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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씨리Rhee Oct 26. 2023

옷 사주는 외할머니

방학 때면, 엄마는 나와 남동생을 데리고 외할머니 댁을 방문했다. 외할머니네는 제법 큰 여관을 경영하셨는데, 그 시절 7층 정도 되었던 건물이었고 엘리베이터가 없었다. 지하와 1층은 목욕탕이었고, 2층부터는 모두 손님들이 묵는 여관이었다. 그리고 맨 꼭대기에는 할머니와 큰삼촌 내외가 살고 계셨다. 할머니댁에 도착하여 힘겹게 겨우 7층 꼭대기까지 다다르면, 마당에 놓인 장독대에서 풍기는 장냄새가 가장 먼저 날 반기었다. 장독대 사이사이 심기어진 맨드라미와 그리고 내 손톱을 물들이던 봉숭아는 나의 눈을 즐겁게 하였다. 할머니댁에 들어서면, 항상 빠글 머리 쇼트커트에 퉁퉁하신 외할머니는 맨발로 뛰어나와 내 손을 잡으시고는 "내 강아지 왔는가?" 하셨다. 키가 크시고 옷매무새가 단정하셨던 외할아버지는 흔들의자에 가만히 앉으셔서 목소리조차 내지 않으시고, 빙그레 미소만 지으셨다.


나에겐 큰삼촌 아래에 작은 삼촌도 계셨고, 작은 삼촌 내외는 분가하여 따로 떨어져 살았다. 큰삼촌 딸은 나와 동갑이었고, 작은 삼촌의 딸은 나보다 한 살 언니, 아들은 내 남동생과 동갑이었다. 모두 또래였던 우리들을 심성이 고왔던 작은 외숙모는 이부자리를 내어주고, 밥도 정성껏 해서 먹이곤 했다. 나는 여름 방학 이틀이면 그들의 사투리를 마스터하였고, 그들이 하는 공기놀이를 곧잘 흉내 내곤 했다. 우리 다섯 사촌지간들은 우르르 몰려다니며 외할머니 여관 빌딩을 섭렵하며 놀았다. 지하 목욕탕에는 냉탕이 있어서 마치 워터파크에 온 듯 물을 사방에 튀기며 물장난을 했고, 여관 이불을 모아 둔 이불 방 안에 들어가서는 숨바꼭질 삼매경에 빠져들었다. 여자 형제가 없던 나에게는 또래 사촌들과 함께 잠을 자는 게 너무나 좋았는데, 자는 사이에 감쪽 같이 사라진 손가락 끝에 매달아 둔 봉숭아 봉지를 함께 찾으며 깔깔거리곤 했다. 초경을 함께 치렀던 그 해 여름 방학에는, 학교에서 생리대를 어떻게 남학생들 눈에 띄지 않게 화장실로 가져갔는지에 대한 성공일화를 서로 나누기에 분주했다. 함께 텔레비전을 보다가, 보기만 해도 속이 시원해지는 탄산음료 광고에 눈 길이 사로잡힌 나머지 1층 목욕탕을 지키고 계시는 외할머니에게 달려가 음료수를 사달라고 함께 떼를 쓰기도 했다.


서울 집에 돌아갈 날이 가까워져 오면, 할머니네 집을 떠나는 게 그렇게 아쉽지만은 않았다. 왜냐하면, 할머니는 꼭 나와 남동생을 시장에 있는 유명메이커 옷 가게에 데려가서 예쁜 옷들을 사주었기 때문이었다. 나중에 엄마에게 듣자 하니, 엄마도 대학교 시절 방학에 서울로 올라올 때면 할머니가 꼭 양장점에 들러서 옷을 맞춰 주셨다고 했다. 초등학교 5학년 더운 여름방학이 끝나갈 무렵이었다. 할머니는 어여쁜 분홍투피스 치마를 사주셨다. 우산모양의 로고가 왼쪽 가슴에 박혀있었다. 꽃밭에 나비가 나풀나풀 날아다니는 무늬가 아래위 풍성하게 수 놓인 옷이었고, 초등학생에겐 기장이 좀 길어 보이는 듯한 치마였다. 서울로 돌아와 아직은 몸에 익지 않은 긴치마를 입고 어색하게 어정어정, 더운 여름 뜨거운 뙤약볕 아래 운동장을 가로질러 등교를 하였다. 치마에 수 놓인 꽃 밭에 나비가 날아디는 것만 같아, 꽃과 나비 무늬에 정신이 팔려 걸어가고 있는데, 뭔가 아랫도리가 느낌이 이상했다. 생리가 터진 것이었다. 새 옷인데, 게다가 엷은 분홍치마인데, 그날은 하교할 때까지 휴지를 둘둘 말아 대강 해치우고, 앉지도 서지도 못한 채 나의 분홍치마에 하루를 내주고 말았다.


"내 강아지. 아이고 내 강아지." 이가 안 좋아서 틀니를 하셨던 할머니는 항상 함박웃음을 지으며 내 손을 꼭 잡고 무릎을 꿇어 내 얼굴을 가만히 올려다보시곤 했다. 엘리베이터도 없는 빌딩을 하루에도 수차례씩 오르내리며 장사하시느라 바쁘기만 해서 무릎도 안 좋았던 할머니는 마음이 정말 넓으셨다. 큰삼촌과 작은삼촌은 담배를 뻑뻑 피우고, 큰 외숙모 작은 외숙모 그리고 우리 엄마까지 합세해서 아무리 하루 종일을 화투를 치고 놀아도 할머니는 한 말씀을 안 하시고 재미있게 놀라고 간식을 챙겨주시던 분이었다. 우리 외할머니는 막내였던 엄마가 병석에 뛰어가기까지 눈을 감지 않으시고 기다리셨다고 했다. 그리고 엄마가 뛰어가자, "너를 봤으니 이제 되었다."하시고 눈을 감으셨다고, 엄마는 얼마 전 내게 이야기를 하며 목이 메어하셨다. 우리 엄마 엄청 똑순이로 살림 잘하고 나와 남동생 잘 키워낸 철인 같은 여성인데, 왜 애달파 눈을 못 감으셨을까. 엄마에겐 자식들이란 모두 처음 만났을 그때 그 순간의 아이의 모습인가? 장성한 딸들이 있는 나도 우리 엄마에겐 아이 같을까? 그런 것 같다. 아직도 나에게 아침 저녁 잔소리 삼매경인걸 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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