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루씨리Rhee Nov 16. 2023

명품가방

옷장 안에 들어간 저 가방은 언제 다시 매어보나

우리 친정엄마는 결혼 전에, “야, 내 친구 ***아들은 명품 백을 지네 장모, 와이프 다 사다 줬단다!” 하며 부러워하는 듯한 말씀을 하곤 했다. 실리주의자였던 나와 소박했던 남편은 최대한 결혼 때 서로에 대한 선물을 간단히 했다. 엄마가 원하는 그런 비싼 가방은 없었고, 결혼준비로 나와 남편이 같이 고른 작은 토트백에 엄마는 속이 상해했다. 여하튼 딸내미를 시집보내며 엄마 기준에 맞는 명품 가방은 나중에 아빠가 엄마에게 선물했다. 엄마는 그 가방을 메고 아빠와 비행기를 타고 해외여행을 가며 매우 기분이 좋았다고 했다.  


친구들과의 단체 카톡방에서 알람이 쉴새 없이 울려대서, 핸드폰을 열어보았다. 동영상이 한 개 올라와있는데, 그 아래 댓글에는 "와 결혼기념일 정말 축하해!", "역시 결기엔 명품가방이지!" 등등 어떤 동영상인지 알려주는 이야기들이 빼곡히 적혀있었다. 내 친구 부부내외는 아이들 때문에 결혼기념일도 그냥 지나갈 뻔했는데, 저녁 느즈막히 아웃렛몰에 가서 명품 가방을 하나 사서 날을 기념하기로 했다고 한다. 선물 상자 개봉부터 시작해서 가방을 꺼내어 들고, 어깨에 메고는 내 친구는 친구의 남편을 사랑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보는 장면으로 영상은 끝이났다. 내 눈에도 그 가방이 예뻐 보였고, 나도 하나 갖고 싶은 마음이 생기기 시작했다.


한창 큰 아이를 낳아 육아에 정신이 없던 어느 주말 저녁 날이었다. 분리수거를 하러 나갔던 남편은 갑자기 큰소리로 “여보~~!!!”를 부르며, 정신없이 내게 달려왔다. “여보! 내가 당신을 위해서 명품 가방을 구해왔어!” 득의양양 해하며 그가 하늘 높이 든 손에는 ㄱㅉ의 GC로고를 흉내 내어 프린트가 어지럽게 찍혀있는 짝퉁 가방이 들려 있었고, 누군가 재활용 함에 넣어둔 것을 들고 온 것이다. ’와…… 정말 이 사람은 여자 마음을 이렇게 모르나?’ 명품 가방에 안그래도 마음이 생겼었는데, 이내 실망감이 올라오고 눈물까지 글썽이게 되었다. 그리고는 미간을 잔뜩 찌뿌리며, “당장 도로 안갖다놓을래?!” 온 동네 아파트 단지안의 사람들이 다 들을 수 있도록, 나는 그날 저녁 남편에게 큰 소리를 내었다.


나도 명품 가방이 너무 갖고 싶어졌다. 재활용 분리수거 함에 있는 짝퉁 가방 따위나 메는 그런 여자가 되긴 싫었다. 외식을 최대한 자제하고 집에서 열심히 요리해서 집밥을 먹었다. 그렇게 아낀 돈을 들고 백화점으로 향했다. 세상에, 명품관엔 들어가기도 쉽지도 않았다. 번호표를 받고, 내 차례가 되기까지 기다려야만 했다! 여태껏 나만 명품 가방 하나 못 가졌구나 싶어서, 오늘 가방을 사러 온 내가 뿌듯할 지경이었다. 차례가 되어 명품관 안에 들어갔고, 하얀 목장갑을 낀 점원의 간, 쓸개도 내어줄 것만 같은 서비스를 받으며, 나에게 딱 어울릴만한 가방을 당장 일시불로 카드를 긁었다. ‘와! 드디어 나도 명품백을 가진 여자가 되었다.’


나는 내돈내산으로, 드디어 ㄱㅉ 신상을 들고 다니게 되었다. 금색 광이 번쩍 번쩍 나는 체인을 둘둘 어깨에 메고 다니며, 친정 엄마 앞에 가서는 일부러 가방을 천천히 벗었다, 메었다를 반복했다. 그러나 엄마에겐 너무나 신상이었는지 내가 멘 가방이 명품인지 몰라봤다. 실망이었다. 그런데 친한 언니가 내가 멘 가방을 보자마자 “어머! 너 그걱 ㄱㅉ 가방 아니니?”하고 큰소리로 물어왔다. 나는 털털한 척, “언니 뭘~ 호호호호.” 하고는 아무것도 아닌척 자리를 떴으나, 가방을 멘 내 어깨가 으쓱하고는 하늘로 올라갈 것만 같았다. 그런데, 금색 광이 나는 체인이 문제였나보다. 값 비쌌던 만큼, 체인도 무거웠다. 어깨가 아프고, 괜찮아졌던 목 디스크도 다시 말썽을 일으켰다. 새로 산 가방은 어깨에 메지도 못한 채 품 안에 갖 태어난 신생아를 다루듯, 꼭 끌어 안고 다니는 신세가 되었다.


비싸게 값을 지불하고 사게 된 가방인데, 어쩌지 하는 마음이 들었다. 결혼전 엄마에게 들었던, ‘여자란, 남자에게 비싼 선물 많이 받고 시집가야 행복한거야.’라는 말씀이 내 마음 안에 사실 크게 자리잡고 있었다. 나도 엄마 이야기처럼, 가방받고 사랑받는 여자이고 싶은 마음이 컸다. 이런 내 마음을 함께 생활하는 남편이 모를리 없었다. 재활용 상자에서 명품 비슷한 가방을 일부러 봐뒀다가, 날 위해 가져오는 남편의 앙증(?)맞은 마음을 높이 사주기로 했다. 날 위해 수고스러움을 아끼지 않고 노력하는 모습을 감사해하기로 마음 먹었다. 활용도가 급격히 추락한 내돈내산 가방에 남편이 달리 보이게 됐다.




어느 날, 남편이 퇴근길에 “여보~~!!”하며 집에 들어서서는 두 손을 하늘 높이 들었는데, 한 손엔 아이스크림 박스가, 그리고 다른 한 손엔 아이스크림가게에서 준 무료 에코백이 들려있었다. 그 날부터, 금색 광이 번쩍 나는 체인 달린 가방은 장롱 깊숙이 들어가고, 남편이 아이스크림 가게에서 들고 온 에코백을 매일 애용하게 되었다. 남편은 체인이 달린 묵직한 명품 가방은 체구가 작은 내게 목 디스크가 올 것을 미리 알았나보다. 꿈보다는 해몽이라고 했던가? 소박한 남편은 프러포즈 때에 값 비싼 명품을 살 돈을 아껴 뒀다가 이렇게 기회가 될때, 저녁에 아이스크림을 사오고, 운이 좋으면 무료로 환경 친화적인 에코백도 덤으로 들고 오는 달콤함을 준비 했나 보다.



이전 06화 커피숖 D, ㅎ, E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