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베테랑2'를 보고
9년만에 속편, 영화 ‘베테랑2’
2015년에 개봉한 ‘베테랑’은 베테랑 형사 서도철 (황정민 분)이 재벌 3세 범죄자를 잡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내용을 그렸다. 단순하고 명쾌한 이야기에 류승완표 액션이 더해져 당시 1300만 이상의 관객을 동원하며 큰 성공을 거두었다.
후속작인 ‘베테랑2’가 9년 만에 제작되어 관객을 만났다. 가족들도 못 챙기고 밤낮없이 범죄들과 싸우는 베테랑 형사 '서도철'과 강력범죄수사대 형사들. 어느 날, 한 교수의 죽음이 이전에 발생했던 살인 사건들과 연관성이 있는 것으로 밝혀지며 전국은 연쇄살인범으로 인해 떠들썩해진다. 이에 단서를 추적하며 수사를 시작한 형사들. 하지만 이들을 비웃기라도 하듯, 연쇄살인범은 다음 살인 대상을 지목하는 예고편을 인터넷에 공개하며 또 한 번 전 국민을 흔들어 놓는다. 강력범죄수사대는 서도철의 눈에 든 정의감 넘치는 막내 형사 '박선우' (정해인 분)를 투입한다. 그리고 사건은 새로운 방향으로 흐르게 된다.
영화속 베테랑 형사인 서도철 형사를 보며 조직내 베테랑 관리방안을 생각해 본다.
‘베테랑’이란 누구인가?
베테랑의 사전적 의미는 ‘어떤 분야에 오랫동안 종사하여 기술이 뛰어나거나 노련한 사람’이다. 의미상 숙련자, 전문가와 비슷하지만 ‘오랜 시간’을 들인다는 뜻이 조금 더 강하게 녹아 있다. 그렇기에 베테랑이라면 누구나 그만의 ‘노하우’를 가지고 있기 마련이다. 오랜 시간 경험을 통해 자연스럽게 터득한 방법이나 요령은 어디에도 없는 그만의 기술이다. 특히 기술이 필요한 곳에서는 이렇게 도제식(徒弟式) 교육이 이뤄졌다.
베테랑의 노하우에는 시간뿐만 아니라 그의 감(感)이 녹아 있다. 같은 기술을 배워도 기술자에 따라 결과물이 달라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도제식 교육 하면 ‘무형문화재’ 같은 ‘장인’이나 숙련된 기술이 필요한 기술자가 먼저 떠오르지만, 사실 많은 영역에서 도제식 전수가 이뤄진다.
D램 반도체를 겹겹이 쌓아 올린 HBM 처럼, 시간과 노력을 한층한층 쌓아올린 직무 베테랑의 노하우를 관리하려는 조직의 노력은 지속되고 있다.
‘직무 베테랑’ 관리를 위한 ‘직무전문가’ 제도
LG화학이 최고 현장 기술자를 인증하는 ‘LG화학 명장’ 제도를 신설했다. 현장 전문가 육성 제도를 통해 공장 내 전문성을 갖춘 우수 인재를 ‘LG화학 전문가’ 선발하고 그들 중에서 해당 사업장 최고 기술자는 ‘LG화학 명장’으로 위촉하는 방식이다.
이 제도는 기술과 경험을 갖춘 전문가를 독려하고, MZ세대 현장 인력에게 성장 동기를 부여하려는 취지이다. 선발된 명장은 사업장 내 명예의 전당에 등재되며 포상금 및 진급/직책 선임 우대 등 다양한 혜택을 받는다. 올해는 제도 시행 첫 해인만큼 LG화학 명장과 LG화학 전문가를 별도로 선발했다.
선발은 ▲사내 추천 ▲전문위원 및 교수진으로 구성된 외부 전문가 심사 ▲상사, 동료 등 리더십 다면 평가 ▲경영진 인터뷰 등의 엄격한 심사를 거친다.
LG화학 명장은 향후 공장 설비 및 공정 개선 활동을 위한 기술 자문 역할을 맡는다. 직무 전문 교육과 멘토링 활동 등을 통해 후배 양성 역할도 맡게 된다.
