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色)의 인문학 11】
뛰어난 실력의 위작 화가
사형 위기에 처한 그의 운명
울트라마린 블루 대신 코발트 블루
그의 착각이 살린 목숨
고흐의 파란색
코발트블루는 전통적인 청색 안료 중 하나야. 울트라마린 다음으로 유명한 파란색이 나, 코발트블루야. 코발트 광석을 사용해서 만든 파랑이라 이런 이름을 붙였어. 코발트 광석은 페르시아에서 주로 생산돼. 자연히 이슬람 모스크의 푸른 타일의 제조에 많이 사용했어. 이슬람 세계는 일찍부터 나를 마음껏 사용했어.
광석을 사용해 만든 나도 가격이 꽤 비싸. 그래서 가난한 화가들이 쉽게 손을 대기는 어려웠어. 프랑스 화학자 루이 자크 테나르(Thénard, Louis Jacques)가 1804년 코발트블루를 합성에 성공하면서 사정이 나아졌지. 테나르가 만든 나는 시간이 지나도 변색하지 않아. 화가들은 드디어 울트마라린 블루를 대신할 새로운 아름다운 나를 만난 거야.
찢어지게 가난했던 빈센트 반 고흐는 울트라마린 안료를 구할 형편이 못 됐지. 그런 그에게 들려온 희소식이 합성 코발트블루 안료의 발명이지. 고흐는 그의 그림에서 나를 부담 없이 사용했어. 「론강의 별이 빛나는 밤」과 생레미의「별이 빛나는 밤」은 짙은 코발트블루의 신비한 밤하늘을 보여주고 있어. 나는 맑고 깊은 푸른색으로, 고흐가 하늘과 강을 그릴 때 자주 사용하곤 했어.
나는 고흐의 그림에 깊이와 강렬함을 더해주지. 고흐는 처음부터 색을 통해 자기감정을 표현하려 했어. 강렬한 파란 색상은 고흐의 작품에서 주요한 역할을 하지. 그의 작품을 신비하고 매력적으로 보이는 요소 가운데 하나가 바로 나, 코발트블루 덕분이야.
그의 대표작 「별이 빛나는 밤」은 생레미 병원에서 탄생했어. 생레미의 창문으로 올려본 밤하늘이 소용돌이쳤고, 그의 영혼도 심하게 회오리쳤어. 그의 격한 감정과 생레미의 밤하늘이 환상적인 이미지를 연출한 거야. 그의 내면의 갈망과 혼란은 코발트색 밤하늘의 회오리치는 구름이 된 거야. 정신이 너덜너덜해진 극한의 고통 속에서 가장 아름다운 걸작이 완성됐어.
코발트블루 덕분에 목숨 건진 그림 사기꾼
제2차 세계대전 중 유럽의 많은 나라가 나치의 만행에 치를 떨었어. 전쟁이 끝나나 네덜란드 정부는 나치 전범을 색출했지. 그 과정에서 화가이자 미술상인 한 반 메헤렌(Han van Meegere, 1889~1947)을 체포했어. 혐의는 네덜란드의 국민 화가 요한네스 페르메이르(Johannes Vermeer)의 <간음한 여인과 그리스도>를 히틀러의 오른팔인 헤르만 괴링에게 판 거야.
네덜란드가 난리 났어. 그들이 가장 사랑하는 화가의 그림을 찢어 죽여도 시원치 않을 괴링에게 팔았으니 네덜란드 국민의 분노가 폭발했지. 철천지 원수한테 국민 화가의 그림을 돈 받고 팔다니? 누구도 용서할 수 없지. 그의 목숨은 바람 앞의 등불 신세였어.
죽느냐 사느냐의 갈림길에 선 메헤렌은 뜻밖의 고백을 해. 사실은 자기가 괴링에게 판 그림이 페르메이르의 진품이 아니고 자기가 그린 가짜라는 거야. 메헤렌의 말처럼 그가 괴링에게 판 그림이 가짜라면 괴링을 속인 셈이지. 네덜란드의 원수인 적국의 장수를 보기 좋게 골탕 먹인 거야. 아니 아예 페르메이르가 그린 적이 없는 그림을 판 셈이지.
