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Henry Aug 11. 2023

인디고 색 동해가 보고 싶은 아침

【색(色)의 인문학 12】


동해의 짙은 쪽빛

인디고의 깊은 명상

신비롭고 지혜로운

깊고 푸른 바다를 보고 싶다


https://www.wholesalesuppliesplus.com/Images/Articles/2110-Indigo-Color-Article.png


인디고의 동해에 가면

세상이 너무 어지러워. 하루가 멀다고 잔혹한 사건이 꼬리를 물고 있어. 각자 알아서 살아야 한다는 말인지 당혹스러워. 그렇다고 정부가 손 놓고 있지는 않아. 치안이 잘 갖춰진 우리나라가 자존심 구길 일을 두고 볼 리 없지. 문제는 경찰의 힘만으로 해결할 수 있을까? 날은 습하고 덥고, 나라 안팎에서 들려오는 소식이라곤 다 그게 그거야. 게다가 태풍이 강한 바람을 몰고 온다고 하니 이래저래 마음이 뒤숭숭해.


이럴 때 뭘 할까? 여행을 떠나는 거야. 멀리 지중해나 에게해의 짙푸른 바다를 보면 좋겠지. 지갑을 열어보곤 바로 패스해야지. 그래도 이대로 꿀꿀한 마음을 가지고 있긴 너무 힘들잖아. 그래 동해의 검푸른 바다를 보러 가자. 한때 고래를 잡으러 가자고 목청껏 소리친 적도 있었지. 삼등 완행열차는 사라졌고, 추억마저 흐릿해졌어. 그러니 더 늦기 전에 가보는 것도 좋을 거야.  


날씨가 찌푸리고, 비라도 내리면 더 좋아. 왜냐고? 그런 날 바다 물색은 인디고 색으로 변해. 신비하고 오묘한 검정의 파랑을 만나지. 그곳에서 서서 한참을 바라보면 마음이 한결 편안해질 거야. 양양도 좋고 강릉도 좋아. 아니면 칠포나 구룡포면 어때. 그렇다고 태풍을 온몸에 맞으라는 뜻은 아니야. 비가 내릴듯한 짙은 구름 덮인 그런 날도 좋다는 뜻이야.  


나는 가끔 양양의 짙푸른 바다를 보러 가. 물론 바다만 보러 가는 게 아니라 자주 가는 사찰을 찾아가는 길에 바다에 들러. 이건 작년 가을의 여행 일지야. 아침 6시 30분 속초행 첫차를 타. 웬 속초행 버스냐고? 버스는 양양군에 들렀다가 종착지인 속초로 가는 거야. 도로가 막히지 않으면 3시간 남짓하면 양양터미널에 도착해. 거기서 느긋하게 2시간 가까이 기다리다가 11시 20분 인구면으로 가는 버스를 타.


버스나 기차 여행은 다음 교통편과 연결 시간을 딱 맞출 수 없어. 다음 목적지로 가기 위해서는 기다림과 떠남을 반복해야 하지. 더딤과 느림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자차로 가야 해. 대중교통으로 여행할 때는 늘 처음 계산할 때보다 시간이 더 걸려. 기다림 때문이야. 기다리며 주위를 찬찬히 둘러보는 것은 여행의 또 다른 재미라 생각해. 그래서 먼 길을 떠날 때는 버스나 기차를 자주 이용하지.       


터미널을 출발한 버스는 양양군 이곳저곳을 들러. 아름답기로 이름난 하조대(河趙臺) 정자가 있는 해변 마을을 지나. 하조대를 돌아 버스는 이윽고 서핑의 성지라는 인구해변에 도착하지. 인구해변의 도로에는 늦가을 서핑을 즐기는 이들이 몰고 온 차들이 즐비해. 인구 채 3천 명도 아닌 바닷가 작은 마을에 사람들로 북적이는 게 참 신기했어.       


해변 승강장


12시가 다 되어 버스는 인구면 현남중 앞바다가 정류장에 도착했어. 버스에서 내리면 곧바로 해변이야. 비바람에 온통 녹이 슬었지만 앙증맞고 귀여워. 작은 계단을 내려서니 짙푸른 동해가 나를 반겨. 바닷바람은 이내 머리를 헝클어 놓지. 끝 간데없는 바다는 하늘과 맞닿았고, 철 지난 바다는 쓸쓸해. 사람 그림자 하나 없는 인디고의 동해에 서면 마음이 그렇게 차분할 수 없어.


쪽빛 인디고의 모호함

지금부터 깊은 침묵과 조용한 명상의 색인 나, 인디고(Indigo) 이야기를 해볼게. 뉴턴은 빛을 일곱까지 색깔로 분류했고, 인디고도 그중 하나야. 인디고는 가시광선에서 420-450nm의 짧은 파장을 가졌어. 무지개 속에서 나를 찾는 일은 쉽지 않아. 게다라 우리 눈이 인디고 색상을 다른 색상만큼 잘 감지하지 못해. 이런 까닭에 사람들은 무지개색에서 나를 빼기도 해. 파란색과 보라색을 동시에 띠는 그저 어두운 파랑이라는 뜻에서 인디고블루라고 부르기도 해.


우리말로 '쪽빛'을 뜻하는 인디고블루는 어두운 기운이 강한 청색으로 언뜻 보라색처럼 보이는 인디고(Indigo)는 수천 년 동안 인디고페라(Indigofera) 속에 속하는 여러 식물 중 하나야. 이 식물의 잎에서 추출한 천연염료가 바로 인디고야. 인디고는 서아프리카와 인도 등에서 많이 재배했어. 이 식물은 수천 년 동안 염색과 약용으로 사용되어 왔어. 사람들은 인디고로 옷이나 예복 등을 파란색으로 물들였어.