LG이노텍 역시 임직원 ‘전문가(Expert) 제도’를 신설했다. 전문가 제도는 회사의 지속 성장과 미래 사업 역량 강화를 위해 임직원에게 성장 동기를 부여하고 핵심 직무 전문가로 육성하는 제도다.
책임과 연구·전문위원 사이에 전문가 단계를 새롭게 추가했다. 연구개발(R&D)과 기술직 위주로 운영되던 전문가 커리어 트랙을 영업·마케팅, 상품기획, 품질, 재경, 법무 등 일반사무직무로 확대했다.
기존 커리어 트랙은 책임에서 연구·전문위원 선임까지 시간이 오래 걸리고 선발 규모도 작았다. 이에 임직원들이 스스로 동기 부여할 계기를 마련하고 체계적이고 지속적인 성장을 도우려는 취지에서 커리어 트랙을 세분화했다.
전문가로 선정된 임직원에게는 공식 인증패, 전문가 자격 수당, 사외 교육 프로그램 우선 참여 기회, 전문 커리어 코칭 등 다양한 혜택을 제공한다.
‘직무 베테랑’의 노하우 활용을 위한 잡포스팅 제도
잡포스팅은 직원을 대상으로 이뤄지는 내부 채용공고다. 삼성은 각 사업부의 인력 수요 등에 따라 수시로 잡포스팅을 시행하고 있다. 최근 삼성전자를 시작으로 삼성전기 등 삼성 그룹 계열사에서 잡포스팅이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삼성전자는 ‘23년 TV·가전·스마트폰 등 세트 사업을 담당하는 디바이스경험 부문에서 처음으로 베테랑 잡포스팅을 했다. 삼성전자 반도체(DS)부문에선 신입사원부터 차·부장급까지 범위를 넓혀 고대역폭메모리 사업부로 직무 전환을 실시했다.
삼성디스플레이는 차·부장급 직원을 대상으로 직무를 전환하는 ‘베테랑 잡포스팅’을 실시했다. 그동안 잡포스팅 제도를 운영해 왔지만 ‘시니어급’을 대상으로 한 베테랑 잡포스팅을 시행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삼성전자에서 실시한 이 제도가 사내에서 호응을 얻으며 자회사 삼성디스플레이까지 실시하는 것이다.
서류전형과 면접전형을 거친 뒤 조만간 최종합격자를 발표한다. 합격자들은 중소형사업부 전체, 생산기술연구원, 품질, 연구소 내 신설 조직 등 지원한 부서로 직무·부서를 변경한다.
회사는 능숙한 내부 인력의 순환으로 업무 노하우를 다양한 곳에 활용하겠다는 방침이다. 아울러 장기근속으로 나타날 수 있는 업무 피로감을 방지하고자 새로운 도전의 기회를 제공하겠다는 복안이다.
성공적인 직무전문가 정착방안
최근 다수의 회사에서 ‘직무전문가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하지만 초기 의욕적인 제도도입과 달리 최고경영자 교체에 따른 인사전략 조정, 타 직무수행자와의 갈등 등으로 시간이 지나 유명무실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직무전문가 제도를 성공적으로 운영하기 위한 방안은 무엇일까?
첫째는 대상직무 선정이다. 회사의 핵심 사업영역으로 직무 수행을 위해 높은 수준의 역량과 경험이 필요한 직무이다. 경력직 채용이 용이하지 않고 내부양성에 오랜 시간이 소요되는 직무를 대상으로 해야 한다.
둘째, 대상인력 선정이다. 인사부서에서 사람이 아닌 직무를 기준으로 구체적이고 높은 수준의 가이드라인을 정해야 한다. 교수 등 외부전문가의 검증과정도 필요하다. 사업부문에서 대상인력 추천하는 과정에서 인사부서와 타협이 진행된다면 제도의 공정성을 약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최종 결정은 CEO가 주관하는 인사위원회를 통해 결정해야 한다.