이야기는 간단치 않아. 메이헨이 네덜란드 미술관에 판 그림을 평론가들이 페르메이르의 진품이라 이미 판정했어. 그 바람에 네덜란드의 유명 미술관은 메헤렌으로부터 구매한 페르메이르 작품을 진품으로 알고 미술관에 버젓이 걸어 놓았어. 당시 최고의 평론가와 유명 미술관장들의 입장이 말씀이 아닌 형편이 됐어. 그들은 메헤렌이 사형을 피하기 위해 잔머리 굴린다고 맹비난했어.
이거 이야기가 묘하게 돌아갔지. 오래전에 죽은 유명 화가의 그림이 진품인지 아닌지 판정하기는 쉬운 일이 아니야. 가짜 그림에 뛰어난 모작 화가들은 당시의 종이와 물감을 완벽하게 재현하는 경우가 많아. 보통의 그림 사기꾼은 자기가 가진 유명 화가의 그림이 진품이라는 것을 증명해야 해. 그러나 메헤렌은 자기가 판 페르메이르의 작품이 가짜라는 사실을 밝혀야 하는 입장이 됐지.
사람들이 믿지 않자 메이헤런은 직접 붓을 잡고 페르메이르의 기법을 완벽하게 재현했어. 이 말은 메이헨이 페르메이어의 진품을 완벽하게 모작할 수 있음을 증명한 거야. 그뿐이면 말도 안 해. 네덜란드 최고감정가들이 국보급 보물로 보존하자던 <엠마오의 저녁식사>도 메레헨이 그린 위작이었어. 이 작품을 포함한 페르메이르 작품 8점이 역시 그가 그린 것으로 밝혀진 거야.
그렇다고 문제가 다 해결된 것은 아니야. 메이헨의 페르메이어 작품 모방 실력은 인정하지만, 그렇다고 괴링에게 판 <간음한 여인과 그리스도>가 진짜 메이헨이 그린 것인지는 여전히 알 수 없었어. 그림 사기꾼은 늘 진품을 증명해야 했지만, 이번에는 거꾸로 가짜라는 사실을 증명해야 했어.
여기서 놀라운 반전이 일어났어. 코발트색 안료가 네덜란드 예술의 자존심을 둘러싼 논쟁에 마침표를 찍었어. 무슨 말이냐고? 이 그림에서 사용한 코발트블루는 페르메이르가 즐겨 쓴 울트라마린 블루가 아니야. 그가 죽고 난 후 130년이나 지나서 등장한 코발트블루가 사용됐다는 거야. <간음한 여인과 그리스도>에서 나온 코발트색이 그의 목숨을 살린 거야. 페르메이르는 이 그림을 그린 적이 없었다는 게 정답이야.
자, 지금까지의 이야기를 정리해 볼게. 만일 진품을 따진다면 코발트블루를 사용한 메헤렌의 입장은 난처했겠지. 그러나 이번에는 목숨 걸고 가짜라는 사실을 밝혀야 하는 상황이야. 메헤렌이 코발트블루를 사용한 건 신의 한 수였지. 메헤렌이 색의 역사를 제대로 알았더라면 울트라마린 블루를 사용했을까? 아니면 알고도 너무 비싸 그걸 쓸 수 없었을까?
원래 메헤렌은 미술을 공부하려 했어. 아버지의 강한 반대에 부딪쳐 건축공학으로 방향을 틀었지. 재능이 뛰어난 그는 그림을 잘 그렸고, 화가의 길로 접어들었어. 세상은 이미 인상주의 사조로 변했는데 그는 고전주의 화풍으로 그림을 그렸어. 평론가들은 그를 한물간 구닥다리 화풍의 화가로 깎아내렸어. 그의 뛰어난 위작 능력 덕분에 이후 영국 BBC에 의해 역사상 가장 위대한 사기꾼 중 한 명으로 평가받기도 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