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담을 하다 보면 생각보다 스트레스에 압도되고 있을 때 마땅한 방법들을 지니고 있지 않은 내담자들을 자주 만난다. 어떻게 보면 누구나 알고 있고 생각할만한 이야기지만 막상 우울이 오거나 스트레스에 짓눌리면 무기력해지는 경우가 많다. 왜 그럴까?
첫 번째는 별로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인간은 많은 시간을 무의식적으로 행동한다. 24시간 의식적으로 살아간다면 엄청난 과부하가 온다. 운전을 처음 배울 때를 떠올려보라. 긴장 속에서 실수하지 말아야 한다는 의식적인 생각이 얼마나 어깨를 무겁게 했던가. 평소에 의식적으로 탈출로에 대해 고민하지 않는다면 위기가 왔을 때 그 자리에서 웅크리고 있을 수밖에 없다. 어디로 탈출해야 하는지, 어디가 지름길인지 혼란스럽게 된다.
두 번째는 구체적으로 생각해 본 적이 없다.
나라는 사람은 무엇을 좋아하는지, 무엇을 할 때 즐거운지, 무엇이 나에게 맞는 방식인지 구체적으로 알아야 한다. 그래야만 적재적소에 탈출로를 따라갈 수 있다. 관계에서 힘들 때를 위한 탈출로가 있고 스스로에 대한 분노에 휩싸였을 때 필요한 탈출로가 있다. 길은 항상 다를 수 있기 때문에 탈출로는 많고 다양할수록 좋다. 아마 이런 부분에 있어서 흔히 양팔로 자신을 토닥여주거나 위로하는 방법들이 누군가에게는 엄청난 효과를, 누군가에게는 유치한 장난처럼 보이는 것일지 모른다.
구체적인 '어떻게'가 필요하다. 먼저 내가 에너지를 얻는 것들에 대해서 작성하라. 이 표현이 어렵게 다가온다면 무엇인가를. 했을 때 나를 즐겁게 만드는 목록들을 작성하라. 타인의 즐거운 방법을 모방할 필요는 없다. 다만, 정말로 나는 즐거운 것이 무엇인지 모르겠다면 다른 사람들의 방법을 참고해 볼 수는 있다.
핵심은 실제로 해보았을 때 나를 즐겁게 하고 에너지를 충전해 주는 목록들을 찾아야 한다. 구체적인 방법들은 개인의 상황에 맞추면 더 좋다. 예를 들어 내가 정말 호캉스를 즐길 수 있는 상황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호캉스를 탈출로로 고집하는 것은 경제적인 타격과 함께 더 우울하게 만들 수도 있다.
방법들을 다양하게 섞어라. 사람들과 함께하는 것, 혼자 하는 것의 비중을 자신에게 맞춰 조절해야 한다. 내가 사람들과 만날 때 에너지를 얻는다면 사람들과 커피를 마시는 일, 영화를 보는 일 등의 비중을 높이고 사람들과 만날 때 주로 에너지를 쓴다면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면서 충전할 수 있는 일들을 만들어야 한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어느 한쪽으로 치우쳐서는 안 된다. 너무 사람만 만나서도 안되고 너무 혼자만의 시간을 가져서도 안된다. 외향과 내향에 100:0은 없다. 각 사람마다 30:70, 50:50 등 다양하기 때문에 균형을 이루어야만 한다.
결국 탈출로가 필요한 이유는 마음의 가스를 빼기 위함에 있다. 마음이라는 밀폐된 방에 유독 가스가 차는 순간 사람은 비이성적이게 된다. 판단은 흐려지고 충동적이게 되며 분노하거나 이내 우울해진다. 그래서 무작정 내 마음 깊숙한 곳에 자리 잡은 문제와 함부로 직면하는 것은 위험하다. 다양한 탈출로를 통해 고통의 방에서 먼저 빠져나와야 '나'를 돌아볼 수 있다. 물론 이조차도 임시방편일 뿐이다. 비닐봉지 속에 썩은 생선을 제거하지 않으면 아무리 봉지 속에 가스를 빼더라도 시간이 지나면 다시 가스는 차오를 뿐이다.
우리의 마음에는 최소한의 이정표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