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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이라이프 May 01. 2020

둔감녀와 예민남

닮아가기

    Veteran이라는 단어가 미국에서는 전문가라는 의미보다는 퇴역 군인이라는 의미로 더 폭넓게 쓰인다.  하지만, 산전, 수전, 공중전을 겪었다는 표현 속에 들어 있듯 치열한 전투를 다 겪어서 그만큼 내공이 쌓인 의미로 유추해 보면 거의 같은 맥락으로 생각된다. 또, 인생만큼 치열한 전투가 또 어디 있겠는가? 달달한 부부관계도 많지만 내 경우는 50을 훌쩍 넘기고 나니 이외수 작가의 말처럼 부부간에 끈끈한 전우애(?) 정도는 생기는 것은 확실하지만 아직 베테랑급의 내공은 전혀 쌓이지 않는 느낌이다. 계속 다름을 인정하며 살고 있지만 아직 이해의 폭은 좁혀지지 않고 타협하는 관계이다. 


    우리 부부는 어찌 보면 정규분포의 양 극단에 서 있는 양극의 outlier의 만남이랄까. 외부 조건들은 비슷한 것들도 많았지만, 성격은 여러 면에서 달랐다. 난 극단적으로 정신없는 스타일이고 외향적인 반면, 그는 극단적으로 예민한 스타일에 완벽주의 성향이 있다.  내 경우 물건을 잃어버리는 것이 자주 있는 일이라 그것에 대해 그다지 충격을 받지 않는 편인데, 언젠가 남편은 지갑을 한번 잃어버리고는 평생 처음 있는 일이라 그 사건이 엄청 각인되어 트라우마처럼 작용하는 것을 보았다. 요즘 크게 깨달은 것은 내가 선 자리에서 내가 가진 렌즈로만 그를 보려고 했다는 자각이다. 살을 맞대고 살아도 생각은 화성과 금성만큼이나 멀고도 다른 사이, 기본적인 이런 성차외에도 이런 기질 차이까지 있으니 가까이하기엔 너무 먼 당신이란 말이 딱 맞다.


  그런 내게 요즘 Elaine Aron의 <섬세한 사람에게 해 주는 상담실 안 이야기>라는 책은 뭔가 안 풀리는 문제에 대한 중요한 답안지를 만난 느낌이었다. 이 책을 읽고 그동안 내 중심적으로 남편을 판단했던 오류가 보였고, 동시에 그런 성격의 남편이 반대로 나를 이해하고 극복하기가 생각보다 엄청난 일이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이 책은 Highly Sensitive People이 기질적으로 타고 난 성품이므로 바꾸기가 힘들다는 전제로 시작한다. 자극 역치가 낮아 통증에 민감하고 정보탐색 깊이는 깊고 새로움에 적응하거나 판단할 때도 고려해야 할 사항이 많아 걸리는 시간이 길다. 흔히 말하는 결정장애처럼 보이는 면도 있다. 소음 관련해서도 법적으로 규정한 데시벨 이하의 적은 자극이라도 어떤 사람에게는 견디기 힘들 정도의 자극일 수 있다는 것을, 이런 다양한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런 사람들의 경우 주류에 있지 못하고 비주류로서 사회에 적응해야 하는 문제가 생각보다 힘들다는 것을 우리가 이해해 주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저자는 이런 성향의 사람이 잘 양육될 경우 사회적 큰 성취를 이루는 경우가 많고 장점도 많지만, 이해 못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그저 까다로운 사람으로 여겨지고 사회적응이 힘들 수 있다는 것이다. 성향이 다른 배우자를 만날 경우, 갈등 소지는 있지만 상대방이 일을 진행시키고 대외적인 일들을 처리하며 상호보완적인 관계를 잘 유지할 수 있다고도 한다. 


  나는 남편이 반응했던 예전의 이해할 수 없는 행동과 말들에 대해 보다 잘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다. 요즘 다들 성격차이라는 명목으로 너무나 이혼이 쉬워졌다. 치약 짜는 방식이 달라 헤어졌다고 말은 하지만, 치약은 이 둘의 성향 차이를 극명히 대변해 주는 하나의 상징에 불과하다. 과거 절절한 사랑을 하며 기울였던 노력과 시간들을 상대방을 이해하기 위해 그만큼 열심히 기울여 왔는지 자문해야 할 것 같다. 

 Love is the relationship that passes the test of timing.
 - Kim Casali -

이라는 말처럼 세월이라는 것도 참사랑을 규정짓는 하나의 요인으로 생각해 봐야 한다.

 


 삶의 마지막까지 완주한 노부부들의 부드러운 미소와 따뜻한 시선, 맞잡은 두 손에서 볼 수 있는 것도 진정 아름다운 사랑 아닌가?  오랜만에 이 책을 읽으면서 딸아이가 생각났다. 동물의 숲 게임을 같이 하면서 딸이 게임기의 진동으로 어느 고기를 잡았는지 예민하게 진동의 종류와 느낌을 구분하는 것을 보고 자극에 대한 민감도에 놀랐다. 내가 외향적이라고 판단했던 딸에게서 아빠의 성향이 느껴졌고 그간 둔감하게 막 대하고 넌 왜 이렇게 까다롭니? 하고 판단했던 것들에 대해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앞으로는 지금의 내 자리에서 바라보며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성큼 가까이 다가가 우리 애가, 우리 남편이 서 있는 그즈음에서 마음을 들여다보려는 노력을 해야 겠다고 다짐했다. 그리고 정신줄 놓고 사는 나를 이해해 주는 가족들도 나름 노력하고 있구나. 감사하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나님,
내가 변화시킬 수 없는 것들은
받아들이는 평온함을 주시고,

변화시킬 수 있는 것들은 

변화시킬 수 있는 용기를 주시고

이 두 가지를 구별할 줄 아는 지혜를 주소서

...


Prayer for Serenity


                                                By Reinhold Niebuhr

God, grant me the serenity
to accept the things I cannot change,
the courage to change the things I can,
and the wisdom to know the differenc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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