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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씨리Rhee Nov 14. 2023

커피숖 D, ㅎ, E

나에겐 두 번째 직장이다. 나는 새로운 곳에 적응하는 것을 매우 어려워한다. 그래서 한번 나의 둥지를 튼 곳에서는 웬만하면 움직이기를 싫어하는 성격이다. 그런데, 첫 번째 직장이 문을 닫는 바람에 타의로 떠밀리듯 온 곳이 지금의 직장이다. 새로운 장소, 새로운 사람들, 시끌벅적 새로운 기분도 잠시, 곧 직장이란 역시나 지루하고 재미없는 곳이다. 아침에 사실 이불 바깥으로 나오는 것도 얼마나 힘에 부치는가? 이불 바깥으로 나와서 아침 식사를 대강 하고 옷을 갈아입고 화장을 하고 회사 갈 준비를 한다는 게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런데, 남편과 그리고 딸들까지 준비를 함께 같이 시키려면, 모든 에너지를 다 써야만 한다. 그렇게 가까스로 직장 건물 앞에 도착을 하면, 오늘도 늦지 않았다는 안도의 한숨은 잠시, 오늘은 어떻게 하루를 버텨내야 하는가? 하는 생각에 건물 안으로 선뜻 발이 옮겨지지 않는다.


이럴 때, 잠깐의 숨을 고르기 위해 나는 회사 앞 커피 숍으로 발길을 돌린다. 회사 앞엔 세 군데 커피 숖이있다. 젊은 오빠와 언니가 하는 곳 D. 여기는 교회 건물 1층인데, 시간대가 잘 못 맞으면 새벽 교회 일 나오신 집사님 할머님 할아버님과 함께 예배드리는 분위기가 되어서 성스러운 기분이 들 때도 있다. 젊은 언니와 오빠의 관계는 잘 모르겠는데, 항상 언니가 먼저 나와있고, 오빠는 조금 늦게 어슬렁 거리며 나온다. 이 오빠는 머릴 약간 길었고, 수염을 길렀다가 다 잘랐다가 하는데 여하튼 분위기가 멋있다. 벽 한쪽에 쌓아둔 나이키며, 아디다스 신발로 보이는 상자들은 그 오빠의 것일까 하는 추정을 해본다. 이 언니나 오빠나 둘 다 차분하게 주문을 받고, 커피와 빵을 내어준다. 언제나 커피 사러 오는 내가 기분이 정리가 되고 감사한 마음마저 든다. 아침 토스트를 카야 쨈을 발라 커피와 셑트로 파는데, 카야 쨈을 베어 무는 순간 싱가포르 놀러 간 기분이 들게 하여 순간 환기가 된다. 나랑 친한 언니나 혹은 동생들과 마주치기도 해서 함께 출근 시간을 목전에 둔 우리들을 서로 애도한다. 회사 앞 커피 숖 세 곳 중 가장 넓은 홀을 자랑하는데, 그림이 붙어있는 벽을 등지고 앉아서 오른편을 바라보면,  창 밖 너머에 정갈하게 정돈된 정원수가 날 보며 싱긋 웃는다. 마침 내 앞에 앉아있는 언니나 동생도 커피 한 모금을 하며 싱긋 웃고, 그렇게 서로를 위로하고 숨 가쁜 아침에 작은 쉼표를 찍고, 회사 건물로 향할 힘을 내어준다.


약간 나이 대 있으신 오빠가 하시는 커피숖 ㅎ. 사실 이 커피숖은 세 번째로 이야기할 커피숖 E 자리에 있었다. 그런데 E 자리에 건물 주인 아드님이 들어오시는 바람에 새로 옮겨서 자릴 다시 마련한 커피숖이다. 소문으로는 ㅎ 커피숖이 너무 장사가 잘 되니, 주인이 들어와서 커피숖을 하게 되었다는 이야기도 들렸다. 여하튼 ㅎ은 유일하게 점심에 파니니 등으로 식사가 가능한 곳이다. ㅎ의 샌드위치는 기가 막히게 맛이 좋은데, 내 후배 여자애가 사내 메신저로 내게 "ㅎ 샌드위치 개 맛있음요."라로 외치기도 한 곳이다. (이때 "맛있다"와 + '개'가 함께 합성어가 될 수 있다는게 내겐 꽤나 충격적이었다.) 아침에 ㅎ커피숖에 들어서면 교회 집사님 같은 표정을 하신 나이 대 있으신 오빠는, 손님의 별명!으로 기재된 10개 모음 스탬프를 얼굴만 보고도 찾아주는 대단한 기억력을 자랑하셨다. 제철 과일 주스도 너무나 인기가 좋았는데, 건강과 미용을 신경 쓰는 우리 회사 언니들의 주요 단골이 되기도 했다. 그런데 나는 과일은 주스보다는 아작아작 씹어먹는 게 맛이 좋다. 그래서 그 집은 몸이 무척이나 해비 한 것을 찾을 때, 내 후배애가 "개" 맛있다는 샌드위치가 생각날 때 찾곤 했다.


