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별 경제학 17】
돈이 너무 많아서
절대 권력자 사우디아라비아의 왕세자 빈 살라만이 거금을 주고 <살바토르 문디>를 샀다. 왜 그랬을까? 몇 가지 이유가 짐작이 간다. 하나씩 살펴보자.
첫 번째 이유로 꼽을 수 있는 것은 이미지 변신이다. 살라만 왕세자에게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살바토르 문디>는 이미지 변신을 위한 좋은 도구다. 잔혹한 권력자에서 예술을 사랑하는 사람으로 변신을 꾀한 것이다. 물론 빈 살라만이 진짜 미술을 좋아할 수도 있다. 그가 사우디아라비아를 예술의 나라도 만들고 싶다는 이야기도 있다. 어쨌든 사람들 사이에 그런 말이 나온다는 것은 빈 살라만으로서는 이미지 변신에 성공한 셈이다.
다음으로 생각할 수 있는 이유로는 돈이 너무 많아서이다. 빈 살라만은 자기 재산에서 그림값으로 4억 5천만 달러 쓰는 것은 큰 액수가 아니다. 그림값 5,840억 원은 그의 재산 3,000조의 겨우 0.02%에 불과하다. 말하자면 30억 원 재산가가 54만 8천 원짜리 물건을 사는 것과 같다. 그러니 빈 살라만이 선뜻 그만한 돈을 주고 그림을 사는 이유를 이해할 수 있다. 보통 사람으로서는 백 번도 더 까무러칠 일이지만 말이다.
경제학에서 합리적 소비자의 행동 원리는 자기 소득 수준에서 최고의 만족감을 찾는 것이다. 이것을 한정된 예산에서 효용을 극대화한다고 표현한다. 그렇다면 빈 살라만 왕세자는 자기 재산 규모를 감안할 때, <살바토르 문디>를 4억 5천만 달러 주고 사는 것은 합리적인 행동이다. 그 정도 돈을 쓰고 자기가 좋아하는 그림을 소유한다는 만족감을 극대화할 수 있다.
세 번째 이유로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은 베블렌(Veblen) 효과다. 남들이 갖지 않은 걸 가졌다는 과시효과 말이다. 가질 수만 있다면 얼마든지 시세보다 비싸게 사는 것이 미술품 애호가의 마음이다. 명품을 가지려는 것도 베블렌 효과 때문이다.
<살바토르 문디>의 몸값은 어떻게 결정될까? 그림이든 조각이든 모든 상품의 가격을 결정하는 데에는 수요와 공급의 원리가 작용한다. 사려고 하는 사람의 양과 팔려고 하는 사람의 양이 일치하는 지점에서 물건의 가격이 결정된다. 팔려고 하는 사람이 많고, 사려는 사람도 많은 시장에서는 그림값이 비싸게 매겨지기 어렵다.
그림의 특성은 진품이 하나밖에 없다는 것이다. 경제학적 원리로 보면 공급이 완전히 독점적이다. 공급이 하나밖에 없고, 사고자 하는 사람이 많으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그렇다. 부르는 게 값이고 가격은 꼭대기를 모르고 올라간다. 그것도 고인이 된 위대한 화가의 그림이라면 더 할 말이 있을까.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그린 그림을 누가 대체할 수 있을까. 500년 전의 르네상스 초기로 돌아갈 수 있다면, 다 빈치에게 하나 더 그려달라고 부탁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은 불가능하다. 갖고 싶어 하는 사람은 많지만, 그림은 하나뿐이다. 이런 그림을 갖는다면 누구나 우쭐하고 과시하고 싶어 진다.
그림 가격은 오른다.
마지막으로 들 수 있는 것은 투자 효과다. 샤넬 백은 시간이 흐를수록 값이 오른다. 그것도 한정판이면 더 높은 가격으로 거래된다. 샤넬 백이 이 정도면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그림은 어떨까? 이건 말도 못 할 정도로 값이 오를 것이다. 빈 살라만은 돈이 많아 그림 사는 것이 아깝지 않은 부자다. 게다가 그는 세월이 흐르면 가치가 상승할 것이라는 사실을 잘 안다.
<살바토르 문디>를 사려는 사람의 숫자가 많은 것은 가격 상승의 요인이다. 르네상스 시대의 천재 화가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작품이라는 명성은 수많은 미술품 애호가의 욕망을 부추긴다. 서로 갖지 못해 안달이 나게 만든다.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유일무이한 <살라토르 문디>를 사려는 사람은 줄을 섰다.
그림값은 단지 작품의 예술성 여부로만 결정되는 것은 아니다. 평론가의 비평과 경매회사의 치밀한 마케팅 역량도 한몫한다. 그들은 사람들의 욕망을 우아하게 자극한다. 그 결과, 더 많은 사람이 사려고 하면 할수록 가격은 올라가기 마련이다. 부를 축적한 사람에게 그림의 가격은 그리 큰 문제가 아니다. 갖지 못한 안타까움보다 더 배 아픈 건 없다.
경제의 특성은 재미있다. 기술은 발달하고 생산성은 증가한다. 그 결과 경제는 성장하고 소득은 많아진다. 부자는 더 큰 부를 축적하고, 새로운 부자도 탄생한다. 언젠가는 빈 살라만 왕세자보다 더 돈이 많은 사람이 나타날 것이다. 그는 <살바토르 문디>를 1조 원을 주면서 사고자 덤빌 것이다. 그때 빈 살라만이나 혹은 그의 후계자가 그림을 판다면 높은 수익을 얻는다.
도대체 누가, 왜 무려 6,000억 원 가까운 돈을 주고 그림을 살까? 한 채 30억 원에 달하는 서울 강남의 아파트 200채 가까운 돈을 왜 지불할까? 세속에 물든 나는 그게 무척 궁금했다. 이런저런 이유가 많지만, 위대한 예술품은 무한의 가치를 가진다고 이해하기로 했다.
우리는 먼발치로만 보는 것으로 만족하자. 예술품을 꼭 집에 둬야 맛인가. 박물관이나 미술관에 가서 봐도 좋다. 그도 아니면 사진으로도 감상할 수 있다. 예술의 위대함은 그 가치를 공유하는 것에 있다. 나는 비록 돈은 없지만, <살바토르 문디>를 아끼는 마음
만큼은 빈 살라만 못지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