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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lf Jan 20. 2021

그래, 나 헛똑똑이다.

서울대생의 고민

시작은 콩 프로틴에서. 넷플릭스 '게임 체인저스'를 보며 식물성 단백질에 매료되어 버린 선임과 나는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콩과 현미 프로틴을 인터넷 주문했었다. 콩 단백질을 섭취하면서 깨끗해지는 피부와 가벼워진 몸을 체감하며 나름 만족하고 있지만, 간과하기 힘든 문제점이 있었다.


바로 맛이다. 끝 맛을 비유하자면 마치 석고나 병원용 흰색 액체를 먹는 것만 같다. 특유의 비리고도 신 맛, 뭔가 사람이 먹으면 안 될 것 같은 맛 때문에 처음에는 기겁하며 많이 알아보지 않은 것을 뼈저리 후회했었다. 그래도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라는 말이 있지 않는가. 선임은 이대로 맛없이 먹을 순 없다며 여러 가지 BX 조합을 시도하더니, 끝내 두유와 꿀을 섞어 맛있게 먹을 수 있는 레시피를 찾았다.


맛있어 보였지만, 한번 맛있게 먹는 레시피를 찾으면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것 같기도 하고, 배달 음식이나 즉석식품 등으로 주머니 사정도 여유치 않았기에 난 그저 꿋꿋이 맹물에다가 콩 프로틴을 타 먹는 것을 고수하였다. 선임은 두유도 꿀도 몸에 좋은데 왜 같이 넣어서 먹지 않냐며 핀잔을 주었고, 두유와 꿀 역시 운동할 때 큰 도움이 된다고 설득했었다. 들으면서도 머리로는 선임의 말이 분명 맞고 합리적임을 알았지만, 자존심 때문이었는지 귀찮았는지는 몰라도 마음이 내키지 않았다.


그러자 선임이 반 농담 반 진담으로 나에게

박진우는 진짜 똑똑한데, 너무 멍청이야.
진짜 멍청한데 똑똑하기도 하고. 완전 헛똑똑이야.


라고 말했다. 평소에도 틀린 걸 알면서도 고집스럽게 나만의 길을 고수하는 성향을 반쯤 놀리고 싶은 마음에 그런 말을 했다는 걸 알았기에, 겉으로는 삐진 척을 나름 해보았지만 실상은 크게 마음의 상처를 받지 않았었다. 다만, '헛똑똑이'라는 단어가 나의 단점을 잘 대표하는 단어이자, 스스로에게 가지고 있던 컴플렉스를 가장 잘 대표하는 단어임을 알았고, 그런 깨달음은 피딱지를 때듯 따가우면서도 시원했었다.



그래, 나 헛똑똑이다. 주변 사람들은 날 보며 똑똑하다 칭찬하지만, 사실 이는 내가 그저 서울대생이기 때문에 받는 오해와도 같은 것이다. 평소 생각을 나누거나, 학문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 이들이라면 백번 양보해서 나의 똑똑함을 느꼈을지도 모르겠지만, 보통 '머리 좋다.'라고 칭찬하는 이들은 그런 경험조차 공유하지 못한 사람들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서울대생이니깐 머리가 좋겠지라는 고정관념으로 나를 바라보다 보니, 내가 똑똑해 보이나 보다. 하긴 나도 마피아 게임을 하면서 확증편향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요즘따라 체감하고 있으니, 탓할 마음이 생기진 않는다.


23살, 짧은 인생을 살면서 내가 이룬 것들은 언제나 자본과 타인으로 점철되어있다. 그런 도움을 받고도 좋은 대학에 들어오지 못한 사람이 많다는 것을 알기에, 부족해 보이는 나의 재능을 한풀이할 수는 없었지만, 언제나 머리 한켠에는 내가 물리로 먹고 살만큼 똑똑한 사람은 아닌 거 같다, 라는 애매한 확신만이 뿌리 깊게 자리해있다. 그렇지 않은 사람이 있으니, 네가 재능이 있는 것 아니냐라는 반문도 많이 들었었지만, 초등학교 때부터 학교 친구보다는 학원 친구가 더 친했었던 나는 내가 잡아먹은 학원비가 무시무시하다는 것을 알기에, 딱히 설득되지는 않는다. 중학교 방학 때는 아침 8시부터 새벽 1시까지 학원에서 물리만 했었으니, 1년간 학원비는 모르긴 몰라도 중형 세단 정도는 되지 않을까.


영재고를 대비했었던 나는 초등학교 5학년 때 처음으로 고등학교 1학년 수학을 배웠으며, 중학교 2학년 때 처음으로 일반 물리를 배웠었다. 어렸을 때 과도한 선행학습을 소화한 기억들을 되짚으며 일말의 자부심을 느꼈을 때도 있었다. 그러나 대학 와서 더 공부하며 찾은 내 머릿속 오개념들은 대부분 어린 시절 공부를 통해 만들어졌으며 학원 선생님들이 어떻게든 이해시키겠다는, 아니 문제를 풀리겠다는 일념으로 가르치며 만들어졌다는 것을 깨달았다. 결국 과도한 선행학습을 소화할 수 있었던 것은, 내가 그만큼 공부에 있어서 비 반항적이었다는 뜻일 뿐이다. 물리나 수학에 대해 친근하게 느끼는 것. 이과 과목을 잘하는 데 있어서 필수적이며 좋은 스타트다. 하지만 그건 서울대 이과생 정도면 모두가 가지고 있는 걸.


