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바랜 꿈, 케케묵은 먼지를 털며
늦둥이 딸의 수험생 매니저 노릇 하느라 운전하느라 동분서주하며 살던 생활이 종지부를 찍은 건 딸이 졸업 후 자기 짐들을 적당히 챙겨서 대학으로 떠나고부터다. 매일 듣던 "엄마, 엄마"라는 소리를 이제 자주 듣지 못한다는 생각을 하니 갑자기 서글픔이 밀려온다. 오히려 내가 딸에게 더 심리적으로 의존하고 있었던 건 아닌가 싶다.
"엄마, 이젠 나땜에 못 했던 거 마음대로 하고 살아.
엄마 뭐가 하고 싶었어? 뭐가 꿈이었어? " 하는데,
갑자기 말문이 턱 막혔다.
'글쎄, 꿈이란 게 있었나? 내가 지금 꿈이란 단어를 내 입에 올려도 될까?
꿈이란 단어보다는 은퇴, 노년, 황혼 이런 단어에 익숙해지면서 인생의 후반전이라는 내 삶의 시점을 명확히 인식해야 하는 거 아닌가?'
갑자기 한 대 얻어맞은 듯 한참을 멍했다. 알콩달콩 친구처럼 지지고 볶고 살다가
엄마를 남겨두려니 걱정이 많이 되는지 지인들의 졸업 선물에 대한 감사카드에도 엄마에 대한 부탁을 빼놓지 않는 울 딸이 자신이 떠난 빈자리를 나의 시들지 않은 꿈이 채워주길 바라는 것 같다.
오십 대 아줌마에게 꿈이 어울릴까? 지인들에게 받는 선물은 대부분이 Anti-aging 화장품인 나이,
나에겐 꿈이란 마치 망가진 몸매에 세퀸이 잔뜩 달린 블링블링한 옷을 입은 것처럼, 쭈글거리는 손에 형광색 매니큐어를 바른 것처럼 눈에 거슬리는 느낌이 들었다.
누렇게 변색되고 삭아서 금방 부서져 내릴 것 같은 단어, 꿈.
깊이 처박혀 있어서 세상 먼지가 잔뜩 쌓여 반쯤은 지워져 버린 글자, 꿈. 케케묵은 먼지를 떨어내도 그게 무엇인지 잘 보이지 않는다.
아직도 잘 모르지만, 그냥 새로움에 대한 탐구와 경험쯤으로 나 자신이 규정해 보고 있다.
그래서, 이렇게 글도 쓰고 3D Design도 시작하고 있나 보다.
더 중요한 건 가족들에게 반찬 냄새나는 엄마에서 좀 더 나다운 엄마로 보이고 싶고,
아이들이 기억하기에 따뜻함 외에 자신의 삶에 열정적인 면도(?) 있던 엄마로 기억되고 싶은 욕심도 마음 한구석에 있는 것 같다.
브런치 하면 먹는 것만 생각나 군침만 도는 내가 글쓰기 플랫폼이라는 걸 알게 되고 글을 올리기 시작하고 보니 너무 낯설게 느껴진다. 옛날부터 문학소녀도 아니었고 책도 많이 읽지 않았던 내 글이 자격미달 같은 느낌도 있고, 한편으로는 내 글이 요즘 트렌드에 맞지 않는 유행 지난 옷처럼 느껴지면 어쩌지 하는 걱정도 생긴다.
물 좋은 브런치에 물을 흐리는 느낌이랄까?
하지만, 씩씩하게 글을 쓰고 글을 쓰는 것을 즐기고 있다.
브런치의 다양한 메뉴를 위해서, 달콤하고 예쁜 메뉴보다 쌉싸름하고 볼품없지만 오랫동안 향기가 남는 허브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