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色)의 인문학 15】
처음에는 남성의 색
나중에는 여성의 색
하루 아침에 바뀐 분홍의 운명
처음부터 그런 건 아니었어
초속 5센티미터의 분홍 꽃 지는 마을
"있잖아. 초속 5센티미터래!!"
"응? 뭐가?"
"벚꽃 잎이 떨어지는 속도 말이야, 초속 5센티미터"
"아카리는 그런 걸 잘 알더라"
《초속 5센티미터(2007)》는 색과 빛의 마술사라 불리는 일본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애니메이션이야. 주인공 소녀 아카리와 소년 타카키가 학교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벚꽃 나무 아래를 지나. 분홍 꽃잎이 떨어지는 걸 보고 아카리와 타카키가 주고받는 대화 내용이지. 영화 내내 화려한 파스텔 색조와 햇빛이 너무 아름다워. 어반 스케치풍의 그림도 너무 좋아.
애니메이션 이야기를 하자는 게 아니야. 분홍색(pink) 벚꽃이 눈처럼 내리는 장면이 멋지다는 말을 하고 싶어. 그것도 초속 5센티미터로 한꺼번에 우수수 떨어지는 꽃잎이 마치 분홍 눈처럼 보인다는 거야. 해마다 4월이면 우리 마을에도 분홍 눈이 내려. 봄이면 아파트 입구에 도열한 벚꽃 나무의 꽃들이 만개하지. 저녁 불빛을 받은 분홍 꽃잎은 몽환의 세계로 이끌어.
분홍 벚꽃이 활짝 핀 밤이면 꿈을 꾸듯 그 아래를 걷곤 해. 얄밉게도 바람이 불면 분홍 꽃잎이 우수수 떨어져. 꽃들이 진짜 초속 5센티미터로 떨어지는지 어떻게 알겠어? 그래도 그렇게 생각하면 낭만적으로 느껴져서 좋아. 그런 날이면 벚꽃 나무 아래 의자를 둔 카페로 가지. 그곳에서 와인을 마셔. 저녁 불빛 아래 벚꽃 잎 담긴 와인을 마시는 기분이 얼마나 좋은 줄 모를 거야.
오늘은 분홍색 양복을 입을까?
나는 빨강보다 야리야리한 핑크(Pink) 색이야. 설문 조사를 해보면, 색 중에서 나를 제일 좋아한다고 답한 사람이 제일 적어. 그것도 여성들뿐이고 남성들은 아예 없다고 해. 여성들도 겨우 3%만 나를 제일 좋아한다고 하고, 남성들은 아예 분홍색 자체를 모르는 사람도 많다고 해. 그 말을 들으니 갑자기 슬퍼져.
사실 나는 오랫동안 독립된 색의 자격을 갖지 못했어. 내가 부드럽고 섬세하다고 생각하기 시작한 것이 18세기부터야. 옅고 산뜻한 빨강으로 간주했지. 공격성도 적고 피 냄새가 안 나는 부드러운 빨강이라 불렀어. 그 와중에도 프랑스 사람들은 나를 아름답다고 칭찬했어. 다른 나라 사람들은 가끔 나를 싸구려나 혹은 있는 척한다면서 싫은 표정을 지었지.
자연에는 분홍 색소가 없다고 해. 그래서 사람들은 나를 그저 연한 빨강에 불과하다고 봤어. 그런 나도 18세기에 들어오면서 인기가 높아지기 시작했어. 놀라운 이야기가 있어. 이때만 해도 나는 소녀의 색이 아니라 소년의 색이었어. 오늘날 분홍은 어린 소녀들의 장난감, 요정 드레스, 신발을 상징하는 여성의 색이지. 요즘은 분홍과 관련된 특성은 모두 여성적이지만 처음부터 그런 건 아니야.
<타임스>는 '과학, 남자아이는 파랑을 좋아하고 여자아이는 분홍이라면 사죽을 못 쓰는 이유를 드디어 밝혀내다'라는 제목의 기사를 뽑았어. "아들에게는 파란색을 입히고 딸에게는 분홍색을 입히는 부모들이 이제부터는 전통이 아니라 저 깊이 자리한 진화의 본능을 따를 가능성이 높다" 또 잡지 <타임>은 "여성의 생물학적으로 분홍색을 좋아하도록 프로그램화되어 있을지도 모른다"라고 주장했다. 이 내용은 게빈 에번스의『컬러 인문학』(강미경 옮김, 김영사, 2018)에서 인용했어.
이 내용만 보면 남자아이는 파랑을, 여자아이는 분홍을 좋아하는 건 인간의 본능이야. 인간의 진화 과정에서 축적한 경험이 그렇게 만들었다는 이야기지. 그런데 이런 주장을 반박하는 내용도 많아. 분홍을 좋아하는 건 본능이 아니라 문화적 요인이라는 거야. 게빈 에번스의 말을 계속 인용해서 알아볼게.
여자아이들이 분홍을 좋아하는 것은 매우 최근의 현상이라는 거야. 에번스의 책에 실린 1897년 <뉴욕타임스>의 기사를 재인용할게. "분홍은 대개 남자아이의 색으로, 파랑은 여자아이의 색으로 간주되지만 어머니들은 그 문제엔 자신의 취향을 따르면 된다." 놀랍지 않은가? 분홍이 남자의 색이고, 파랑이 여자아이 색이라는 말이야. 게번스의 책에는 분홍이 남자의 색이라는 이런 단호한 주장들이 더 많지만 생략할게.
