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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씨리Rhee Nov 02. 2023

울지 마 아가

아이들이 어려서 새벽 미사조차 마음 놓고 다닐 수 없었다. 하루는 새벽미사를 보고 왔더니, 두 딸 아이가 집을 비운 엄마를 돌려 달라고 성모상을 앞에 모셔 놓고 5단 묵주를 손목에 올려 두고는 기도손을 한채 단정히 두 무릎을 꿇고 있었다. 그 모습을보자 아이들이 사랑스럽기도 했지만, 아이들 마음에 있을 엄마에 대한 그리움이 마음 한켠에서 짠함으로 올라와서 내 마음대로 집을 비우기가 어려워지게 됐다.


항상 아이들을 마음 안에 품은채, 아침마다 울고불고 매달리는 아이들을 비정하게 뿌리치고 출근길을 서둘렀다. 여전사처럼 아파트 현관문을 나서며 코트깃을 여미며 엘레베이터를 탔다. 지하철로 향하는 마을버스에 몸을 실으면, 추운 겨울 새벽에는 동이 터올 무렵이라 바알갛게 하늘이 물들곤 했는데 비장한 나의 마음을 대변해주는 듯하여, 눈가도 촉촉해지곤하였다. 마음이 쓰리도록 아팠지만 난 출근을 택했다.


유치원 종일 반에 아이들을 맡겨 두고, 저녁에 찾으러 가면 항상 우리 아이들만 유치원에 선생님과 유치원 지킴이를 하고 있었다. 하원을 도와 바깥으로 나오면 바로 놀이터였는데, 미리 하원하여 삼삼오오 놀던 아이들은 실컷 놀고 집으로 돌아가는 타이밍이었다. 나도 질세라 놀이터에서 아이들을 놀리고자 놀이터 벤치에 앉아 아이들을 항상 놀리곤 했다. 그런데 체력이 약했던 나는 항상 저혈당 증세로 몸에 후달리곤 했다. 그날 저녁 또한, 9시가 다되어서야 놀이터에서 못 떠나는 아이들을 달래어서 집으로 데려왔다. 아이들 저녁을 챙겨주고 나니, 나 자신은 만사가 귀찮았다. 그래서 나는 그냥 나를 위해서 라면을 끓였는데, 아이들이 그 라면을 너무 먹고 싶어했다. ‘나는 라면 하나도 마음대로 못 먹나?’싶은 생각에 화가 머리 끝까지 나서 라면 냄비를 들고 방에 들어가서 방문을 잠궈버렸는데, 아이들이 문밖에서 흐느끼며 “엄마! 엄마! 잘못했어요!!“ 방문을 쿵쿵 두드려댔다. 대체 아이들이 뭘 잘못했단 말인가? 나는 도대체 왜 놀이터에서 아이들을 놀라고 해놓고 체력은 스스로 챙기지 못한채 라면 하나를 먹겠다고 아이들을 울리고 있는가? 나는 그만 걸어잠근 방문 뒤에서 라면 냄비를 앞에 두고 눈물을 하염없이 흘렸다.


아이들과의 시간 대신 선택한 사무실이었다.비장했던 출근길이었기에 사무실에서도 여전사이고 싶었다. 그러나 고갈된 체력은 집중력을 방해했고, 새벽에 귓가에 잡힌 아이들 울음 소리는 근무시간 내내 머릿속을 맴돌았다. 한참 능력을 발휘해야 할 허리급 중간 관리자였다. 나에게 요구 되는 능력과 기대치를 나는 못 채우고 있었다.


10년차 직장생활 처음으로 독일로 출장을 가게 됐다. 외국으로 출장이 잡혔다는 이유 하나로 부모님께 효도 하는 것 같은 뿌듯한 마음에 친정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아이들을 좀 집에 오셔서 봐달라고 하였다. 독일로 떠나는 비행기 안에서는 와인을 따라 마시며, 무료로 상영되는 비디오들을 모두 섭렵하며 시간을 만끽하며 즐거워했다. 그러나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함부르그로 비행기를 한번 갈아타야했는데, 대단한 폭설로 비행기가 결항이었다. 독일 지점장님은 나보고 프랑크푸르트 시내로 나가서 호텔을 잡아서 1박을 하고 그 다음날에 다시 비행기를 타고 건너오라고 하는데, 첫 출장 길이라 그럴 용기는 없었다. 공항에서 대체 무료 기차편을 제공해주는 것을 알아냈다. 비행기로 1시간이면 갈 거리를, 예정됀 역에서 못 내릴까싶어서 기차 편으로 7시간을 뜬 눈으로 지새며 목적지로 건너갔다. 첫 출장이고, 함께 간 선배가 없어서 나는 우왕좌왕했다. 준비해간 프레젠테이션 마저 로칼직원들에게 어떻게 전달을 해야할지 모르겠어서, 엄청 버벅거렸다. 출장지에서 저녁 자리에서도 편안히 섞이지 못했고, 어떻게 처신을 해야할지 몰랐다. 몸이 피곤하다며 서둘러서 호텔로 돌아와 버리고 그렇게 날을 보냈다. 들뜬 마음으로 출발했던 나의 출장은 참담한 패잔병이 되어 간신히 서울로 돌아왔다. 그렇게 돌아온 집에서는 나만 오매불망 기다리는 두 딸아이들이 있었다. 큰 아이는 나를 보자마자 나에게 달려들며,  "엄마 너무 보고 싶었어. 엄마 옷 장 사이에 들어가면 엄마 냄새가 나서, 엄마 옷 사이에 얼굴을 파묻고 엉엉 울었어. 엄마 왜 이렇게 늦게 왔어?" 나를 이렇게 원하는 두 딸아이들을 두고 나는 대체 집을 비우고 무엇을 하고 돌아온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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