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시작하기 전에 한 가지 전제를 이야기하고 싶다.
상담하는 방식에 있어서 지켜야 할 윤리와 정석은 존재하지만 정답은 없다. 다양한 전통 있는 상담이론과 기법들이 존재하지만 '어떤 이론을 사용하느냐'가 아니라 '어떤 치료자가 이론을 사용하는지'가 가장 중요하다.
나는 초등학교 교과 과정부터, 혹은 유치원 과정부터 대학기관까지 마음을 훈련하는 방법과 심리학에 대한 교육이 필수과정으로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과거보다는 자신의 마음이나 정신에 대해서 관심이 늘어났지만 여전히 우리는 육체적 건강에 비해 정신적 건강을 등한시하는 경향이 있다.
상담사 같은 전문적인 교육을 받지 않더라도 우리가 일상에서 감기 증상을 보일때 스스로 병원에 가거나 병원에 가보라고 지인에게 이야기해주는 것처럼, 나의 마음을 돌볼 수 있는 준비와 나아가 타인의 마음까지 돌볼 수 있는 기본적인 역량을 지녀야 할 필요가 있다.
'나'의 내면에 온전히 집중하고 돌아볼 수 있어야만 타인의 마음을 바라볼 수 있다. 하지만 우리는 정작 자신의 내면에 집중하지 않고 타인의 행동과 마음에서 부정적인 자신의 모습을 발견한다.
발견에서 끝나면 다행이지만, 어떤 사람들은 타인의 마음에 대해서 조언과 충고, 통제까지 하려든다. 이러한 생각과 대화는 반드시 관계의 단절이나 상처로 이어진다.
상담의 꽃은 질문이다. 그렇다면 어떤 질문을 해야 하는가? 치료자마다 다르겠지만 나는 이 말을 항상 강조한다.
"치료자의 질문은 항상 내담자가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것에 기반해야 한다"
'치료자의 말과 행동이 정말로 내담자를 위한 것인가?'를 스스로에게 물어보아야 한다. 치료자가 내담자에게 해야 하는 질문도 이와 비슷하다.
치료자가 상담 장면에서 어떠한 말과 행동을 하기전에 '내담자가 스스로를 돌아볼 수 있는가?'에 기준을 두면, 치료자의 한 마디, 한 마디에 무게가 실린다. 그리고 이러한 무게 있는 질문을 내담자는 예리하거나 정확하게 짚어준다라는 느낌을 받는다.
이런 과정을 통해 치료자는 내담자가 지니고 있는 마음의 상처를 여기 저기 건드리며 헤집는 것이 아니라, 정확하게 상처 부위를 짚어낼 수 있어야 한다.
여기까지는 다소 전문적인 치료자의 역량이고, 비전공자가 체계적인 교육없이 따라 하는 것은 쉽지 않다. 그래서 오늘은 치료자에게도 필수적이지만 비전공자도 일반적인 대화에서 사용할 수 있는 말하기의 팁을 공유하고자 한다.
가장 먼저 필요한 것은 '외부 자극' 과 '타인'에 대해서 평가하고 분석하지 않기로 결심하는 것이다.
여기서 '외부 자극'이라 함은 살아가면서 경험하는 느낌, 감정, 타인에 대한 생각 등의 모든 것을 이야기한다.
우리의 마음은 너무나도 간사하고 영악해서 외부 자극에 의해 떠오르는 어떠한 생각과 느낌을 모두 '진짜'라고 속삭인다.
우리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외부 자극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연습이다.
예고 없이 바람이 불기 시작하더니, 구름이 몰려들었다. 믿을 수 없었다. 비가 내리기 시작했는데, 처음에는 보슬비 수준이더니 곧이어 급작스런 호우로 변해 쏟아져 내렸다. 나는 셔츠를 집어 들고, 악담을 퍼부으며 갈아입었다. 소크라테스는 그저 웃기만 했다.
"이게 그렇게 재미있나요! " 내가 역정을 냈다.
"좀 있으면 모두 흠뻑 젖게 생겼고, 다음 버스는 한 시간이 있어야 올 거고, 그리고 음식도 엉망이 됐잖아요. 조이가 음식을 준비했는데, 조이는 이게 그렇게 재미있다고 생각하지는.." 조이도 웃고 있었다.
"나는 비 때문에 웃는게 아냐." 소크가 말했다.
