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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nry Oct 03. 2023

불온하지만 매혹적인 화가의 검은색

【색(色)의 인문학 17】


불안하고 불온하지만

거부할 수 없는 매혹의 검은색

어둠이 있어 빛이 돋보이고

고통이 있어야 행복이 귀한 법




티파니에서의 아침을

뉴욕 맨해튼의 새벽 거리, 아름다운 여인이 택시에서 내려. 검은 드레스와 얼굴을 반이나 가린 선글라스의 그녀는 커피를 마시며 크루아상을 뜯어 먹지. 그러면서 티파니 보석 가게를 뚫어져라 쳐다 봐. 언젠가는 다 갖고 말겠다는 눈빛으로 보석들을 바라보는 거야. 그녀는 뉴욕의 한 아파트에서 돈 많은 남자를 만나 신분 상승을 꿈꾸며 살고 있는 홀리(오드리 헵번)야.


영화 <티파니에서 아침을(Breakfast at Tiffany’s, 1961)>은 이렇게 시작해. 이 영화의 줄거리는 생략하고 이 영화에서 헵번이 입고 나온 검정 드레스 이야기로 바로 들어갈게. 헵번은 영화 속에서 올림머리 스타일에 화려한 진주 목걸이와 긴 장갑을 착용하고 '리틀 블랙 드레스(little black dress)'를 입었어. 이것으로 20세기 영화산업의 가장 성공적인 아이콘의 하나인 ‘헵번스타일’이 탄생하지.   


리틀 블랙 드레스는 원래 샤넬이 먼저 발표했어. 당시의 화려한 색상의 디자인과 달리 검은색의 지극히 단순한 디자인으로 사람들의 시선을 끌었지. 상복이나 남성들의 전유물이었던 검정을 여성의 옷으로 변신한 거야. 이것을 지방시(Givenchy)가 헵번의 검정 드레스로 거듭나게 했어. 영화의 헵번스타일은 지방시는 물론이고, 뉴욕 티파니 본점이 세계적인 브랜드로 만들었어. 검정 드레스의 헵번스타일은 지금도 젊은 여성들의 패션 아이템으로 인기가 높다고 해.      



'티파니에서의 아침을'



독일의 광고 그래픽 전문가 하랄드 브램(Harald Breaem)의 저서 『색의 힘』(일진사, 2010)에서 검정은 성(性)적 매력을 나타내는 효과적인 색이라고 말해. 그의 견해에 따르면, 인도에선 여성의 검정 눈 화장을 성적 표현으로 해석돼. 검게 화장된 눈은 깊이가 있어 은밀한 느낌을 자아내고, 이 때문에 속눈썹에 검게 화장하는 풍습은 수천 년부터 오늘날까지 이어졌어.


20세기까지 서구 의류에서 검정은 주로 절제, 겸양, 애도 등을 표현하는 데 사용되었다는 것이 색채 연구학자 개빈 에번스(Gavin Evans)의 말이야. 그는 1910년대부터 검정은 냉철하고 진지해 보이기만 하는 이미지에서 벗어나 패션을 주도하는 다양한 색으로 등장했다고 말해. 이러한 추세는 샤넬이 발표한 리틀 블랙 드레스의 출현과 더불어 시작됐지. 그리고 영화 <티파니의 아침을>의 헵번스타일 덕분에 검정 드레스는 여성성의 전형으로 꼽히는 세련미를 갖추게 한 일등공신이야.     


불온하고 위험하지만 치명적이고 매혹적인 화가

캔버스에 빛과 어둠을 도입한 것은 르네상스 시절이었어. 그 작업을 최초로 해낸 사람이 카라바조야. 이탈리아의 화가인 카라바조(Michelangelo Merisi da Caravaggio, 1571~1610)는 처음 밀라노의 공방에서 그림 수업을 했어. 그림 실력을 쌓은 그는 빛과 어둠을 들고 로마 화단에 혜성같이 등장했지. 


카라바조는 39년의 짧은 생을 불꽃처럼 살다 갔어. 그는 화가로서 짧은 영광의 시간과 살인자로 긴 어둠의 시간을 보냈어. 싸움, 성공, 시기, 뛰어난 그림 실력, 살인, 도피 생활, 사형선고, 사면은 그의 생애를 묘사하는 키워드야. 한 번 욱하면 참을 줄 모르는 그의 격정적인 성격 탓이 문제였어. 그의 뛰어난 그림 실력을 아끼던 추기경과 고위 성자들이 그를 끔찍이 사랑했어. 그렇지만, 워낙 사고를 많이 친 탓에 끝내 그들도 골치깨나 썩었어. 그의 삶은 그의 그림보다 위험하고 불온했어. 그렇지만 너무 매혹적이고 치명적이었어.  


