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로나
사랑의 도시, 베로나. 그곳에서 로미오와 줄리엣의 열정적 사랑에 대한 사람들의 열광을 만나고 열정적 사랑에 자신의 인생을 건 마리아 칼라스도 만났다.
마리아 칼라스, 음악에 거의 문외한인 나도 알고 있는 오페라의 디바. 그녀는 한창 잘 나가던 당시 선박왕 오나시스와의 사랑에 모든 것을 걸고 남편을 떠나 오나시스와 동거를 했다. 둘 사이의 아이가 유산된 뒤로도 그녀는 오나시스와의 결혼을 꿈꾸며 미국 국적을 버리고 그리스 국적을 취득했으나, 어느 날 신문을 통해 오나시스와 재클린 케네디의 결혼 소식을 듣게 된다. 열정적 사랑을 위해 모든 것을 버렸던 그녀는 이후 재기에 성공하는 듯했으나 우울증에서 헤어나지 못했다고 한다.
베로나는 그녀의 이태리 데뷔 무대였고, 그녀가 처음 사람들의 주목을 받은 곳이며 , 남편 메네기스를 만난 곳이다. 베로나와 마리아 칼라스의 특별한 인연 때문에, 그녀 사후 40년을 기념하는 전시회가 열리고 있었다. 전시회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그녀의 노랫소리가 들렸다. 오페라 팬이 아닌지라 정확하게 어떤 공연 실황이었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그녀의 애조 섞인 힘찬 고음이 주는 전율만큼은 생생하게 남아있다. 전시는 그녀의 생애와 관련된 사진, 기념품들을 따라가면서 그녀의 음악과 함께 듣도록 구성되어 있었다. 그녀의 생애 자체가 워낙 드라마틱했던 지라 전시를 보고 나면 오페라 한 편을 감상한 듯한 느낌마저 들었다.
마리아 칼라스는 두 명의 남자를 사랑했다. 남편이었던 메네기니와 선박왕 오나시스. 남편은 27살이나 많았고, 매니저이면서 아버지 같은 사랑을 칼라스에게 주었다. 100kg에 육박하는 체구를 가져서 열등감을 가지고 있던 그녀가 다이어트를 하기로 마음먹었을 때, 메네기니는그녀를 옆에서 도왔다. 살을 뺀 후 그녀는 너무나 관능적이고 아름다워졌으며, 패션 아이콘으로 자리매김하며 더욱 명성을 얻었다. 그러다 만나게 된 젊은 부자 오나시스의 적극적인 구애에 그녀는 불같은 사랑에 자신을 던져버렸다.
칼라스의 사랑에서 운명적이고 열정적인 사랑을 꿈꾸던 무지했던 어린 시절 나를 보았다. 열정적 사랑을 꿈꾸며 구애를 수용 하자마나 모든 것을 바쳤던 그녀에게서 내가 범했던 수많은 어리석은 행동들을 본다. 그런 상황은 자존감이 낮을 때 쉽사리 발생하는 것 같다. 열등감에 눌려 살던 이들이 겪게 되는 이중의 아픔이랄까.
티브이 드라마나 영화를 보면 첫눈에 반하는 운명적이고 열정적인 사랑이 자주 나온다. 나도 어릴 적 그런 사랑을 꿈꾸었던 적이 있었다. 그런데 나의 사랑의 끝은 언제나 아픈 이별, 칼라스처럼 아픔만 남기고 말았었다. 첫눈에 반한다는 것은 상대를 그 자체로 보는 게 아니라 내가 바라는 모습을 상대에게서 찾았기 때문에 생기는 감정일 뿐이다. 나의 결여를 채우고자 하는 충족욕구에서 상대를 보기 때문에 자신이 만든 이미지를 통해 계속 상대를 맞추고자 한다. 그러니 관계가 파탄할 밖에. 로미오와 줄리엣이 만약 결혼했으면 이혼했을 거라는 사람들의 우스갯소리가 있지 않다. 어떤 이들은 여전히 그런 열정적 사랑의 낭만을 꿈꾸겠지만, 첫눈에 반한 열정적 사랑이 아름다운 결실을 맺는 경우는 현실에서는 흔치 않다. 그건 그냥 환상일 뿐이다.
열정적 사랑의 도시 베로나에서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열정적 사랑의 비극적 파국을 만났다. 나이가 먹은 탓인지, 그동안 부나비 같이 뛰어들었던 경험에 지친 탓인지, 이제는 열정적 사랑이 아닌 서로를 이해하고 알아가려고 노력하는 사랑이 아름답게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