오늘은 분홍색 양복을 입을까? 몇 번을 망설이다 마음을 접었어. 주위의 따가운 시선을 이겨낼 자신이 없어. 십중팔구 ‘남자가 무슨 분홍 양복을?’하며 혀 차는 목소리가 귀에 들려. 우리는 ‘분홍색은 여자’라는 프레임에 갇혔어. 내가 무슨 배짱으로 분홍색 양복을 사서 입고 나설까. 안타깝지만 나도 색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했어.
19세기 사람들은 내가 빨간색에서 파생한 강한 색이라 했어. 그래서 여자보다 남자에게 더 잘 어울린다고 말했어. 오히려 파랑이 섬세하고 얌전해 보여 여자아이한테 잘 어울린다고 했지. 20세기 초반까지만 해도 이런 시각이 유효했어. 놀랍지 않아?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분홍 이미지와는 정반대야. 색의 역사는 그래. 시대적 상황과 문화적 배경에 따라 해석이 달라지지. 아무튼 분홍은 빨강에 가까운 색이라 강한 느낌을 준다는 것이 1930년대까지의 흐름이었어.
2차 세계대전 중 나치는 동성애 남성을 사회 파괴자이며 불순한 존재로 취급했어. 동성애 남성들은 나치 수용소에 강제로 끌려갔고, 그들에게는 분홍색 삼각형 표식을 달았어. 마치 유대인에게 노란색의 별을 달듯이 그렇게 색깔로 사람을 차별했어. 이때부터 분홍색 삼각형은 게이의 권리 운동의 상징이 됐지. 최근에는 동성애 남성뿐만 아니라 레즈비언과 양성애자 등 성 소주자의 상징으로 등장했어.
머리가 복잡하면 분홍색을 봐
언제부터 분홍이 여성의 색이 되었을까. 2차 세계대전이 끝나자 미국은 본격적으로 번영의 시대를 열었어. 역사상 가장 빠른 속도로 경제가 발전하고 부가 축적되었어. 전쟁 중에 축적한 소득으로 사람들은 원하는 것을 마음대로 사기 시작했어. 이때 광고업자들인 낙관주의를 자극하기 위해 본격적으로 분홍을 마케팅 컬러로 사용했어. 특히 여성을 대상으로 하는 바람에 1950년대는 미국의 '분홍의 시대'는 여성의 상징으로 변했어.
이제 분홍이 여성의 색이라는 것은 본능이 아니고 문화적 배경 때문이라는 사실을 알겠지. 아기가 태어날 때 여자에게는 분홍색 방을, 남자에게는 파란색 방으로 구분하면 어떻게 될까? 아이들은 그게 당연하다고 여기면서 자라겠지. 바로 이 점이 문제야. 분홍은 날 때부터 갖는 본능이 아니라는 사실을 명심해. 그렇다고 이제 와서 그걸 바꿔야 할까? 그대로 둬서 불편한 점이 없다면 굳이 고칠 필요까지는 없겠지.
색깔은 심신이 고단한 현대인을 위안하고 다독거리기도 해. 분홍색은 안정감과 편안함을 떠오르게 하고, 사람을 평온하게 만들어준다고 하네. 그래서 공격적인 사람도 분홍색을 자주 보면 덜 흥분하지. 또 분홍색은 사랑과 연민 그리고 따뜻함을 주는 색으로도 유명하지. 로맨틱한 장면에서 밝은 핑크를 사용하면 에로틱한 분위기가 한층 올라가지. 나는 섬세하고 예민한 구성이 있지만, 애교도 있으면서 예의까지 바른 색이야.
그렇지만 나는 감정적으로 연약해 보인다는 소리를 듣긴 해. 정서적으로 조금 불안해 보이기도 하고, 육체적인 피로감도 눈에 띈다고 하지. 그건 아마 내가 여성성을 강조하는 색이 된 후 생긴 이미지가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하곤 해. 현대 여성의 이미지가 꼭 연약한 것은 아니야. 걸 크러쉬(girl-crush)는 강인함과 존경을 뜻을 가지고 있어. 어쨌든 분홍도 마냥 긍정적이지 않고 부정적인 뉘앙스를 보이기도 한다는 이야기야.
내가 지금은 여성성의 상징이 된 것은 사실이야. 그렇지만, 그건 문화적 현상이라고 분석했잖아. 그만큼 부드럽고 섬세한 색이라는 뜻으로 받아들이면 돼. 재미있는 사실은, 분홍색은 사실 빨간색과 흰색의 조합으로 만들어진다는 것이야. 즉, 자연에서 가시광선 안에서 단일 파장으로는 분홍색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이야기야.
나로서는 억울하다 생각할 만하지 않아? 뜬금없이 남자의 색에서 여자의 색으로 바뀌었잖아. 내 의지와 무관하게 여성성의 상징이 되었잖아. 지금 와서 시시비비를 따져봤자 무슨 소용이 있을까. 다만, 여성의 색이니 여성만 좋아해야 한다는 그런 생각을 버렸으면 해. 낙천적이고 부드럽고 편안함을 주는 분홍색을 굳이 한쪽만 상징한다고 고집할 까닭은 없어. 남성이든 여성이든 좋아하면 그걸 인정해 주자는 거야. 내 생각이 어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