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色)의 인문학 16】
검은 공포와 죽음의 침묵
막막한 침묵의 어둠 블랙홀
힘과 권의의 색으로
검은색의 화려한 비상
검은 공포와 죽음의 침묵
오늘은 중요한 행사가 있어서 검은색 정장을 선택하는 게 좋겠어. 여성에게는 검정 드레스도 어울릴 것 같아. 고급스러운 검은색은 힘과 권위, 존중과 존경의 상징이니까. 패션은 경쟁력이니 오늘 같은 특별한 날에는 검은색 정장이 먹힐 거야.
사실, 나는 빛의 스펙트럼에 존재하지 않는, 검은색이야. 가시광선의 파장인 380nm~750nm 안에서 나는 찾아볼 수 없어. 검정은 동시에 색이면서 무채색(無彩色)이기도 해. 이는 색상(色相)과 채도(彩度)가 없기 때문이지. 따라서, "검은색은 색이 아니다"라고 주장한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말은 일정 부분 정확하다고 볼 수 있어.
1665년, 아이작 뉴턴은 빛의 스펙트럼을 발견하며 색의 순서를 일곱 가지로 분류했는데, 그때 검은색과 흰색은 포함되지 않았어.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20세기에 들어선 모더니즘 예술가들은 '블랙은 색이다'라고 주장하기 시작했어. 검은색의 정의에 대한 논란은 계속되고 있지만, 그것이 역사상 가장 오래된 색 중 하나라는 것은 분명하다.
태초에는 검은 어둠만 존재했다는 말이 있어. <창세기>에서도 하느님이 "빛이 있으라"하시기 전까지는 세상이 검은 어둠으로 가득 차 있었지. 그 어둠 속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미지의 세계가 숨어 있었어. 그 깊고 광활한 우주의 어둠을 생각하면 그 느낌을 알 수 있을 것 같아.
우주에는 블랙홀이라는, 모든 것을 흡수하는 공간이 있어. 이것이 검은색일까? 정확히는 아니야. 블랙홀은 빛조차 통과시키지 않는 절대적인 어둠의 영역이지. 거기에 무엇이 있다 해도, 그 안에서 되돌아올 수 없으니 블랙홀의 색깔이 정확히 어떤지는 알 수 없어. 다만, 그것이 무엇이든 빨아들이는 절대의 어둠으로 인식될 뿐이야. 우리는 그것을 '죽음의 공간'으로 생각하며, '침묵의 검정'이라 부를 수 있겠어.
자연계에 있어, 검은색을 무서워하는 생명체는 인간뿐이야. 동물들은 검은색을 전혀 두려워하지 않아. 전기가 발명되기 전, 밤이 오면 인간은 깊은 어둠 속에서의 생활에 익숙했어. 촛불이나 횃불로도 짙은 어둠을 완전히 밝히는 것은 어려웠기에, 그 밖의 곳은 밤의 공포로 가득 찼어. 이러한 깊은 어둠의 경험 때문에 인간은 검은색을 보면 자연스레 공포, 암흑, 죽음, 애도와 같은 감정을 연상하게 되는 거야.
빛과 어둠, 낮과 밤, 하양과 검정
빛과 어둠, 낮과 밤, 하양과 검정. 이런 단어들을 들으면 떠오르는 것은 세상의 시작부터 존재한 원초적인 대립이야. 다양한 문화권을 탐험해 봐도, 이 원초적인 대립 구도를 다루지 않은 곳은 거의 없을 정도야. 그만큼 사람들은 이들을 근원적이며 깊은 대립 구도로 인식하고 있어. 그렇지만, 이 원초적인 요소들이 항상 적대적 관계를 의미하진 않았어.
기독교의 등장 이후, 이러한 관점이 변하기 시작했지. 성서는 어둠과 죄를 동일시하며, 죄의 본질을 검은색으로 표현하기 시작했어. 원래 기독교에서는 죄를 묘사할 때 피와 진홍색, 간음과 같은 빨간색 표현을 사용했었지. 그런데 시간이 흘러가면서, 죄의 색깔은 검은색으로 바뀌게 되었어. 이 변화로 인해, 한 시기 기독교에서는 죄를 죽음의 검은색과 연결하여 표현하게 된 거야.
이슬람 세계의 검은색은 사막의 열기를 식혀주는 고마운 색이야. 그렇지만 죽음과 복수를 상징하는 색이기도 했어. 그래서 이슬람의 검은 깃발은 메시아의 뜻과 복수의 의지가 담겨 있어. 또 이슬람에서 검은색은 장엄함과 의례를 대표하는 색으로 간주되었어. 하지만, 동시에 검은색은 불행, 불길한 징조, 죽음, 고통을 떠올리는 색이기도 했지.
