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MBTI가 핫하다. 주로 상담 장면이나 학교기관에서 성격유형 탐색을 위해 사용되던 MBTI 검사가 대중에게 인기가 많아졌다는 건 좋은 모습이다. 하지만 그런만큼 부작용도 있다. MBTI가 원래 신뢰도가 높은 검사는 아니지만 거의 혈액형에 따른 성격 유형 정도로 여겨지는 것은 상담사로서 가슴 아픈 일이다.
솔직히 나는 상담사지만 MBTI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실제 상담장면에서도 내담자가 원하지 않는 한,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 전문가라고 할 수 있는 상담사들 조차도 MBTI를 유형별로 나누고, '짠! 당신은 이런 유형이기 때문에 이런 사고, 행동 패턴을 보이는 겁니다.'라는 식으로 기계적으로 해석하는 경우가 많다.
MBTI의 다양한 유형과 자세한 내용은 유튜브나 인터넷에 너무 친절하게 설명하고 있기때문에 오늘은 상담사로서 MBTI를 조금 더 심도 있게 해석하는 방법을 공유하고자 한다
MBTI의 기원은 분석심리학자 칼 융의 성격유형 이론을 바탕으로 1920년에 브릭스 집안의 엄마와 딸이 개발했다. 융의 이론에 입각해 마을 사람들의 성격 유형, 패턴 등을 구분하였더니 유용했다. 이후 MBTI Form A, B, C, D, E 등을 거쳐 지속적으로 개발된다.
우선 MBTI는 MMPI같은 검사에 비해서 신뢰도가 떨어진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심리검사에 대한 강의는 아니기 때문에 간단히 얘기하자면, 그냥저냥 성격을 탐색해볼 수 있는 검사 정도이다.
가끔 상담사중에도 MBTI를 맹신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대부분 이야기를 나눠보면 검사에 대한 이해가 없거나 검사에 의한 긍정적인 경험으로 인해 뇌까지 침범당한 경우였다..
MBTI의 인기가 상승하면서 자기의 성격유형을 해석해달라는 사람이 많아졌다. 대부분 간이 검사나 인터넷에서 제공하는 MBTI 검사를 토대로 물어보기 때문에 MBTI 검사에 점수가 있다는 걸 모르는 사람들도 많다.
"너 점수가 몇점이었는데?"
"아니, ENFP인데 상담사님이 설명좀"
"그러니까 ENFP인데 점수가 뭐냐고"
"아니 그냥 ENFP라니까?"
" 하.. 저 XX"
보통 여러분은 MBTI결과를 유형으로만 알고 있었을 거다. 나는 ENTP다, ENFP다. 그러면서 우리는 마치 답안지를 비교하듯, 그럴듯하게 혹은 유머 있게 설명해놓은 MBTI의 유형 설명을 보며 확인할 것이다.
'오 나는 ENFP구나. I라고 생각했는데 어쩌면 나는 E일지도?'
'음. 역시 나는 감정적인 사람이지 역시 나는 F가 맞아.'
이처럼 우리는 검사 결과 유형에 나를 끼워 맞추기 시작한다. 나는 MBTI와 관련해서 이런 질문을 꼭 한다.
"MBTI 검사 유형이 본인하고 정말 잘 맞죠?"
"네! 정말 똑같아서 신기해요!"
"왜 똑같은지 아세요?"
"어.. 좋은 검사라서?"
"아니요. 내담자분이 질문에서 선택한 대로 나온 결과이니까요."
그렇다. 여러분 대부분은 이 함정을 깨닫지 못한다. MBTI의 유형 결과는 사실상 당신이 질문에서 선택한 결과값일 뿐이다.
가령, '나는 집에서 머무르는 것보다 밖에서 무언가를 하는 편이 좋다.'라는 항목에 '예'라고 답했다면 당연히 당신의 유형 결과는 E(외향성)로 치우칠 것이다.
이런 검사유형을 심리검사에서는 '자기 보고식 검사'라고 이야기하는데, 자기보고식 검사의 장점도 많지만 단점은 말 그대로 자기 보고에 의해 이루어지는 검사이기 때문에 객관성이 떨어지는 경우가 많다.
그럼 MBTI 검사는 의미없는 검사인가? 그런 것은 아니다.
MBTI 검사의 신뢰성에 대해서 의심하고 맹신하지 말아야 하지만, 여전히 한 개인이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좋은 검사도구의 역할을 하고 있다. 중요한 것은 이 도구를 어떻게 의미 있게 활용하느냐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각 유형별 점수를 파악해야만 한다.
우리는 흔히 외향적이다, 내향적이다라고 표현할 때 100:0을 생각하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절대 사람의 성격은 그렇지 않다. 50:50, 60:40, 30:70 등으로 다양할 수 있다.
내가 정확히 몇을 쓰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떤 성격유형을 주로 사용하는지 구분할 수 있어야 한다.