그 옛날에는 인디고가 엄청나게 돈 되는 아이템이었어. 인디고는 생생한 빛깔이 곱고, 물이 빠져도 아름답게 빠지지. 덕분에 인디고의 청바지가 세계적인 유행이 되었고, 패션 민주화의 상징색이 되었어. 오늘날 인디고는 노동자의 옷을 떠올리게 하지만, 인디고 색은 여전히 고급스럽게 보여.


인디고블루는 바이올렛에 가까운 짙은 파랑이야. 그러다 보니 인디고는 파랑과 떼고는 이야기할 수 없어. 따지고 보면 파랑의 역사와 중복되면서 가끔은 보라의 역사도 투영되기도 해. 그렇지만 대세는 어디까지가 검은 파랑이라고 보면 돼. 지금도 인디고는 청바지와 미술, 그리고 인테리어 디자인 등에서 사용하고 있어. 청량감과 심오함을 주는 검은 파랑은 여전히 사람들의 인기를 끌고 있지.


인디고는 지중해 사람들이 많이 사용했어. 쏟아지는 따가운 태양 빛을 달래기 위해 하얀색의 벽과 인디고의 도움으로 집을 지은 거야. 에게해의 산토리니 사람들도 인디고의 짙은 파랑을 좋아했어. 쉐프샤우엔(Chefchaouen)은 모로코 북부 리프 산맥에 위치한 작은 마을이 있어. 마치 스머프가 사는 마을 같아. 마을 건물과 벽이 온통 파랑으로 넘쳐. 이 마을의 파랑은 무척이나 다양하지만, 그 속에 있는 인디고가 독특한 매력을 풍기지.  


우리가 자연에서 파란색을 얻을 수 있는 물질은 많지 않아. 인디고 염료의 식물은 어디서나 쉽게 구할 수 있었어. 과거 파랑과 보라 사이의 경계색을 힘들었을 때 인디고 인기는 하늘을 찔렀어. 그렇지만, 햇빛에 바래기 쉬운 것이 단점이 있어. 화가들은 대작을 그리거나 중요한 그림을 그릴 때는 다른 파랑 안료를 구해야 했어. 지금까지 이야기했지만, 울트라마린 블루나 코발트블루가 그래서 인기가 높았던 거야.


인디고 색의 과일이나 식물을 자연에서 보기는 매우 힘들어. 그중에서도 짙은 파란색을 띠는 블루베리(Blueberries)가 정도가 힐링의 음식 재료로 이용돼. 블루베리는 파란색, 인디고, 보라까지 다양한 색을 보여. 불루베리는 안토시아닌 덕분에 뛰어난 항산화 효과를 보여. 


인디고는 깊은 청색과 보라색 사이의 색상이야. 미묘한 색상인 인디고는 심리적, 영적인 치료 효과를 가지기도 해. 인디고는 사람들이 깊이 있는 직관과 생각, 그리고 명상에 몰입하게 도와주고, 집중력을 높여 주기도 하지. 영적 통찰력과 신비주의적 분위기의 인디고는 영적 성장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좋아하는 색상이야. 


인디고의 침묵 속에 빠지고 싶어.

19세기 후반 화학 염료가 등장하면서 자연색 인디고의 자리가 흔들렸어. 시대가 변했고, 신기술이 발달하니 어쩔 도리가 없지. 그렇다고 호락호락 물러갈 인디고가 아니야. 사람들은 화학 안료인 인디고보다 천연 인디고를 더 선호해. 과거 전통적인 염색 방법으로 쪽빛 물을 들이지. 인디고의 독특한 검정 파랑의 색조와 친환경적인 특성으로 여전히 많은 사랑을 받고 있어.


인디고는 신비롭고 깊은 지혜를 상징해. 영적인 통찰과 직관, 내면의 성찰 같은 의미로도 사용되고 있어. 지금도 예술과 디자인, 패션에서 제 실력을 발휘하면서 인디고만의 독특한 느낌을 주고 있어. 청바지의 색상으로 잘 알려졌지만, 세련되고 고급스러운 느낌을 연출하고 싶을 때 인디고를 잘 사용하면 좋아.


이렇든 저렇든 인디고는 파랑에 가까운 색이야. 파랑은 참 신비한 색이야. 그중에서도 인디고는 더 독특해. 파란 걸로 따지면 바닷물만큼 다채로운 파란색은 없어. 바닷물에 손을 담그면 파랗게 물들 것 같아. 정작 손에는 파란 물이 들지 않아. 만지려 해도 만질 수 없는 색이 파랑이야. 그래서 아득하고, 고독하고, 갈망하면서 외로움을 타는 색이야. 인디고는 여기다가 침묵의 무거움도 갖고 있어.


제임스 폭스가 쓴 「컬러의 시간 」(강경이 옮김, 월북, 2022)의 문장 일부를 인용할게. "존재와 부재 상이의 흔들림, 우리를 애태우며 세상의 여백에 존재하는 특성이, 파랑이 지난 문화적 의미의 핵심이다. 파란 하늘이나 수평선을 보면서 어떻게 그 너머를 상상하지 않을 수 있을까?"


인디고는 스카이 블루보다는 멀고, 바이올렛보다는 검정 파랑에 가까운 색이야. 그래서 인디고는 순수 파랑보다 더 모호하게 느껴져. 그게 인디고만의 매력이지. 지금은 인디고블루라 부르며 짙은 파랑으로 봐. 인디고는 오랫동안 사랑을 받았고, 지금도 그 신비함으로 사람 마음을 끌고 있지. 가끔 깊은 침묵 속에 빠지고 싶으면 인디고의 동해로 가는 게 어때?

이전 21화 코발트블루와 사기꾼의 목숨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