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반 남자아이가 머리를 가까스로 내밀며 우리 집 부자라고 알려주던 그 담장 높은 주택을 다음으로, 우리 집은 다세대 주택에 세 들어 살게 되었다. 3층 단독 주택이었는데, 주인집은 2층이었고, 우리 집은 1층이었다. 동네는 항상 땅을 뚫어서 하수도 공사를 하기 일쑤였고, 우리 집 건너 주택은 미싱공장이었는지 아침저녁 미싱 돌아가는 소리로 언제나 시끄러웠다. 학교를 마치고 돌아오면, 엄마는 닭튀김을 해 놓고 나를 기다리시곤 했는데, 엄마가 만들어준 고소한 닭튀김이나 혹은 오징어 튀김 등을 먹고 나면 숙제를 해야 했다. 숙제를 혼자 방 안에서 덩그러니 앉아서 하기란 너무나 지난했는데, 바깥에서 나는 공사장의 소리는 정말이지 내 귀가 터져나갈 것만 같았다. 시끄러운 동네여서 그랬는지, 우리 엄마의 마음도 언제나 시끄러웠다. 그 집에서 나는 초등학교 4학년~5학년을 보냈는데, 2차 성징기도 나타나고 그때부터 사춘기를 심하게 앓았다. 엄마의 시끄러운 마음과 나의 사춘기 마음이 만나, 우리 집은 언제나 전쟁터 같았다. 엄마는 내가 착실하게 공부를 잘해주길 너무 바라마지 않았다. 제일 무서운 건 학습지였다. 엄마는 학습지를 시켜주었는데, 그것들은 쌓여가기만 했지 나는 그것들을 거들떠도 보지 않았다. 그런데, 엄마가 마음을 잡순 날은 그 학습지를 몽땅 검사를 하셨는데, 그날은 아주 단단히 혼이 나는 날이었다. 기습 검사를 받게 된 나는 대들기만 하였고, 그런 나를 엄마는 매우 어려워만 하고 힘들어만 하셨던 것 같다.
그날도 밀린 학습지로 엄마에게 혼이 된통 나고 훌쩍이며 잠이 들었는데, 아빠가 매우 늦게 귀가를 하셨나 보다. 잠결에 들려오는 엄마의 이야기에 아빠가 술을 밤새 잡숫고 눈이 내리는 바깥 담벼락에서 잠이 깜빡 들었다가 새벽이 되어서야 들어오셨다는 걸 알게 됐다. 엄마는 중얼거리며 말씀하셨다. "당신이 이렇게 관심이 없으니, 애들이 공부를 열심히 안 하죠." 유일하게 엄마를 미소 짓게 할 수 있는 건 백점 맞는 시험지뿐이었다. 나는 엄마를 행복하게 해주고 싶었다. 4학년 2학기 말 시험이었던 것 같다. 엄마가 시장을 보고 돌아와서 엄마 손에 들린 콩나물이었던지가 들린 봉지를 건네받고, "엄마 나 시험지.." 하며 내밀었는데, 찬 바깥이 기운이 나는 파란 패딩을 벗지도 않은 채 분홍 립스틱을 바른 엄마의 입꼬리는 양쪽으로 슬며시 올라가며 미소를 지어 내게 보였다. 아마도 내가 흡족한 점수를 받았고, 그로 인해 엄마는 기분이 좋아지신 것만 같았다. 앞으로도 나는 공부를 참으로 잘해서 엄마를 기쁘게만 하고 싶었다.
아빠는 언제나 술로 귀가가 늦으셨고, 저녁에 지겨운 공부를 안 하고 엄마에게 마음에 들 수 있는 방법은 바로집안일을 돕는 것이었다. 엄마가 김장을 한다며 배추를 잔뜩 사다 놓고, 소금을 절이기 시작하셨다. 나는 기회는 이때다 싶어서, 지겨운 책상을 벗어나서 신이 나서 엄마의 김장을 도왔다. 그다음 날 아침 잠결에 또 들려오는 엄마의 목소리는 "딸내미 너무 착해. 김장을 얼마나 잘 돕는지." 나는 잠결에 하늘을 날듯이 기뻐서 마음이 뿌듯해왔다. '아 나는 엄마의 사랑을 받는 딸이야.' 지겨운 공부보다는 몸을 움직이는 집안일이 훨씬 재미있었던 나였다. 그러나, 엄마는 공인중개사 준비라는 크나큰 과제로 저녁 늦게까지 나의 공부방 뒷자리를 점령하고는 나의 공부하는 모습을 지켜보셨다. 엄마의 공인중개사 준비 시작으로 나는 지겨운 책상 앉아 있기 놀이는 끝나지 않았다. 엄마가 공인중개사 시험을 보는 당일에 나는 아빠와 무동력 비행기를 날리러 한강 고수부지를 찾았다. 비행기는 잘 날았지만, 엄마는 시험에서 떨어졌다. 아마도 엄마는 넘치는 혈기와 똑똑한 머리로 바깥에서 일을 하고 싶으셨던 것 같았다.
엄마는 공인중개사에 떨어진 그 에너지를 다시금 나의 성적 올리기에 쏟기로 결심을 하신 듯 보였다. 그때 당시 유행했던 암기법 비디오 구매를 예약하셨던 저녁이었다. 엄마는 설레는 목소리로, 된장찌개를 끓이며 나지막이, "이제, 그 비디오만 보면 너희는 공부를 잘하게 될 거야."라고 속삭이듯 말씀하셨다. 나는 동생과 나란히 앉아 암기법 비디오를 시청하였다. 무슨 그림 한 장을 펼쳐놓고, 연상을 활용해서 어떻게 잘 외우느냐에 대한 강의 법 비슷한 것이었는데, 당시 나는 당분간 암기법을 활용하여 뭐든 암기하려고 노력을 했던 것 같다. 엄마는 나의 공부방법을 돕는데 열심히셨다. 당시에는 문제은행이라는 문제집을 일정한 날에 한정 판매를 하였는데, 새벽에 그 출판사 앞으로 가서 줄을 서서 번호표를 받아 사 와야 하는 문제집 셑트였다. 열혈이었던 엄마는 해당 문제집 셑트 구매에 성공을 하였고, 나는 또 그 지겨운 문제집을 다 풀어야 하는 처지에 놓이게 되었다. 따사로운 햇살이 내리쬐는 주말이었고, 허허허 웃음이 많은 아빠가 거실을 지키고 계셨다. 나는 아빠와 너무 놀고 싶었고, 몰래 문제집 해답을 몽땅 베껴서 나는 그날의 분량을 아주 빨리 마쳤다. 그런 영문도 모른 채 아빠는 나를 칭찬을 했다. "허허허, 역시 딸내미는 행동도 빠르고, 공부도 벌써 끝냈구나!" 바보 아빠였다. 요즘 말로 딸바보였다. 새벽에 줄을 서서 문제집을 사 온 엄마의 노력은, 딸바보 아빠의 웃음에 그냥 묻혀버리고 말았다. 나를 공부시키고 싶어 하는 엄마로부터 벗어나서 딸바보 아빠와 놀고만 싶었던 철없던 십 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