먼저, E(외향)와 I(내향)는 거의 선천적이라고 볼 수 있다. 물론 환경에 영향을 받기도 하지만 타고난 기질에 가깝다.
E와 I를 제외한 나머지 감각, 사고, 판단, 직관, 감정, 인식들은 환경의 영향을 주로 받고, 변화할 수 있다.
변화할 수 있다는 사실은 다시 '성격은 발달한다'는 개념과 이어진다.
사람들이 흔히 하는 말 중에 '사람의 성격은 안 변한다'라는 말이 있다. 심리학의 관점에서는 틀린 말이다.
물론 성격에 대한 연구는 너무나도 다양하고 유전의 영향, 환경의 영향, 두 가지 모두 상호 보완한다 등의 많은 개념들이 있지만 대부분 학자들이 공통적으로 성격에 대하여 이야기하는 것은 '성격은 발달한다'이다.
다시 MBTI로 돌아와서, 이제 우리는 각자 MBTI 성격 유형을 보고 체크해야 할 것이 있다.
1. 각 유형별 점수가 어떠한지?
각 유형별 점수를 파악해야 하는 이유는 위에서 말했듯이 내가 ENFP라고 해서 이 유형을 100:0으로 사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가령, E의 점수가 60, I가 40이어서 최종 검사 결과는 E로 나온 사람이 있다고 치자. 이 사람은 의아할 것이다.
'나는 혼자 있는 시간을 좋아하지만 밖에 나가서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도 좋은데?라고 생각할 것이다.'
당연하다. 이 사람은 E점수 60, I점수 40이기 때문에 사실상 상황, 대상에 맞춰서 양쪽을 다 사용할 수 있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모든 성격유형의 점수를 파악하고 얼마나 내가 밸런스 있게 성격 유형들을 사용하고 있는지 탐색해야 한다. 더 구체적인 how to는 내가 외향과 내향이 필요할때 구체적으로 무엇을 할것인가에 대해서 고민하면 도움이 된다.
2. 1~3년 단위로 검사를 할 때마다 성격 유형이 변화하고 있는지?
앞에서 말했듯이 성격은 발달한다. 가령, 자기는 10년째 ENFP라고 하면서 자랑하듯이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있다(과거 내 얘기다).
좋은 성격, 나쁜 성격은 존재하지 않지만 10년째 성격 유형이 같다는 것은, 반대로 성격에 발전이 없다는 의미도 가지고 있다.
물론 꼭 성격이 변화해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성격이란 적응적이냐, 부적응 적이냐로 나누기 때문에 내가 삶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 불만이 없고 적응적이라면 그대로 쭉 가셔도 된다.
하지만 무언가 나 스스로 내 성격이 잘못되고 있다고 느낀다면 점검하고 발달시킬 필요가 있는 것이다.
3. 성격 유형의 변화에 영향을 준 것이 무엇인지?
가장 좋은 예시는 J와 P이다. 보통 J는 꼼꼼함을, P는 융통성, 충동적인 모습을 보여주는데, 초, 중, 고 시절에는 다소 P가 높아도 크게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사회에 나갈 나이가 되어서 규칙을 중요하게 여기는 근무환경에 놓였다면? P가 극단적으로 높아 충동적인 사람도 점차 사회에 적응하면서 J의 수치를 높여 나갈 것이다.
이처럼 E와 I를 제외하고는 환경에 의해서 성격유형들은 변화할 수 있다.
이걸 응용하면, 반대로 내가 큰 폭으로 성격유형이 바뀐 시기가 있다면 그때 어떤 환경적 영향을 받았었는지 되짚어보는 것이 도움이 될 수도 있다.
실제로 상담 장면에서 이렇게 역추적을 통해 그 사람의 트라우마를 발견하는 경우도 빈번하다.
강의를 하다 보면 '나는 ENFP니까 평생 ENFP로 살아야 하나 보다' 혹은 '나는 ENFP니까 저 유형의 친구랑 잘 맞아. 역시 그 친구랑 나랑 안 맞는 이유가 있었어.'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을 많이 발견한다.
제발 이렇게 착각 속에서 살지 말기를 바란다. 성격의 유사성은 잠깐이지만 서로 다른 성격의 보완성은 평생을 갈 수도 있다. 여러분의 성격 유형은 나를 돌아보는 용도로 사용하고 성격 유형의 노예가 되지 말아라.
MBTI에 대한 정말 깊이 있는 사고는 '저 사람의 성격 유형은 뭐뭐니까 이런 생각과 행동을 하겠지?'라고 예측을 하는 것이 아니라 왜 그 사람이 저런 성격유형들을 발달시킬 수밖에 없었는지 그 배경을 탐색하고 구체적으로 무엇을 해야 하는지 제시하는것이 수준 높은 해석이다.
오늘 다시 한번 본인의 성격유형 점수를 보면서 나의 생각과 행동에 대해서 탐색하고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을 가져보는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