"자네 때문에 웃는거야"
........ 중략
"자네가 실망하거나 화가 난 건 비 때문이 아니었어. 비는 있는 그대로의 자연의 모습을 완벽히 보여주었어.
엉망이 된 소풍 때문에 자네가 '기분이 나빠진 것'이나, 해가 다시 보여서 '기뻐한 것'이나 모두 자네 생각의 소산이야. 그건 현재의 일들과는 아무 상관이 없지.
결국 다른 사람이나 주변 환경이 아니라, 자네 마음이 자네 기분을 좌지우지한다는 걸 알 수 있지. 이게 첫 번째 교훈이라네."
나 역시도 끊임없이 마음을 훈련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평화로운 전사'의 댄처럼 투정을 부릴 때가 더 많다. 하지만 하나씩 외부 자극에 반응하는 것들이 줄어들면서 내 마음의 물결이 과거보다는 소란스럽지 않다는 것을 경험하고 있다. 우리에게 가장 먼저 필요한 작업은 외부 사건, 타인의 행동, 나의 생각, 감정, 마음 등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것이다.
화가 난다는 감정은 본능적인 것이다. 내가 강조하고 싶은 것은 '화를 내서는 안된다'가 아니라 화를 내고 난 뒤의 대처 방법이다. 분노 뒤에는 두려움이 자리 잡고 있다.
분노한 나의 감정을 한 발자국 떨어져 조용히 지켜보라. 그리고 나는 무엇이 정말 두려워서 화를 냈던 것인지 내면에 집중해 보라. 나의 내면에 집중하고 분노 뒤에 숨어 있던 두려움이 무엇인지 깨닫는 순간, 마치 환상처럼 분노는 사라져 버린다.
예를 들어, 대학생이 되어 매일 새벽이 되어 들어오는 딸이 있다. 엄마는 반복해서 늦게 귀가하는 딸 때문에 화가 나있다. 전화하면서 협박도 해보고, 화도 냈다. 딸도 자꾸만 귀가 시간에 간섭하는 엄마가 짜증 나고 잔소리를 들을 때마다 화가 난다. 보통 우리는 여기까지만 생각한다.
이제 우리는 표면적인 행동, 말, 감정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그 너머에 있는 상대의 마음, 혹은 나의 마음에 집중해야 한다.
엄마의 분노 뒤에 있는 두려움은 무엇이었을까?
그건 바로 늦게 들어오는 딸에 대한 걱정, 혹시라도 흉흉한 세상에 사고라도 당할 것 같은 두려움 등.. 개인마다 다른 두려움이 자리 잡고 있을 것이다.
이렇게 너머에 있는 마음을 바라보는 연습을 하면 상대의 말이나 행동에 대해서 일일이 반응하기보다는, 상대를 이해할 수 있는 수준으로 도약할 수 있다.
이 부분은 치료장면에서도 굉장히 중요하다. 내담자는 치료자의 질문에 따라서 이런저런 말들을 늘어놓을 것이다. 물론 치료자는 내담자의 모든 말을 주의 깊게 들어야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모든 말과 비언어적인 표현들의 뒤에 있는 본질이 무엇인지 궁금해해야 한다.
정말로 내담자 밑에 깔려있는 핵심 감정이 뭘까? 저 너머에 있는 마음이 무엇일까?
일반적인 대화에서도 적용할 수 있다. 다만 24시간 이런 생각을 가동하지는 말아라. 굉장히 피곤해질 것이다. 천천히 습관으로 만들어가면 된다.
친구가, 동료가, 상사가 당신에게 어떤 말을 할 때 그 뒤에 있는 마음을 보는 연습을 해라. 처음에는 잘 보이지 않고 어려울 수 있다. 하지만 조금씩 조금씩 연습하다 보면 어느 순간 노력하지 않아도 자동으로 상대 너머에 있는 마음이 들리기 시작한다.
그걸 캐치해서 상대에게 표현하거나 행동하는 것이다. 바로 이 순간. 상대는 이런 말을 한다.
"어떻게 그렇게 내 마음을 잘 알아?"
"센스 있다"
센스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을 우리는 마치 상대의 눈치를 잘보는 사람처럼 이야기 하곤 한다.
진정한 의미의 센스있는 사람이란 상대 너머에 있는 마음을 잡아내어 그것에 대해 말하고 행동하는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