그렇게 열심히 준비한 영재고였지만 탈락의 고배를 마셔야만 했다. 영재고 입시 선생들은 재빠르게 말을 바꿔, 일반고에 가면 내신을 속된 말로 씹어먹는다며, 무난히 서울대에 갈 수 있을 것이라며 국어 영어 학원들을 추천했었다. 그렇게 난 고1 겨울방학 때 영어학원을 3개까지 다니며 평소에는 수학 3개(내신 2개, 수능 1개 → 내신 1개, 수능 2개), 과탐 3개(내신 3개 → 2개), 국어 2개(내신 1개, 수능 1개 → 수능 2개), 영어 1개를 다니며 내신과 수능을 준비했었다. 더 충격적인 것은 고등학교 때 학원에서 머물렀던 시간이 중학교 때보다 짧다는 것. 고등학교 1학년 때는 그렇게 학원비를 잡아먹고도 영재고/과고에 가지 못한 스스로가 너무 한심하고 분해서 절치부심하며 전교 1등을 다짐했었다. 그러나 웬걸, 세상은 넓고 잘하는 애들은 많다고, 분명 모두가 나에게 1등을 할 것이라고 호언장담을 했었는데, 등수는 속절없이 하나씩 밀렸었다. 1이 아닌 숫자를 보며 자괴감을 느끼면서도 밥맛으로 찍힐까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했던 그때의 나. 서울대에 갔기에 망정이지, 만약 그러지 못했다면 내 자존감은 지금쯤 어디에 있었을까.


더 우스운 사실은 그럼에도 내가 고등학교 시절 정말 공부를 열심히 했느냐? 그것도 아니다. 분명 노력을 했지만, 서울대에 갈 정도는 아니었고, 분명 머리가 좋은 편이었지만, 서울대에 갈 정도는 아니었다. 날 서울대에 보낸 이유 중 80%는 사교육이다. 그렇기에 나는 나 스스로를 '우리나라 교육의 문제점'이라고 부르곤 했었다. 특별한 재능 없이 학원과 자본을 쏟는 걸로 서울대에 들어갈 수 있다며 스스로를 자조하며, 나의 좋은 입시 성적은 모두 웬만한 재능 따위는 자본과 시간으로 눌러줬기 때문이라며 후배들에게 설명해주곤 했다.


애매한 재능은 악마의 저주라는 말이 있다. 그렇게 난 애매한 재능과 터무니없는 자본과 시간으로 서울대에 갔고, 그곳에서 진짜들을 만났다. 학원은 고민할 시간을 주지 않아 별로라며 학원을 뛰쳐나왔다는 이야기를 부끄럽게 이야기하는 동기부터, 우리나라 물리 국가대표를 했던 선배들도 만났다. 2, 3학년 때 배우는 과목을 단순한 호기심으로 듣는 괴짜들도 있었고, 교수님 수업 따위는 안 듣고, 시험 2주 전부터 책으로 독학하는 벼락치기 장인들도 있었다. 그들은 대체적으로 풀리지 않는 문제 앞에서 고민할 줄 알았고, 책이 미처 말하지 못한 점들을 스스로 깨닫곤 했다. '하나'를 알려주면 '열'을 아는 것은 기본이며, 오랜 고뇌 끝에 '하나'를 직접 알아내고는 '열'까지는 자명하다며 넘어가기도 하였다. 물리학자를 다짐할 때부터 꿈꿔왔던 멋진 모습들을 벌써부터 실현하는 그들을 보며 보잘것없는 내 무기를 감추곤 했다. 그렇게 깎여나가는 자존감을 막는 것은 오로지 자기 자신이라는 것은 최근에야 깨달았지만, 그것마저 그저 말장난이라고 비딱하게 생각하곤 한다. 냉정하게 나 스스로를 돌아봤을 때, 내가 가진 똑똑함이라고는 단 3개. 숫자에 대한 감각이 좋고, 모르고 아는 것을 더 세심히 체감하고, 객관적이라는 것. 그마저도 마지막은 나의 착각일 수도 있다. 그나마 두 번째 장점이 뭔가 쓸모 있어 보이는데, 배우는 속도가 느리다는 큰 단점을 오히려 부각시키는 요소이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더 많이 한다.



글에서 내 열등감이 뚝뚝 흘러넘치지만, 뻔뻔하게 지금은 괜찮다는 말을 하고 싶다. 그런 뻔뻔함이 내 마음속에 '헛똑똑이'라는 인상을 남겼겠지만 말이다. 아직까지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안 한 것을 스스로도 알고 있다. 자신을 갈고닦아야 무언가 세련된 강점이 나오는 것이 이치인데, 그저 남들은 날 때부터 가졌다고 생각하는 비겁함과 자기 합리화로 시도하지 않는 것은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멍청이이기 때문이다.


이는 나의 군생활의 목표기도 하다. 스스로의 정의 속 '멋진 사람'이 되기. 빠르지 않아도 되니깐 차근차근 물리 개념을 정리하여 Slow Starter라는 나의 단점을 장점으로 만들기. 비단 공부만 하는 것이 아니라 운동이나 춤도 열심히 갈고닦아서 매력적인 사람 되기. 글 쓰는 것도 놓지 말고 꾸준히 쓰기.


근거 없는 희망이겠지만, 모든 똑똑이들은 '헛똑똑이' 과정을 거쳐야만 하는 것 아닐까 생각한다. 모두 서툴고, 시야가 좁은 시절이 있지만 수많은 경험과 고민, 직관과 공부를 통해서만 결국 똑똑한 사람이 되는 것 아닐까 믿는다. 그렇기에 지금은 헛똑똑이란 말에 상처 받지 말고 되려 뿌듯해하는 nerd가 되자. '여기서 내 길을 꺾고, 다른 사람 말에 휘둘린다면 난 다시는 똑똑해질 수 없을 거야'라고 생각하면서 꿋꿋이 나 하던 대로 할 시간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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