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과 어느 주말 오후 집 앞 공원으로 산책을 나갔다. 나는 걷는 시간이 그렇게나 좋다. 그리고 동행하는 사람과 수다떨기를 가장 사랑한다. 한강초입을 들어서고 유람선 타는 승강장 앞까지 왔을까? 날씨가 금방이나 푹 젖은 이불을 짜내기라도 할 듯 어두컴컴 폭우가 쏟아질 것 같이 험상 궂어졌다. 그런데, 우리 부부 앞에 낯선 젊은 남녀가 막아서며, 방송국에서 취재 나왔다며, 배구선수 “김연경”에 대한 인터뷰를 하자고 청해온다. 나는 손사레를 치며 절레 절레 고개를 흔들고 멀찌감치 도망가기 바쁜데, 나서길 좋아하는 남편은 얼굴에 화색이 만연한다. 멀찌감치 바라보고 있자니, 남편이 카메라 앞에서, 참으로 오버스럽게 웃는 얼굴을 하고 화려한 제스쳐를 취하며 인터뷰 한다. 웃음이 나오는걸 간신히 참는다. 인터뷰를 한 것도 모잘라, 그 젊은 남녀와 사진을 찍어달라며 나를 또 부른다. 사진은 찍어주자 싶어 가까이 다가가 섬세하게 가로로 한 장. 세로로 한 장 찍어준다. 나 정말 마음씨가 너무 넓어진 것 같다. 사진을 찍어주기가 무섭게 비가 쏟아지기 시작한다. 이럴 줄 알았다. 가까운 곳으로 비를 피한다. 비를 피하며 호젓하게 비를 바라보며 상념에 젖어 볼까 하는데, 남편은 자신의 SNS를 들이밀며, SNS에 인터뷰한 기념사진과, 자신의 소감문인지를 남기고는 나에게 첨삭을 해 달라고 한다. "아까 사진을 가로, 세로로 두 번이나 찍어줬잖아! SNS 첨삭은 안할래!"
남편은 셀카 찍기를 즐겨한다. 내일 모레이면 쉰인데, 아마도 지나가는 이 청춘이 너무 안타까워 사진 안에 가둬 놓고 싶은게 아닌가? 하는 이해심 아닌 이해심이 나도 마흔 넘어 내일 모레 다섯이 되가려니 좀 생기려고 하는 것같다. 하루는 남편에게 단 둘이 있으면 이야기도 나누고 커피도 마시고 좀 서로에게 집중하는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다고 이야길 던졌다. 이를 실천하듯 남편은 나와 산책을 나올때는 꼭 핸드폰을 두고 나온다. 나를 존중하는 제스처를 취하는데, 덕분에 핸드폰을 갖고 나온 내가 커피값은 꼭 계산한다. 아마도 커피값을 아끼려는 계략임에 분명하다.
자신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는 것을 너무나 중요하게 생각하는 남편을 존중해주려고 나도 노력한다. 화만 내는 와이프가 아님을 독자분께서는 알아주셨으면 좋겠다. 얼마나 내가 존중을 해주느냐면, 추운 겨울인데 태권도 도복을 입고 한강변에서 촬영을 하고 싶다고 한걸 내가 따라나가서 흔쾌히 찍사 노릇도 해줬다. (정말 고등학생 아들도 아니고!) 고등학교때 까지 태권도 4단을 딴 그에게는 도장을 운영하는 친구가 있었고, 그 친구가 최근에 남편에게 새 도복과 검정색 띠를 선물해주었다고 했다. 그는 내친김에 도복을 입고 사진을 찍어야 한다고 성화였다. 추운 겨울 한강 고수부지에는 살을 에이는 만큼 바람이 분다. 이런 바람에도 마다하지 않고, 나는 롱패딩, 장갑, 목도리를 둘둘 두르고 그를 쫓아 다녔다. 남편은 여러 공격기술을 보여줬다. 지르기, 찌르기, 치기, 찍기, 꺾기 등을 보여줬는데, 마치 학부모 학예회 초청무대를 보는 듯하여 마음이 뭉클했다고 하면 오버일까. 사실 연애할 때, 우리 집 앞 주차장에서도 한번 시범을 보였던 적이있다. 이런 순수한(?) 모습에 내가 반했었지. 지금도 내가 그에게 가졌던 이런 순수한 감정을 되 살려주는 남편에게 감사하다. 철없이 순수한 남편의 모습에 감동인지 혹은 분노인지 모를 눈물을 찔끔거리긴 하지만, 그날의 촬영은 나의 앵그리모드 없이 무탈히 지나갔고, 그에겐 태권도 도복을 입은 멋진 한강고수부지를 배경으로 한 사진이 추억으로 남았다.
Silent Disco가 한강에 떴다며, 남편이 저녁에 나가자고 성화다. 오전에 친정집 나들이를 한 상태라 몸이 노곤하여 나가기가 세상 귀찮아, 대답없이 그냥 컴퓨터 화면만 보고 앉아있었다. 남편은 저럴 줄 알았다는 표정으로 저 변덕을 누가 감당하겠냐며 혀를 끌끌 찬다. 컴퓨터 화면을 5분정도 바라봤을까, 순간 답답해져서 츄리닝을 대강 챙겨입었다. 여보 나가자! 남편은 눈을 동그랗게 뜨며 어머 왠일이야 와이프?하며 쫓아 나온다. 한강고수부지에서 무선해드셋을 대여하고, 디제이 남동생님들의 아름다운 얼굴을 감상하며 무상무념에 젖어 무릎관절 탈골이 올때까지 장장 3시간을 쉬지 않고 흔들어댔다. 남편은 나와 둘만의 산책으로 카테고리화 했는지, 핸드폰을 들고 나오지 않았다. 그래서 나의 핸드폰을 잠깐 대여해드렸다. 해드셋에서는 "이따가 반납하실 때, 줄이 길어서 힘드니까, 지금 3분전이에요! 반납 미리 서둘러 주세요." 하는 소리가 세어 나와 해드셋을 벗어 반납하는 줄에 섰다. 탈골 되려는 무릎을 부여잡고 간신히 집으로 돌아와 침대에 누워 찍은 사진을 열어봤다. 카톡으로 4번에 나눠 그에게 사진을 전송했는데, 한번에 30장까지만 가능하다는 사실! 그 중 8할은 남편 셀카였다. 우리 남편만큼 자신을 사랑하면 인생이 너무 사랑스러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