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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이라이프 Apr 29. 2020

건망증과 치매 사이

나 이런 사람이야.

우리 가족들이 내가 하는 말 중에 가장 무서워하는 말은 

"엄마가 잘 두었어."라는 말이다.

"어디에? "

" 글쎄, 그때 잘 두었는데..."


문제는 잘 두었는데, 어디에 두었는지를 모른다는 것이다.

급하게 물건을 찾는데, 살림하는 엄마가 잘 챙겨두었다면서 마치 숨겨놓은 듯이 그게 어디에 있는지를 모르니,

 단서 없이 찾아야 하는 상황인 것이다. 그냥 제 자리에 놔두느니만 못한 결과이다.

아무리 내가 정리에 관한 책을 읽고 미니멀리즘의 삶을 흉내 내려고 노력하다가도 

금방 내 스타일로 회귀해버리니 우리 가족들이 나에 대한 기대를 접어둔지 이미 오래이다.




    마트에서도 열심히 장을 보면서 이것저것 카트에 담고 계산대에 줄을 서 있다가 갑자기 화들짝 놀란다.

뭔가 내 것인 듯 내 것 아닌듯한 이 찜찜한 느낌.

친근함보다는 낯섦이 더 크다.

결정적으로 김치병이 없었다. 

자세히 보니 우리 가족이 먹지 않는 이상한 야채도 들어있다.

마트를 돌다가 사람들 속에서 내가 다른 사람의 카트를 끌고 여기까지 온 것이다.

너무 겸연쩍고 영어로 설명해야 하는 부담때문에 그냥 몇 개만 빼고 필요 없는 것까지 다 사 갖고 온 적도 있다.

정말 바보짓을 한 경험이 너무 많아 식구들에게 고백하기도 창피하지만 우리 가족들은 이미 

알만큼은 다 안다.  전화 들고 통화하면서 핸드폰이 안 보인다고 호들갑을 떨거나 소금을 넣고도 까먹고 또 넣어서 요리를 망친 경험 등 일상의 많은 실수들은 대충 나 혼자만 넘어가면 되고 그리 피해도 없어서 괜찮지만 다른 사람들에게 당혹스러움을 주거나 경제적 손실이 생길 때는 허탈감과 자괴감마저 밀려든다.




 남편 배웅차 샌프란시스코 공항을 갔다가 오던 길에 바트( Bay Area를 운행하는 전철명)를 타고 집에 올 때, 차 열쇠를 잃어버려 Road service를 받고 견인되어 온 적이 있다. 

근 한 달이 넘게 지나고서야 바트 분실물 센터에서 이메일이 왔다. 잃어버린 열쇠를 찾으러 오라고.

내 머리를 쥐어박듯 정신줄 좀 놓지 말자고 여러 번 되뇌며 사무실에 도착했다. 그 담당자는 왔냐고 인사하자마자 묵직하고도 아주 큰 상자를 내게 건네주었다. 

세상 열쇠를 다 수집한 듯 온갖 열쇠들로 가득 차 있는 상자였다.

세상에 나 같은 사람들이 이리 많다니...

순간 안도감이 몰려왔다.


지극히 평범한 짓이었다는 위로가 열쇠를 찾은 기쁨보다 몇 배는 더 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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