옛날부터 이슬람의 재판관들은 법정에서 검은색 의복을 착용하며, 이로 인해 권위와 존중을 표현했어. 이러한 전통은 16세기에서 17세기 초 유럽으로 퍼져갔어. 지금도 세계 각국의 법관들이 검은 옷을 입는 관습이 여기에서 나온 거야. 검은색은 죽음과 불행의 색에서 법관의 권위를 상징하는 색이 된 거야.
14세기 중반부터 서양에서도 검정의 인기가 높아졌어. 특히 종교 개혁의 시기에는 간소하고 엄격한 표현을 중요시하는 신교도들이 검은색을 선호하게 되었어. 그들은 화려한 색상을 피하고, 대신 검은색 같은 어두운 색상을 선호했지. 이런 변화는 문화적 인식의 변화를 통해 사람들이 색에 대한 인식이 변화된 것을 보여주는 좋은 예에 해당하지.
르네상스 이전, 검은색은 화가들에게 큰 도전이었어. 그 당시에는 화학적으로 안정된 검은색 물감을 만드는 것이 굉장히 어려웠기 때문이야. 질 좋은 검은색은 소량만 생산되었고, 상아를 고열로 태워 만들었기 때문에 가격도 매우 비쌌지. 중세의 화가들은 그림에서 검은색을 크게 활용하는 화풍을 갖추지 않았어. 그럼에도 불구하고, 르네상스 시대가 도래하며 검은색은 미술 안에서 그 의미와 위치를 찾기 시작했어.
검정, 권위와 힘의 상징
검은색은 거의 모든 문화에서 불행, 죽음, 증오 등 재수 없는 색으로 불렸어. 한때 검정은 세상의 온갖 나쁜 것을 상징하는 색깔로 여겨졌어. 오죽했으면 검은색을 생명에 적대적인 색이고, 우리 마음에 검은색이 존재할 때 영혼이 떠난다고 표현했을까? 그만큼 검정은 인류 문화에서 어두운 색으로 간주되었지.
검정을 캔버스에 기가 막히게 사용한 화가가 혜성같이 등장했어. 르네상스 시절의 유명 화가 카라바조야. 그는 처음으로 빛과 어둠을 강조하는 그림을 그렸어. 카라바조는 삶 자체가 빛과 어둠의 극적인 대비였어. 그의 화풍을 이어받은 것은 네덜란드의 화가 렘브란트야. 두 사람 덕분에 검은색은 캔버스 위에서 화려한 대관식을 치를 수 있었어. 이 이야기는 그림을 봐야 이해할 수 있기에 다음 글에서 따로 소개할 거야.
드디어 검은색은 힘과 권위의 상징이 됐어. 존중과 존경의 뜻을 가진 색이 된 거야. 수도사들이 입었고, 종교 개혁가들이 좋아했어. 그들은 절제와 겸양과 엄숙의 상징으로 검은색 옷을 입었지. 이런 전통이 꾸준히 이어져 최근 법관의 법복이 검은색이야. 최근에 검정은 고급스러운 이미지, 단순하면서도 세련된 디자인, 다른 색조와의 극적인 대비 효과로 사랑받아. 이제 검정은 디자인, 패션, 인테리어의 고급 마케팅 아이템으로 출세했어.
검정의 힐링
검은색은 시야를 방해하는 요소를 없애 주기 때문에 집중력을 높이는 데 도움을 준다고 해. 그래서 많은 예술가들이 창작 활동을 할 때 검은색 옷을 선호하지. 검정을 보면 어딘가 신비롭게 느껴집니다. 보이지 않고 숨겨진 것을 알고 싶은 것은 인간의 본성이야. 검정은 심리적 안정감을 주며, 다른 색상들의 강렬함을 완화하고 감정의 과열을 줄여주지.
검은 식품은 건강에도 좋아. 블랙베리의 검은색은 플라보노이드와 같은 항산화제를 함유하며, 장 건강을 증진하고, 콜레스테롤 수치를 낮추는 데도 도움을 준다고 해. 또한, 비타민 C가 풍부하여 면역 강화와 피부 건강에 도움을 주지.
검은깨에는 세사몰, 세사미놀, 토코페롤 등의 성분이 함유되어 있어 신체의 기능을 개선하고 항산화 작용을 하고 있어. α-리놀렌산, 올레인산 등의 불포화 지방산은 혈액의 콜레스테롤 수치를 낮추어 동맥경화를 예방하는 데 도움이 돼.
검은콩에는 안토시아닌과 이소플라본이 풍부하게 함유되어 있어. 이소플라본은 피부를 매끄럽게 해주는 데에 도움을 주며, 단백질과 섬유소, 칼슘, 철, 아연 등이 두뇌 활동 촉진, 골다공증 예방, 항암 및 항산화 작용에 효과가 크다고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