ㅎ 커피숖을 내쫓고, E 커피숖을 차리신 건물주 아드님 가게를 나는 제일 많이 방문했다. 편리성과 실리성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나에게는, 출근길에 위치한 그곳이 커피를 사고 잠깐의 쉼표를 찍기가 가장 손쉬웠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아드님이 참으로 사람이 둥글둥글 인상이 좋았다. "아! 안녕하세요!!" 그 작은 다섯 평이나 남짓 될만한 공간이 꽉 차도록 인사를 활기차게 하는데, 꼭 앞에 "아!"를 붙이며 인사를 건넸다. 마치 나를 예전부터 알아왔던 사람처럼, 인사받는 내가 친근함이 느껴지도록 말이다. 동글하고 하얀 얼굴의 아! 안녕하세요! 인사를 하는 커피숖 젊은 오빠는 삽시간에 우리 회사 언니들의 인기남이 되었다. 그는 아직 결혼을 하지 않았다고 하니 가능성이 있다고들 말을 했다. E 커피숖 바로 옆에 H 빵집이 생겼는데, E의 아주 가까운 동생이 함께 하게 되었다고 했다. 물론 H 빵집의 오빠도 참으로 젊고 싹싹하고 훈남이었다. E 커피숖 사장님이 며칠간 얼굴이 안 보이는 날이면, 그가 3박 4일 일정으로 부산에 여행을 간 것까지 내 귀에 들릴 정도로 E 커피숖 사장님은 인기가 좋았다.




나의 두 번째 직장은 약간 길을 올라가서 위쪽에 위치해 있었다. 길을 오르기 전 아래쪽에는 초등학교가 있었는데, 내가 9시 출근에 맞춰 회사를 올라가고 있자면, 초등학생 아이들은 9시 등교 시간에 맞춰 초등학교 방향으로 내려가고 있었다. 나와 시간대가 비슷하게 맞아 꼭 마주치곤 하던 여자아이가 있었는데, 이 여자아이 옆엔 항상 백발의 할머님이 함께 하셨다. 내가 평소보다 출근 시간이 빠르거나 늦은 경우를 제외하고는 거의 만났던 것 같다. 두 번째 직장으로 옮긴 지 어느새 5년이 흘러가고, 그날은 비가 추적추적 오던 겨울이었다. 아! 안녕하세요! 의 활기찬 인사를 받으며 E 커피숖에 들러 주문을 하고, 창 밖을 내다보고 있었는데, 어머 그 여자아이다. 그런데, 할머니 손에 이끌려 깡충거리던 여자아이는 어느덧 자라서, 지팡이를 짚은 할머니 손을 잡아 주고 있었다. 정정하게 걸음을 총총거리시던 할머님은 허리가 굽으시고, 비가 오는 거리는 눈에 띄게 불편해 보이셨다.


아침저녁 나는 투덜 대며 출퇴근만 서둘렀을 뿐인데, 이렇게 세월이 흘렀을까. 사무실의 공기는 여전히 멈춰있고, 마음에 안 드는 선배님과, 무서운 후배님의 등쌀에 나는 매일 자유만을 꿈꿨을 뿐인데, 아침 출근길의 여자아이는 어느새 자라 있고, 할머님의 등은 굽어버렸을까? 그러고보니, 이 날 아침의 E커피숖의 젊은 오빠도 나이가 그새 들어버린 것 같다. 아! 시간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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