셋째, 대상자 관리방안이다. 금전적 보상과 더불어 도전적인 업무를 부여하며 결과를 관리해야 한다. 직무노하우 전수가 직무전문가 제도 도입의 궁극적인 목적이므로 직무전무가의 직무노하우를 적극적으로 전수하고 있는지 여부에 대한 주기적인 모니터링이 필요하다. 조직의 긍정적인 긴장감을 불어넣기 위해 직무전문가의 전문성에 대한 주기적인 심사를 진행하고 이를 통해 직무전문가 인력 Pool을 업데이트 해야 한다.
베테랑 노하우의 디지털화
2016년 다보스포럼 ‘일자리의 미래’ 보고서에서는 “2020년까지 4차 산업혁명으로 일자리가 약 710만 개 사라지고, 200만 개의 일자리가 새롭게 만들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사라지는 영역의 베테랑은 더 이상 ‘경험’을 축적할 수 없기에 도태될 것이고, 새롭게 생긴 일자리에서는 시간이 흐르면 또 다른 모습의 베테랑이 등장할 것이다. 베테랑의 노하우를 적극적으로 전수해야 하는 이유이다.
세월이 흘러 다양한 직종, 여러 분야의 베테랑이 사라지고 있다. 하지만, 그들의 노하우는 무형의 가치로 남아 디지털과 융합해 또 다른 부가가치를 만들어낸다.
현대건설은 현장 베테랑의 지식과 노하우를 디지털화하고 있다. 특히 안전·품질 분야는 스마트화시스템 구축에 우선 대상이다. 초기에는 노하우의 디지털화로 존재감이 사라질까 불안해하던 중장년 베테랑도 스마트 기술에 적응하며 새로운 변화를 따라가고 있다.
포스코 역시 베테랑의 경험을 디지털화하고 있다. 베테랑 머릿속 주관적 데이터를 객관적 데이터로 바꾸어 ‘스마트 고로’를 만들고 AI가 학습하는 시스템을 갖추었다. 사람이 아닌 AI가 베테랑의 노하우를 배우는 셈이다.
베테랑 노하우 연결 플랫폼 등장
디지털 플랫폼을 통해 자신의 노하우를 이어가는 베테랑과 그들을 찾는 사람을 연결해주는 플랫폼이 등장했다.
‘숨은 고수’는 뜻의 ‘숨고’에서는 900여 분야의 매칭 서비스를 제공한다. ‘반려견 산책’, ‘주례’, ‘게임 레슨’ 등 소소한 영역까지 포함된다. 베테랑 전업주부의 노하우를 살려 ‘정리수납 고수’로 활동하거나, 기업에서 인사관리와 교육 일을 했던 경력을 바탕으로 ‘취업 컨설팅 고수’가 되기도 한다.
‘탤런트뱅크’는 전문 인력 상시 고용이 어려운 중소·중견기업에 고도의 비즈니스 문제가 닥쳤을 때,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전문가를 프로젝트별로 연결한다. 현장에서 은퇴한 베테랑이 전문가로 투입된다.
‘클래스101’은 중장년 베테랑의 노하우를 교육과 강의 형식으로 전한다. 음악·미술·운동 등 취미 관련 강의부터 부업·재테크 노하우, 업무 능력 향상 등 일 잘하는 방법, 인문·사회·예술을 비롯한 교양 강의까지 다양한 분야를 다룬다.
베테랑의 노하우는 사라지지 않는다.
어떤 분야의 전문가가 되기 위해서는 최소한 1만 시간 정도의 훈련이 필요하다는 법칙이 있다. 1만 시간은 매일 3시간씩 투자하면 약 10년, 하루 10시간씩이면 약 3년 정도 걸린다. 반드시 '1만 시간'이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엇갈릴 수 있겠지만, 상당한 시간과 노력이 투입되어야 비로소 한 분야에 정통하게 된다는 점은 대부분 동의할 것이다.
‘시간이 빚은 베테랑’의 노하우는 인류의 발전을 위해 전수되어야 한다. 조직에서 ‘베테랑’이라고 불리는 이들의 손과 발, 머리와 가슴에 쌓인 노하우를 전수받는 노력은 제4차 산업혁명 시대에도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