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 마시멜로 이야기라는 책이 유행했다.지금 당장 마시멜로를 먹지 않고 꾹 참고 기다린 친구가 나중에 사회적으로 더 성공했고, 만족을 미루고 더 참고 기다려서 더 큰 만족과 행복을 누린다는 뭐 그런 이야기였던 거로 기억한다. 어릴 땐 이 이야기를 참 좋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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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초반에 내가 열심히 공부하면 인생이 점점 더 쉬워질 거라 생각했다. 30대엔 맨날 하던 거나 우려먹으면서 더 이상 공부 같은 건 하지 않고 편하게 살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열심히 산 대가로 간간히 좋은 결과도 맛보았지만, 기쁨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결과를 내고 나면 기쁨을 누릴 새도 없이 그다음 관문이 머릿속에 쭉쭉 나열되어 있었다. 내가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 잘 모르겠는데 내 눈앞에는 해치워야 할 의무만 자꾸 쌓여갔다.
'대학 다음엔 취직, 취직 다음엔 결혼, 결혼 다음엔 육아 그다음엔 뭐가 있는 거야?
벌써 체한 거 같은 기분이야.'
불안한 내 마음은 미래의 일을 미리 알고 미리 준비해야 한다고 윽박을 질렀다. 그럼 나는 또 휩쓸려 먼 미래까지 다 계획해 놓고, 거기까지 가지도 못했는데 금방 지쳐버렸다. 그냥 쉬고 싶기만 했다. 쉬는 법을 모르니 죽으면 쉴 수 있는 줄 알고 오해하기도 했다.
그렇다. 20대에 치열하게 노력하면 30대부터는 평생 과거의 마시멜로를 꺼내먹으며 살 수 있다는 내 생각은 애초에 불가능한 전제였다. 한때 이 생각이 20대 초반의 나를 일시적으로 버티게 한 희망이었으나, 사회에 나와보니 이것이 잘못된 희망이었음을 깨달았다. 사회에 나오면 여기 나름대로 배워야 할 것들이 또 있었던 것이었다. 어디 사회생활뿐이겠는가 물건을 사는 것부터 결혼생활도 모두 공부가 필요했다. 나 혼자 억울함을 느껴봤자 아무도 알아주지 않았다. 과거의 내 전제가 '고인 물이 되는 지름길'이었음을 받아들여야 했다.
'그럼 마시멜로는 도대체 언제 걱정 없이 먹을 수 있는 거야? 나 얼마나 더 참아야 해?'
온갖 좌절과 방황으로 10년의 세월을 흘려보냈다. 몸과 마음이 온통 만신창이가 됐다. 과속하는 삶에 지쳤다. 한방을 노리는 벼락치기 노력도 지쳤다. 하지만 살고 싶었다. 몸이 아프고 나니까 내가 살고 싶어 한다는 걸 깨달았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지?'
이 고민이 나를 짓눌렀지만 방향에 대한 확신만 있으면 언제든 다시 일어날 수 있다고 생각했다. 허리디스크가 한창 심할 때 잡생각을 없애려고 누워서 세이노 선생님의 책을 읽었다. 목차 '야망을 갖지 마라' 편에서 내 마음을 움직인 문장을 발견했다
'누구나 성공의 꿈을 품고 살아 가는데 왜 성공한 사람은 극소수라는 말인가. 그 이유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꿈은 야무지고 원대하게 품지만 그 꿈을 실현시키는 아주 작은 단계들은 하찮게 여기고 무시하기 때문이다.
10년 후의 목표? 5년 후의 목표도 세우지 마라. 그 기간 동안 당신은 그만 지쳐 버리고 만다.
그저 1년 정도 앞의 목표만을 세우되 1000만원을 모으는 것 같은 소박한지만 구체적으로 실행 가능한 목표를 세워라.
일단, 6개월이건 1년이건 1년 미만의 가까운 미래에 이룰 수 있는 구체적인 목표가 생기면 절대, 절대, 절대 뒤를 돌아보지 말라.
그 모아진 돈을 부자가 되려는 꿈과 비교하고 계산하며 아직도 멀었구나 하는 미래 투시 따위도 절대 하지 말라. 몇 개월 치가 모였는지도 잊어버리고, 그거 다음 달에 저축하여야 할 돈만 생각하여라.
뒤를 돌아보지 말라. 소돔과 고모라를 빠져나오다가 뒤를 돌아본 롯의 아내처럼 소금 덩어리로 변하고 만다. 계속 전진만 하라. 앞을 바라보되 절대 저 높은 계단 꼭대기 위의 찬란한 태양빛을 성급히 찾지 말라.
당신에게 필요한 것은 당장 오늘 지금 밟아야 할 계단이 어디 있는지 찾는 것뿐이다.'
'인생이나 풋볼이나 1인치씩 앞으로 가는 것일 뿐이다. 그 1인치에 얼마나 최선을 다 하느냐에 따라 거기서 승리와 패배가 갈라진다. 승리와 패배의 차이는 결국 1인치의 차이이다. 우리는 오직 1인치를 위해 달릴 뿐이다.'_ 영화 <애니 기븐 선데이> 중에서 코치 '토니 다마토'의 말
미래의 야망은 던져 버려라. 꿈과 야망은 성공의 원동력이 아니다. 보잘것없어 보이는 1인치 전진을 위하여 오늘 외롭게 최선을 다하는 힘이 바로 성공의 원동력이다.
