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김대식 교수님의 2026 AI 대예측 강의를 들었다.
강의를 듣는 내내 한 문장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초등학생들, 커서 할 일이 없습니다.”
그 말이 농담처럼 들리지 않았다.
인공지능이 가능해진 이후 가장 먼저 흔들리는 건 신입 채용 구조다.
대학교를 졸업한 사람들이 경력을 쌓기 위해 들어가던
그 ‘첫 번째 문’이 닫히고 있다.
AI가 신입사원이 하는정도의 일은 대체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지금 졸업하는 세대는 그래도 아직 어떻게든 일자리가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 초등학생들은?
노동시장에 들어가기까지 앞으로 10년, 길게는 20년이 남아 있다.
그 사이 AGI, 인간처럼 전반적인 지적 능력을 가진 인공지능이
등장하지 않는다고 장담할 수 있을까.
만약 인간의 대부분 능력을 AGI가 대체하게 된다면,
이 아이들은 ‘일자리가 없는 문제’가 아니라
경력을 쌓을 기회조차 없는 상태에 직면할지도 모른다.
AI와 로봇의 시대는 유토피아일까, 디스토피아일까.
영상을 찾아보면 의견은 완전히 갈린다.
누군가는
“기본소득으로 모두가 편하게 사는 세상”을 말하고,
누군가는
“인간의 노동 가치가 사라진 사회”를 말한다.
아무도 가보지 않은 길이기에 모두가 추측일 뿐이다.
그래서 나는 결론을 하나로 정하지 않기로 했다.
“두 가지 버전의 세상에 모두 적응할 수 있는 아이로 키우자.”
로봇이 일을 하고 인간은 노동으로 돈을 벌 수 없는 사회.
기본소득으로 연명하는 구조.
그 안에서 자본을 이해하지 못하면 그저 ‘구경꾼’이 된다.
시스템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르면 결정권은 언제나 남에게 있다.
그래서 나는 아이와 경제와 투자를 피하지 않고 이야기한다.
돈은 욕심의 도구가 아니라 선택권의 도구라는 걸 알려주고 싶다.
돈을 이해하는 사람은 최소한 시스템 바깥으로 밀려나지 않는다.
그렇다면 모두가 풍요로운 세상은 괜찮을까.
나는 오히려 그게 더 무서울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사회.
노동이 필요 없고,
생존 걱정이 없는 세상.
겉보기엔 완벽하지만 목적 없는 인간은
생각보다 쉽게 무너진다.
풍요는 의미를 대신해주지 못한다.
그래서 나는 아이에게 단 하나를 더 묻고 싶다.
“너는 무엇을 위해 살고 싶니?”
가정적인 남편이 되겠다고 말하는 아이.
돈을 많이 벌어 기부왕이 되겠다고 말하는 아이.
사람들을 행복하게 하는 음악을 만들겠다고 말하는 아이.
아이들에게 종이접기를 알려주는 유튜버가 되겠다고 말하는 아이.
그 어떤 목적이든 자신과 타인을 향한 사랑에서 출발하길 바란다.
그 목적이 스스로를 움직이게 하고,
AI에 직업을 빼앗기는 사람이 아니라 AI를 활용해
자신의 목적을 이루는 사람이 되기를.
나는 그저 그렇게 자라주길 진심으로 바라본다.
<출처> 아만보, 2026 AI 대예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