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가장 재미있게 본 드라마가 뭐냐고 묻는다면, 주저 없이 말할 수 있는 드라마는 '또 오해영' 이다.
작품성이 뛰어난 드라마는 아니었지만 개인적으로 어느 한 명 부족함 없는 배우들의 연기, 음악, 연출, 영상미, 대사, 스토리까지 완벽했던 드라마. 다른 드라마 주인공들처럼 뻔한 감정선이 아닌 인간미 있는 모습을 보여주는 '오해영'에 특히 이입하기도 했었다.
'또 오해영' 에서 박도경의 직업은 영화 음향감독이다. 소리에 관련한 재미있는 장면이 나온다.
'또 오해영'의 명장면은 너무 많지만 이 장면은 잊을 수가 없다. 늘 다른 직업의 사람들을 만나면 이것저
것 물어보는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하다. 내가 아직 모르는 세계에서는 놓치기 아까운 표현들이 너무나 많이 존재한다. 한 때 소설가를 꿈꿨던 학부생의 고질병이기도 하다. 좋은 표현은 어딘가에 꼭 저장해놔야 안심이 된다. 햄스터 마냥 저장 해 놓은 좋은 표현들은 내담자와의 상담 장면에서 이것저것 꺼내 사용하기도 한다. 직접적인 긴 말보다 비유적인 한마디가 내담자의 가슴까지 닿는 경우가 있다.
나는 음악 듣는걸 너무 좋아해서 고3 시절에는 하루 20시간씩 음악을 들었다. 잠 잘 때, 학교 가는 길과 집에 가는 길은 기본이며 고3 때는 수업 진도를 나가지 않고 자습을 시켰기 때문에 낮 자습시간, 야간 자습시간에도 늘 음악을 들었다. 그러다 보니 반대로 음악을 듣고 있지 않을 때는 현실이 뭔가 어색하고 따분하다는 묘한 기분이 들기도 했었다.
음악은 참 신기하다. 사진처럼 음악을 듣고 있던 때의 향기, 감정, 기억, 느낌 등을 멜로디 속에 담아둔다. 평범한 풍경도 이어폰을 꽂으면 새로운 장면이 된다. 영상의 '햇빛 드는 소리'는 이런 느낌의 충격이었다.
감정도 이와 비슷하다. 심리학자 융의 표현을 빌리자면,
감정은 어떤 대상이 당신에게 어떤 가치와 의미를 지니는지에 대해 말해준다. 모든 사람들이 감정이 본능적이고 비이성적인 기능인 것처럼 믿지만 사실은 굉장히 사고처럼 이성적인 기능이다. 사고는 그 사물이 어떤 것이라는 점을 말해주고, 감정은 그것이 우리에게 어떤 가치를 지니는지에 대해 말해준다.
감정과 정서는 단순히 사건일 뿐이다.
왜냐하면 감정 상태에 있을 때 당신은 감정이라는 단어가 의미하는 바와 같이 멀리 밀려나 있고, 옆으로 던져지고, 품위 있는 당신의 자아는 옆으로 밀쳐지고, 그 외의 다른 무엇인가가 당신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감정이 자아의 자리를 차지하는 순간 당신은 더 이상 당신 자신이 아니며, 당신의 통제력은 사실상 제로 수준으로 떨어진다.
감정이나 정서에 대해서는 너무나 많은 연구가 있기 때문에 다 이야기할 수는 없지만, 대부분 우리가 감정에 자리를 비켜줘야만 할 때 힘들어한다는 것은 명확하다. 상담을 하다 보면 마음이나 감정을 통제하고 억압해야 하는 것처럼 이야기하는 경우를 많이 본다. 착각이다.
우리의 감정은 억압하는 것이 아니라 올바른 방식으로 표현되어야 한다.
"감정은 통제할 필요가 없어." 그가 말했다. "감정이란, 오늘의 날씨처럼 자연스러운 거라네. 때로는 두려움이고, 때로는 슬픔이나 분노지. 감정이 문제가 아니야. 감정의 에너지를 건설적인 행동으로 바꾸는 게 문제의 핵심이야."
햇빛 드는 장면에 소리를 부여함으로써 장면이 새롭게 탄생한 것처럼, 우리의 감정도 나의 어떤 소리를 입히느냐에 따라 다르게 보이고 들릴 수 있다. 감정과 사건은 그 자체로서 아무런 문제가 없다. 문제의 핵심은 우리가 어떠한 습관을 통해 의미를 부여하느냐이다. 이 차이를 깨닫는 순간, 감정과 사건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연습을 시작할 수 있다.
항상 삶에서 실천해야 한다. 실천 없는 지식과 생각들은 잠시 머물다 공중에서 흩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