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의 일기들(1)
다시 봐도 분명 제정신일 수 없었던 기억들
말만 번지르르하게 하는 사람들이 정말 너무 싫다.
다 까고 알맹이만 빼서 보면 비어 있는 경우가 허다하다.
일부러 정신 못 차리게 하려고 쓸데 없는 말을 많이 하는 걸지도 모르겠다.
- 응, 오늘 인터뷰 4명했고, 새로 만든 기능에 관심 없대.
한 줄 요약하면 이렇게 말할 수 있는데도, 이걸 그렇게 길게 포장할 수 있다는 것에 놀랄 뿐이다.
그리고 그것에 현혹되는 사람들은 멍청하다. 더 싫다.
그런 사람들이 있어서 저런 사람들도 생겨나는 거다.
본인들도 말이 많은 사람들이라서 그런 거려나. 이미 장황하게 말하는 것의 장점을 알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요점을 흐리게 하여 상대의 맥락 파악에 어려움 주기. 난처한 상황에서 빠져나가기.
그리고 내가 이들 무리에 끼기 위해서 말을 능숙하게 하는 법을 익혀야 되는 것은 끔찍하다.
한 줄 요약해서 응 성과 없어를 열심히 돌려돌려 쉴드 치고 남탓하면서 자기 책임은 교묘하게 빠져나가는 꼴을 보고 있자니 한심하다.
저런 식으로 팀원 핑계를 대고 싶을까?
지금껏 일하면서 저 정도 속도 예상 못한 것도 본인 책임 아닌가?
어쨌든 기능 추가의 우선 순위를 매긴 건 본인이 한 것 아닌가?
이 정도 성과의 프로덕트를 만든 것도 본인 아닌가?
응, 잘한 건 나고, 안되면 팀원 때문이야~
저번에 팀원 채용에 문제가 생긴 것도, 내가 잘못 뽑은 게 아니라 팀원이 무능력한 거야~
엄청난 프레이밍에 놀랄 뿐. 그리고 그 프레이밍에 놀아나는 자가 있어 더 놀랄 뿐.
내가 이 정도 밖에 안 되는 사람이랑 그 시간들을 함께 했구나.
왜 이렇게 다들 말이 많은 걸까.
저렇게 적고 보니까 자신의 지위를 유지하는 데에는 꽤나 유용해서 말을 안 할 수 없긴 하겠다.
한 편으로는 물론 내 커뮤니케이션 스킬을 돌아보게 되기도 한다.
그래, 말 많은 사람들한테는 너무 전달량이 적다고 느껴질 수도 있겠지.
그러나 내가 진짜 필요한 것들을 전달하고 있지 않고 있나? 이 부분은 생각해볼 만한 문제다. 그들은 들으려고 하긴 했나?
그리고 중요한 것은,
설령 그렇다 하더라도, 같은 팀이라면 대화로서 상대의 말을 이끌어낼 수 있다는 것.
더 정중하게 의견을 물어볼 수 있다는 것.
돌이켜보면 이런 집단에 있을 때의 가장 큰 문제는,
내가 너무나 당연하게 생각했던 나의 가치관의 뿌리까지 스스로 의심하게 된다는 것이다.
정상과 비정상의 범주가 혼돈되어 자기 자신을 의심하게 되고,
그 어떠한 자신의 생각에도 확신을 가질 수 없다는 것이 스스로를 깊은 내면까지 갉아먹는다.
그리고 결국 그 자신의 생각이 사라진 그 곳에
타인의 가스라이팅과 프레이밍이 덮인 생각이 들어온 순간, 스스로는 끝없는 나락에 빠질 수밖에 없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그런 식으로 팀원들을 맛탱이 가게 만들고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