'성 마태오의 소명'(1599~1600) 카라바조


<성 마태오의 소명>이라는 이 작품은 카라바조의 걸작 중의 하나야. 어두운 실내에 몇 명의 남자들이 탁자에 앉아 있어.  탁자 왼쪽의 남자는 그날 세금으로 거둔 돈을 세느라 정신이 없어. 당시 세관 관리는 악랄하게 세금을 뜯어냈기 때문에 모두가 경멸하던 직업이었지. 예수는 오른손을 쭉 뻗어 마태오를 가르치며 “나를 따르라”하시며 마테오를 불렀어. 사람들이 경멸하던 세무 공무원인 마태오를 예수 그리스도가 제자로 삼는 장면을 그린 거야. 


카라바조가 연출한 빛과 어둠의 연극에서 주역은 단연 검은색이야. 이 그림의 3/4를 깊은 어두운 그늘로 감쌌어. 연극의 스포트 라이트처럼 주인공과 그 주변에 빛이 비치도록 하는 기법을 처음 시도하였어. 그가 검정을  사용한 방식은 많은 예술가를 매료시켰어. 카바라조의 붓을 통해 검은색은 회화에서 새로운 지위를 부여받았지. 그 후 많은 화가가 빛의 밝음을 강조하기 위해 어둠을 검은색으로 짙게 하는 방법을 채택했어. 그 중에서도 카라바조의 화풍을 제대로 이어 받은 사람이 네덜란드 화가 렘브란트야.       


빛과 어둠의 세계를 화폭에 담은 또 다른 화가로 네덜란드 화가 렘브란트(Rembrandt Harmenszoon van Rijn, 1606~1669)를 들 수 있어. 그는 빈센트 반 고흐와 더불어 네덜란드가 배출한 위대한 화가야. 이 두 사람은 네덜란드 미술의 수준을 한 차원 높였다고 칭송받고 있어. 고흐만큼은 아니지만 아내와 자녀들이 일찍 세상을 떠난 고통을 경험한 렘브란트의 말년 삶도 무척이나 고단해. 


렘브란트는 빛과 어둠을 캔버스에 옮긴 카라바조의 영향을 많이 받았어. 렘브란트도 밝은 빛과 짙은 어둠을 대비시키는 작품을 많이 남겼지. 빛과 그림자의 극명한 대비를 통해 신비감 넘치는 화면을 구사했어. 빛과 어둠의 미묘한 명암과 색채 차이를 이용해 인간의 내면을 표현하려 했지. 렘브란트는 인물의 얼굴에 빛을 집중함으로써 인물의 내면세계와 감정을 도드라지게 내보이게 만들었어.


<니콜라스 튈프 박사의 해부학 강의(1632)> 1.7m x 2.16m, 네덜란드 헤이그 마우리츠하위스 미술관


렘브란트는 <니콜라스 튈프 박사의 해부학 강의(1632)>라는 작품에서 연극 무대에서 주인공에 조명을 비추는 빛의 하이라이트 방식을 채택했어. 그는 작품에서 사진관에서 인물 사진을 찍을 때 빛을 쏘는 기법을 사용했단 말이야. 유명한 외과 의사인 튈프 박사가 시체를 해부하며 강의하고 있어. 렘브란트는 이 장면을 빛과 어둠의 대비를 통해 빼어나게 묘사했어. 사람들의 표정을 밝게 하고 주변을 어둡게 색칠함으로써, 강의를 듣는 인물들의 몸짓과 표정을 통해 사람들의 다양한 표정을 드러냈어. 이 작품으로 렘브란트는 단숨에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았지. 


<야경(1642)> 3.63m x 4.37m, 암스테르담 국립미술관


1642년 렘브란트는 역사에 길이 남을 걸작 <야경(1642)>을 그렸어. 이 그림을 통해 그는 위대한 화가의 반열에 오르지. 민병대원들이 야간순찰을 나가기 위해 모여서 점검하는 장면을 그렸어. 빛과 어둠의 강렬한 대비를 통해 사람들의 긴장감을 잘 표현했어. 지휘관이 손을 들어 행동 요령을 설명하고 있고, 나머지 대원들이 그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있지. 어떤 사람은 딴 곳을 응시하기도 하고, 또 어떤 사람은 옆 사람을 쳐다보는 장면을 잘 포착했어. 

   

사실 <야경>은 단체 사진의 일종야. 그때는 사진기가 발명되기 전이라 단체 초상화라는 말이 더 적합하겠어. 이 그림에 등장하는 사람들이 돈을 모아 렘브란트에 대원이 모인 그림을 그려달라고 의뢰했다고 해. 전통적인 단체 초상화와는 달리, 렘브란트는 이 작품에서 빛과 그림자를 대비하는 독특한 표현을 시도했지. 주인공들은 활기찬 움직임을 보이지만, 중심 인물들만 주목받도록 환하게 그렸어. 어둠 속에 묻혀있거나 부분적으로만 나타나는 사람들은 강한 불만을 표현했어. 


빛을 받은 사람은 행복했고, 어둠 속에 있는 사람들은 불만이었어. 등장 인물들은 모두 같은 마음이 아니었다고 보면 돼. 이건 등장 인무들의 심리적 빛과 어둠의 대비라고 하면 될까. 작품을 보는 우리는 위대한 작품의 이면에는 그림자가 있기 마련이라고 생각하면 될 것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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