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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이라이프 Apr 27. 2020

아빠는 돼지 아냐

어린이 브리태니커 백과를 받다.

     새 참을 과수원에 내다 주고 와서 일하며 즐겨 듣던 라디오 방송은 EBS의 <생방송 부모>라는 프로그램이었다. 늘 애들이 걱정되기도 했고 아이 키우는 얘기를 듣고 있으면 세상사는 보통 엄마들이랑 둘러앉아 있는 기분이 들어서 였던 것 같다. 당시 김자영 아나운서가 진행을 맡고 있었는데 이런저런 세상 정보들과 이야기는 많은 도움이 되었다. 특히, ADHD 증상이 있었던 큰 애 때문에 나는 육아 정보에 더 목말라했었던 것 같다.


     그나마 큰 아이에 대한 걱정이 많았을 때여서 육아의 사각에 놓인 딸아이는 학습지 비슷한 책이라도 한 권 사다 주는 날에는 하루에 다 끝내 버리 곤 했다.  어느 날 점심 설거지가 끝나고 모처럼 둘이 앉아서, 늦둥이 딸에게 갑자기 영어 좀 시켜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를 돌아보지 못하는 엄마의 나름 엄마다운 행동이라 생각했던 건지 기억이 나질 않지만... 그러고는 아이에게 엄마, 아빠를 영어로 가르쳐 주며 따라 하라고 알려주었다.


" 엄마 따라 해 봐. 아빠는 daddy야. daddy." 

그랬더니, 울 딸이 갑자기 얼굴이 일그러지더니, 

"아빠는 돼지 아냐. 엄마가 돼지야." 

그러고 우기기 시작했다. 


누가 아빠 딸 아니랄까 봐 아빠 편들고 따지는 것도 어이가 없었지만, 영어만큼은 내 선에서는 안 되겠구나. 단념하게 되었다. 그 날 이후로는 어설픈 영단어나 영어 문장을 아이 앞에서 함부로 말하지 않게 되었다. 


외딴 터라 가끔 오시는 우체부 아저씨도 반가운 그곳에서, 어느 날 우체부 아저씨가 묵직한 상자를 갖다 주셨다. 

" 이게 뭐예요? "

" EBS에서 보낸 거라고 되어 있네요."


정말 이 우스운 사연을 방송국에 써서 보냈더니, 사연이 소개되고 선물로 어린이용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을 받게 되었다. 

하지만, 그 날 저녁에 난 소심하게도 반성이 되었다. 

'내가 그렇게 뚱뚱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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