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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이라이프 Apr 29. 2020

나로 살아가기

명품백을 사랑하는 이들에게

 우리의 삶이 의미를 갖게 되는 건 독립적인 나 혼자로서의 존재보다는 사회나 집단 속에서의 나 자신을 발견할 때인 것 같다. 소속감이 필요하고 인정도 받아야 하고 타인을 통해 나의 존재 의미를 확인하고자 우리는 지금도 노력하고 있는지 모른다. 하지만 때론 타인과의 공존을 통해 우리가 받는 감정들이 정말 긍정적인 감정들 만일까? 오히려 사회의 동질성이 높아질수록 집단의 응집력이 높아지는 등 순기능도 있지만 경쟁과 시기, 비교 등의 역기능도 생기고 나 자신의 진실된 내면보다는 남들에게 비치는 나의 모습에 더 많이 집중하게 된다. 이런 속내가 잘 나타나는 것이 바로 명품백이 아닌가 싶다. 아마 아무리 고가여도 세상 사람들이 그 이름조차 모른다면 선뜻 고가에 그걸 사게 되는 사람은 많이 없을 것이다. 


  유독 이런 남다른 명품 사랑이 특히 나를 포함해서 아시아인에게 더욱 심하다고 느껴지는 건 왜일까 자문해 본다. 아주 근거 없는 경험적 일반화이지만 말이다. 특히, 미국 사람들은 잘 사는 분들도 그리 명품백을 들고 다니는 걸 많이 보지 못했다. 요즘 인기 드라마 <부부의 세계>에서 젊은 술집 아가씨가 백을 사달라고 하며 유부남에게 접근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걸 보고 명품백에 더욱 집착하는 우리의 못난 모습이 많이 걱정스럽기까지 했다.  그러나 오히려 정말 부자들은 부자로 보일까 봐 부자인 티를 내는 것을 그리 달가워하지 않는 사람도 많다는 사실이다.  연말 세일 시즌 아웃렛의 일부 명품 매장에 길게 늘어선 줄에는 거의 대부분이 아시아인들인 걸 봐도 과시적 소비에 열을 올리는 건 사실이다.

    인정하긴 싫지만 명품백은 결국 우리가 기죽기 싫어서, 남들한테 부유한 사람이나 조금 나은 사회적 지위에 있는 사람으로 보이고 싶은 못난  열등의식의 역설적 표현은 아닌지 생각해 봐야 할 것 같다.


  다른 사람들의 시선에서 비치는 내외모에 집중하기보다 내가 나를 들여다보고 나의 본질에 더 집중해야 하지 않을까? 다른 사람들의 시선과 판단에서 자유롭고, 나의 껍질보다는 나의 본질을 나로서 사랑할 때, 내가 조금 못나도 내가 조금 없어도 나를 끌어안고 사랑할 때 비로소 남을 사랑의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는 여유도 갖게 되는 것이 아닐까?

 내가 멋진 명품을 소유함으로써 더 있어 보이고 멋져 보이는 나 자신의 만족감보다는 오히려 그런 것을 갖고 싶어도 살 수 없는 이웃에게 전해지는 위화감과 좌절감을 생각한다면 우리의 명품 사랑이 조금 줄어들 수 있을지 모르겠다. 주위 사람들의 눈에 보이는 내 모습보다 내 주변 사람들의 마음에 비치는 내 모습에 더 신경을 쓴다면 어떨까. 자신의 선한 미소와 따뜻한 말 한마디로 다른 이의 마음에 기억되기를, 자기 자신이 명품이라는 단단한 자신감으로 아름답게 채워지기를  기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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