'나는 결코 한 시합에 이기려고 하지 않는다. 한 세트나 한 게임을 이기려고도 하지 않는다. 나는 오직 한 점만을 따기 위해 노력한다.' _세계 최소의 테니스 선수 피터 샘프라스
_세이노의 가르침
누가 내 머리를 망치로 때린 것 같은 커다란 깨달음을 얻었다. 내가 지쳤던 이유는 찬란한 꼭대기만 바라보고 달렸기 때문이었다. 하물며 등산을 해도 한 걸음 한 걸음씩 나아가야 정상에 도착할 수 있다. 그런데 정작내인생의 장거리 경주에서는 처음부터 찬란하고 큰 성공 한 방만을 바라보고 달렸던 것이다.
판을 바꾸고 싶었다. 세이노 선생님 말씀대로 6개월에서 1년 단위까지만 바라볼 수 있는 준거시적인 눈과, 이를 실천하기 위해 내 눈앞의 1인치만 바라보는 미시적인 눈을 길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근데 1인치가 몇 센티야?'
내가 숫자에 약한 인간인지라 구글에 검색해 봤다.
출처: 구글
1인치는 2.54 센티미터였다. 나는 좀 더 미시적으로 가기로 했다. 1인치보다 더 작은 '하루 1센티 성장'을 목표로 살기로 다짐했다. 이때부터 지금까지 내 블로그 문패는 '하루 1센티 성장하기'다.
'조오아써~~~!'
매일 하루 1센티라는 느린 성장을 꿈꾸던 도중 문뜩 이런 생각이 들기도 했다.
'1센티 성장만 바라보면 남들한테 뒤쳐지는 거 아냐?'
이렇게 마음에 의심이 들면 예전처럼 덮어두거나 무시하지 않았다. 글을 쓰며 내 의심들을 마주하고 설득하는 시간을 가졌다.
' 아주작고 사소한목표라도 매일 실행하고 유지하며 이어가는 삶을 살아보자.내 1센티는 굵을 때도 있고 얇을 때도 있어. 하지만 평생 절대 끊어지지 않을 1센티야. 너는 벼락성공만을 바라다가 지금은 아무것도 하고 있지 않잖아. 이젠 끊어지지 말고 매일 하루 1센티 성장만을 바라보며 살자. 삶을 이어가는 연습을 하자.체력이 약한 날에는 걸으면 되고 뛰고 싶은 날엔 뛰면 돼.
어차피 사람들은 나한테 관심 없어. 누가 지켜본다는 망상은 집어치우고 법을 어기지 않는 선에서 자유롭게 글을 써보자. 글을 잘 써야 한다고 스스로에게 너무 큰 짐을 지우지 말고 유연하게 생각하자고! 100세 인생이라면 나는 앞으로 60년 이상 더 살아야 한다는 걸 기억하자.느려도 좋으니까 꾸준히 성장하며 이어가는 삶을 꿈꿔보자. 한방의 큰 성공에만 목메지 말고 매일 매 순간의 성장을 글로 적어 살아있다는 기분을 더 자주 느끼며 살아보자.'
빠른 성장, 빠른 성공과 빠른 부를 외치는 세상에서 나 혼자 떨어져 나와 '하루 1센티 성장'을 추구하며 나만의 길을 간다는 게 대세에 역행하는 느낌이 들어 처음엔 조금 두렵기도 했다. 하지만 책에서는 내가 가는 길이 맞다고 응원해 주었다.
나의 '하루 1센티 성장'을 응원해 주는 글을 차동엽 신부님의 책 '바보 Zone'에서도 찾았다.
바보의 단순논리는 역으로 큰 사안을 작게 축소하는 경향으로 나타날 수도 있다.
이는 사물을 통합적인 시각으로 조망할 줄 아는 천재성이다.
바로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바보는 '작은 일을 크게' 여기는 미시적 관조의 대가이기도 하지만,
그 반대로 마치 망원경으로 큰 그림을 조망하는 듯이 거시적 관조의 달인이기도 하다.
큰 일을 작게 여기라는 것은 작은 일을 무시하라는 뜻이 아니라
커 보이는 일을 작게 보라는 뜻이다.
큰 바보는 사소한 것을 격찬하고, 고상한 것을 하찮게 여긴다.
맹자는 "인자한 자만이 큰일을 작게 할 수 있다"고 가르쳤다.
그런데 바보만이 인자하다. 바보의 착함을 무엇에 견주랴.
그러므로 맹자의 말씀은 궁극적으로 "바보만이 큰일을 작게 할 수 있다"는 뜻이 된다.
이런 까닭에 바보의 행동은 놀라우리만치 대범할 때가 많다.
그래서 그들은 배신의 위험도 불사하며 타인을 믿어준다.
과감히 포기할 줄도 안다. 죽음조차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바보철학의 다섯 번째 블루칩은
'큰일을 작게 여기라'다.
이 실천명제가 우리를 선 굵은 거인이 되게 해 줄 것이다.
본질을 꿰뚫는 통합적 안목으로 집채만 해 보이는 세상 근심을 제압해 보자.
_바보 Zone, 차동엽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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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여기저기서 나를 응원해주는 것 같았다. 다시 일어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하루 1센티 성장 정신은 크고 막연했던내 인생을 잘게 잘라 매일 한 조각씩만 보고 살게 해 주었다.막연했던성장에 대한 부담이 사라졌다.
'그래 다시 일어나자!'
하루 1센티 성장을 위해 살아온 나의 1년은 그 어떤 한 해 보다 행복한 기간이었다. 작은 성장을 이루었을 때 내가 느낀 매 순간순간의 성취감이 진짜마시멜로였음을 깨달았다.
비록 30대에 고인 물을 우려먹는 삶을사는 건 실패했지만 매일 하루 1센티 성장을 꿈꾸며 앞으로 나아가는 지금의 삶이 더 마음에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