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생활을 하다 보면 진짜 나를 숨기고 살게 된다
동네 산책하다가 술에 진탕 취해서 친구들 사이에 둘러싸인 채 계단에 앉아 있는 젊은이를 봤다.
갑자기 대학 시절 술만 먹으면 저렇게 취해서 계단켠에서 울던 친구의 모습이 겹치면서, 내가 처음으로 엄청 취해서 기억이 끊겼던 때가 떠올랐다. 기억력이 정말 안 좋은 나지만 또렷하게 기억하는 몇 안되는 젋은 날의 기억이다.
1차로 술을 먹고 있던 내게 고등학교 친구가 놀러온다고 했고, 한창 취해서 반가운 마음에 알겠다고 연락한 것까지만 기억이 난다. 그 날은 처음으로 내가 매취순을 먹고 그 매력에 빠진 날이었다. (그 이후로는 먹은 기억도 없는 것 같다.)
눈을 떠 보니, 친구가 앞에 있었고 난 엎어져 있었는데, 알고보니 어찌어찌해서 만났는데 몸도 잘 못 가누는 상태에서 만나서 술집에서 졸립다고 잠든 것이었다. (친구가 길거리에서 계속 주저앉는 내 모습을 친절하게도 찍어줘서 충격적인 진상짓을 똑똑히 볼 수 있었다.) 그러고는 정신 차리고 술집에서 또 이 충격적인 일을 가지고 한참을 깔깔거리다가 돌아갔던 것 같다.
그 친구와는 요새도 만나면 유난히 다른 어떤 친구를 만날 때보다 더 괴팍하게 웃고 목소리가 커진다. 어딜가나 꼭 하루에 1번 이상은 조용히 해달라는 소리를 들으며 괜시리 뿌듯함을 느끼기도 한다(민폐 맞음). 옛 친구가 좋다는 게 이런 느낌일까.
사회 생활을 하게 되면서 문득문득 내 본모습을 많이 숨기고 살아간다는 생각을 한다. 내 본모습은 걍 아몰랑 땡깡쟁이 단비인데, 회사에서는 정상인 범주에서 눈에 띄지 않게 행동하려다 보니까 그 괴리감이라는 게 턱턱 느껴질 때가 있다. 텐션을 절반 이상 낮추고 사는 것 같다고 느껴질 때도 있다. 내 진짜 모습을 보여준다고 해서 좋을 것도 없으니까(이전 회사를 이직하면서 깨달은 중요한 교훈 중 하나였다).
오랜 친구들을 만나면 이런 시선에 대한 아무런 계산 없이, 아무런 생각 없이 있는 그대로의 내 모습 그대로 행동하게 된다. 그리고 거기서 나오는 그 여유와 말도 안되는 편안함 덕분에 시시껄렁한 이야기를 하면서도 말도 안되는 원초적인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것일 테다.
잡담과 수다의 특징은 하고 난 후에 내용은 생각나지 않지만, 그 사람과 내가 같은 시간을 보냈다는 유대감만 남는다는 것이라고 한다. 수년에 걸쳐 켜켜이 쌓인 유대감이 있었기에 서로의 본모습이 이렇게나마 다시 나도 모르게 튀어나오는 게 아닐까. 어릴 때 그 깨발랄한 모습을 서로서로 지켜주고 있다는 게 다행이고 고마울 따름이다. 술에 취한 누군가를 보고 아무렇게나 이어진 초복의 밤산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