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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럭키걸 Oct 27. 2024

글쓰기로 약값이 굳었다

잡똥글도 약이 된다.

우울증 약을 먹으며 삶을 연명하던 때가 있었다. 약을 먹으면 그나마 우울과 분노가 가라앉았다. 현실의 고통이 조금 무뎌지기도 했다. 단점은 기쁜 감정도 잘 못 느낀다는 거지만 그래도 그럭저럭 하루가 지나가니 다행이라 생각했다.  


마음에 먼지와 찌든 때가 쌓여서 어디서부터 청소를 해야 할지 모르던 그때, 해야 할 것들은 넘쳐나고

그걸 해야 한다는 것도 알지만 무기력에 허우적대던 그때, 바로 그때, 내가 블로그에 글을 썼다면 어땠을까?


과거에 내가 어떤 생각을 했는지 궁금하다. 흘려보낸 생각들이 너무 많다. 어디에 기록을 남겼다면 어땠을까. 만약 블로그에 글을 적었다면 지금의 내가 과거의 내 글에 위로하는 댓글을 남길 수 있지 않을까? 이런 재밌는 상상을 해본다. 나중의 내가 지금의 나에게 어떤 말을 할지 궁금해서 이 글도 적는다.




작년 6월에 반강제로 백조가 됐으니 백조 경력 1년이 넘었다. 백조가 된 후 나는 충분히 행복하고 괜찮다고 생각했다. 남들은 힘든 상황에서도 열심히 일하는데 나는 복에 겨운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나 혼자 쉬는 게 남편에게 미안해 죄책감이 들기도 했다. 차라리 돈을 버는 게 마음은 편하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미안한 감정을 잘 해소하지 못하는 성격이라 그렇다. 그래도 몸이 건강해야 다시 일도 할 수 있으니 이 시기를 정말 잘 보내고 싶었다. 나는 정말 괜찮다고 생각했다.


밤만 되면 허기가 져서 폭식을 했다. 그래도 나는 괜찮다고 생각했다. 남편에게도 나는 지금 행복하다고 자주 말했다. 그는 내가 의심이 됐는지 정말 괜찮은 건지 자꾸 물었다. 남편덕에 아픈 몸을 치료하고 하고 싶던 공부도 하는 내가 복에 겹다고 생각했다. 나는 충분히 행복하고 괜찮다고 생각했다. 남편이 얼마나 힘들게 일하는지 알았기에 나도 이 시간을 정말 잘 보내고 싶었다. 감사했다. 감사가 무디게 느껴져도 다시 나를 일깨워 감사하려 노력했다.


더 바닥이었던 때를 기억하기에, 우리 둘 다 백수였던 때를 기억하기에, 밥을 먹어도 허기져서 매일 먹고 싶었던 것이 투성이라 가리비구이 사진을 붙잡고 희망이라 우기던 그때를 기억하기에 나는 늘 감사를 외치려 노력했다. 그럼에도 폭식은 계속 됐고 병원에서 위염과 간에 물혹을 발견했다. 위염은 심하진 않아서 금방 약을 먹고 낳았지만 간은 경과를 지켜보자고 했다.


그때 깨달았다. 내가 불안했다는 걸. 세스고딘의 '린치핀'이라는 책을 읽고 나니 자꾸 숨지 말고 나를 세상에 계속 내보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에서 만난 그의 응원 덕분에 용기를 얻었고 나라는 사람을 발산하기 위해 블로그에 글을 쓰기 시작했다.


계속 쓰다 보니 신기한 현상을 발견했다. 나를 알아봐 주는 사람들이 생겼다. 첫 은인이 데미안 작가님이었다. 왜 저런 대형 블로거가 내 글에 하트를 눌렀을까? 처음에는 실수인가 보다 생각했다. 그런데 실수가 아니었다. 나를 처음으로 알아봐 준 은인이었다. 데미안작가님 덕분에 세상에 작가가 되고 싶은 사람들이 이렇게나 많다는 걸 처음 알았다. 새로운 세상에 처음으로 눈을 뜬 순간이었다.





블로그를 하지 않고 계속 백조 기간을 보냈다면 어땠을까? 다시 정신과 약을 먹었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 분명한 건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을 거 같다. 상상만 해도 아찔하다.


블로그가 신선하던 시기를 지났다. 신선함을 잃으니 이런 약아빠진 생각도 든다.


"아씌, 돈도 안되는데 내가 이걸 왜 하고 있는 거야???"


그래도 계속 글을 썼다. 세스고딘의 책 '린치핀' 덕분이었다. 그의 말대로 나도 세상에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하지만 정작 현실은 상처 난 내 마음의 구멍을 메꾸기 위한 글을 많이 썼다. 그렇게 지금까지 왔다. 지금은 이런 말을 해주고 싶다.


'너 블로그 아니었으면 다시 약 먹었을걸? 약값이랑 상담비에 벌벌 떨던 그 시절을 생각해 봐!

야!! 그러니 약값 벌었다고 생각해!'


맞네 맞네! 그래 계속 쓰자! 쓰다 보면 뭐라도 되겠지! 대단한 뭐가 되지 않아도 세상에 태어나서 처음으로 내가 가장 재밌어하는 일을 찾는 거잖아! 그걸 감사하게 생각하자!





여러분 저는 블로그에 제 마음을 들여다보는 글을 꾸준히 쓴 덕분에 약값이 굳었어요. 저한테는 돈을 번거나 마찬가지랍니다. 저는 앞으로도 계속 글을 쓰며 저를 치유하는 삶을 살 겁니다. 여기서 더 나아가 누군가가 저로 인해 한 번이라도 힘을 낼 수 있다면, 그럼 저는 10억 부자가 된 기분이 들 것 같아요. 언젠가 그런 글을 쓰는 날도 오겠죠? 오늘도 부족한 글을 읽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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