 휴게실이나 휴식 공간에 파란색을 적당히 칠하면 좋은 효과를 볼 수 있어. 실제로 파란색은 심박수와 혈압을 낮추는 효과도 있다고 알려져 있어. 


안타깝게도, 자연에서 파란색의 음식 재료나 식물을 찾기는 쉽지 않아. 오랜 시간 동안 장미 재배업자들이 파란 장미를 만들기 위해 노력했던 것도 이 때문이야. 오늘날 우리가 보는 파란 장미는 자연의 색이 아니야. 2004년 일본의 산토리 회사가 파란색 식물에서 파란색 유전자를 추출하여 장미에 주입하는 방법으로 생성한 거야. 


그중에서도 안토시아닌(anthocyanin)은 식물의 파란색을 띠게 하는 색소야. 이 식물성 화학물질의 농도에 따라 색상이 변하며, 때로는 보라색이나 빨간색 식물이나 과일에도 나타나기도 해. 특히, 자연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블루베리의 뛰어난 항산화 효과는 안토시아닌 덕분이라고 알려져 있어. 



파란색을 띠는 물하늘(Borage) 꽃은 별 모양으로 생겼다 해서 별꽃으로 불리기도 해. 이 꽃은 감기나 피로, 스트레스 증상을 완화하는 전통 약재로 사용되었어. 물하늘 씨앗에서 추출한 오일(borage oil)은 감마-리놀렌산(gamma-linolenic acid)을 다량 함유하고 있어 피부 건강에 도움을 주는 것으로 알려졌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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