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는 대부분 좋은 회사의 입사를 꿈꾼다.
이왕 가는 거 좋은 급여와 복지가 갖춰져 있고, 정년까지 책임지는 회사라면 금상첨화다. 늦은 나이에 대학에 들어가 졸업했더니 27이라는 나이는 아주 큰 걸림돌이었다.
내가 가고자 하는 회사는 내 능력이 아닌 내 나이에 초점을 두었다. 그나마 갈 수 있는 곳은 계약직뿐이었고,
정규직으로 채용된 회사는 3개월 만에 부도로 사라져 버렸다.
다행히 20대가 지나기 전 안정적인 회사에 입사하게 되었다. 이 회사가 좋았던 점은 비행기를 타고 출장을 간다는 점이었다. 예전에는 수학여행 때나 아니면 어쩌다 한번 놀러 가는 것이 전부였는데 자주 비행기를 탈 수 있다는 것이 너무 설렜다. 회사일이 힘들어도 출장을 가는 날이면 휴가를 받는 기분이었다.
또 한 가지는 전국의 직원들을 만날 수 있다는 점이다. 업무에 힘든 일도 서로 수다를 떨면서 ‘나만 그렇지 않다’는 동료애를 느낄 수 있어 좋았다.
그렇게 20대는 지나고 30대는 일에 치어 살았으며 어느덧 40대가 되어 있었다.
불혹.. 40세부터 49세까지의 나이를 이르는 말. 모든 것을 깨닫거나 바뀌게 되는 시기..
그렇다. 다른 것을 생각할 틈 없이 숨 가쁘게 달렸더니 내 나이의 숫자만 변하고 있었다. 순간 내 이름 석 자에 책임을 질 나이가 된 것이다.
책임감을 더 많이 갖고 살아야 할 나이에 중학교 때 오지 않던 사춘기가 찾아왔다.
아무리 좋았던 것도 반복이 계속되면 일상이 된다고 했던가. 그렇게 좋았던 출장도 지겨워지기 시작했으며 매일 바쁘다는 핑계로 아이들을 제대로 보살피지 못한 미안함도 들었다. 또한 변함없는 회사 생활의 미래가 보이지 않았다.
인생의 절반을 살면서 가족이 우선이 되었지 나를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을 가져본 적이 없던 것 같다. 더 나이가 들기 전에 내가 정말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나머지 삶을 어떻게 사는 게 행복한지 한 번 더 생각해 볼 시간이 필요했다. 그래서 퇴사를 결심했다.
40대는 돈이 많이 들어가는 시기다. 하지만 다른 요소를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나에게 집중하고 싶었을 뿐.
동료들은 나를 부러워했다. 그러면 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 당신도 돈을 포기하면 할 수 있어요! 그것을 못 버려서 그런 거지.....” 그 당시는 그랬다. 아무런 준비도 없었던 퇴사였지만 당당했다.
나는 오랜 사회생활로 어려운 일도 척척 해내는 강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퇴사 후의 자유를 만끽하면서 긍정적인 자세로 나를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을 거라 자부했다.
하지만 지금까지 갖고 있었던 나의 무기는 현실에선 쓸모가 없었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했고 누구의 도움 없이 혼자 세상을 새롭게 시작해야 하는 아이에 불과했다. 현실은 나에게 너그럽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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