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섭지만 이쁜 엄마 좋아
나는 자라면서 친정엄마랑 무척이나 많이 부딪혔다.
유치원에 엄마는 나를 화려하게 차려 입혀 보내셨다. 그 날은 가죽 빨강 바지에 금사가 박힌 리본 블라우스를 입고 등원을 했다. 그런데, 가죽 빨강 바지가 예쁘긴 하였으나, 예쁜만큼 불편했다. 화장실에를 갔는데, 빨간 가죽 바지의 지퍼가 제대로 내려가질 않아서 그만, 바지에 실례를 하고 말았다. 그렇게 바지를 입은채로 하원을 했다. 젖어버린 바지를 그대로 입고 있는 나를 바라보며 엄마는 유치원 선생님들에게 화가 단단히 났다. 그리고 유치원에 전화를 걸었던지, 그 길로 유치원으로 쫓아갔던지 여튼 엄마는 유치원 선생님들에게 따지고 들었다. "아니, 유치원이 뭐하는거에요? 애가 바지를 벗기 어려워하면 선생님이 도와주셔야 할 것 아닌가요?"하고 엄마는 매우 큰소리로 유치원 선생님에게 항의를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런데, 나는 큰 소리를 내는 엄마가 창피했다. 조용히 말해도 될텐대, 왜 엄마는 항상 소리를 지르는걸까?
나는 친구들을 무척이나 좋아했다. 초등학교 4학년때였다. 크리스마스 며칠 앞으로 다가와서 밤 늦게까지 색도화지 위에 여러가지 그림들을 그리고 색종이로 크리스마스 카드를 만들고 있었다. 손가락으로 크리스마스카드를 줄 아이들을 꼽아보며, 몇 장을 만들어야 하나 고민하고 있었다. 그런데, 벌컥 방문이 열리더니 엄마는 "너 맨날 아이들 때문에 속 썪으면서 무슨 카드를 만드니! 카드를!" 나의 순수했던 마음은 엄마에 의해 헝클어져 버리고 말았다. '내가 만들어서 카드를 주겠다는데 엄마가 무슨 상관이람?'이라는 생각은 했지만, 왠지 모르게 아이들이 나의 카드를 좋아하지 않을 것 같았다. 내가 크리스마스 카드를 만들기 위해 이렇게 저렇게 재단하던 색도화지들을 우르르 쓰레기통에 쏟아버리고 말았다. 아이들이 나를 안좋아하는 것 같아서 마음이 무척이나 아팠다. 아이들이 나를 안 좋아하는 건 엄마가 내 친구들을 험담했기 때문이라고 믿기 시작했다.
중학교 시절, 식구들과 뒷산으로 베드민턴을 치러 올라갔다. 더운 여름이었던지라 땀을 뻘뻘흘리며 엄마 아빠와 산을 올랐다. 산을 한참을 오르자 평탄한 평지가 나오고, 베드민턴을 칠 수 있게 네트가 쳐져있는 곳이 나왔다. 베드민턴을 아빠가 공을 던져주면 나는 그 공을 받기 위해 열심히 쫓아다니고 뛰어다녔다. 그런데 바로 옆 네트가 쳐져있는 공간에서는 내 또래로 보이는 남자 아이들이 놀고 있었다. 나는 열심히 쫓아다니고 뛰어다니긴 했지만, 그 남자 애들이 신경이 쓰여서 베드민턴 공에 집중이 잘 안됐다. 그래서 아빠가 던져주는 공을 번번히 놓치기가 일수였다. 배드민턴 치기를 멈추고 산 아래로 다시 내려왔을 때, 엄마가 느닷없이 "아까, 공치는거 봤어? 깔깔깔 ㅎㅎㅎㅎ 옆에 남자애들 의식하느라 조신한 척 하는거 봤어? 호호호호." 나를 놀려 대는 것이었다. 와, 지금 사춘기 한창인 감수성 예민한 딸래미한테 어떻게 저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놀릴 수 있담? 난 그 순간 쥐구멍이라도 숨고 싶었고, 나를 놀리는 엄마가 너무 미웠다.
고등학교 시절 전교 30등까지만 에어컨이 있는 독서실에서 야자를 할 수 있었다. 나는 에어컨이 있는 독서실은 못 들어갔고, 그 에어컨이 있는 독서실에 들어간 이쁜 아이를 친구로 뒀다. 나는 그 친구가 너무 부러웠다. 얼굴도 이쁘고, 날씬하고, 게다가 시험 성적까지 잘 받았다. 그 친구가 공부하는 학습지를 눈여겨 봐뒀다가, 똑같은걸로 엄마에게 시켜달라고 했다. 아마 엄마는 이번엔 성적이 오르려나? 잔뜩 기대를 하고 시켜줬을 텐대. 나는 엄마가 시켜준 학습지를 잔뜩 밀리기만했다. 그리고, 학습지를 쓱쓱 풀어나가는 친구를 부러워만했다. 엄마는 학습지를 쌓아놓기만 한다며 혀를 끌끌 차셨다. 그리고 성적이 안오른다고 항상 타박만 하셨다. 나도 잘 하고 싶은데, 공부는 너무 하기 싫었다. 그렇게 공부도 밉고, 성적 가지고 뭐라고 하는 엄마도 함께 미워져만 갔다.
그런데, 나는 엄마를 매우 동경했다.
엄마가 집을 비우고 외출을 하면 집은 내 세상이었다. 나는 당장 안방으로 달려가서 엄마의 화장대 서랍을 몽땅 열었다. 안방에는 엄마의 화장대를 비롯해 서랍장과 옷장이 셑트로 가득 차 있었는데, 가구들은 모두 검은색 칠을 바탕으로 한 자개장이었다. 노루가 뛰어놀거나 학이 그려져 있거나, 달이 있거나 심지어 용이 하늘로 승천하는 그림들로 가득했다. 여러번 반복되는 이사로 가구도 많이 상처를 입었던 터라, 자개들은 손으로 떼어내면 막 떼졌다. 나와 남동생은 키득거리며 그 자개들을 엄마 몰래 떼내며 놀기도 했다. 나에 의해 몽땅 속을 보인 화장대 안은 엄마의 립스틱과 귀걸이 그리고 그루프들로 즐비했다. 나는 립스틱을 바르고, 귀걸이를 귀에 걸쳤다. 그리고 반짝 거리는 보자기를 어깨에 두르곤 자랑스럽게 엄마의 화장대 거울 앞에 섰다. 신발장을 뒤져서 구두를 꺼내어 대충 구겨 신고 마지막으로 엄마의 핸드백을 보자기를 두른 어깨위에 걸치면 나의 like 엄마 look은 완성되었다. 엄마를 흉내낸 나의 모습을 거울을 통해 바라보고 있으면 뭔가 부족하게 느껴졌는데. 그것은 바로 엄마만의 자신감 넘치는 그 어떤 상대에게도 지지 않는 톤 높은 목소리였다. 나는 아무래도 자신이 없어서, 엄마 look을 하고는 그냥 웃긴 표정을 짓고는 싱겁게 엄마 돌아오기 전에 모두 정리를 했다. 언제쯤 나도 엄마처럼 예뻐질 수 있을까?
초등학교 반장을 하던 6학년때, 엄마는 우리 학교로 1일 선생님으로 오셨다. 엄마는 아래 위 정장을 입고 머리에 예쁜 리본 핀을 하고 분홍색 립스틱을 바르고 오셨다. 우리 엄마는 정말 예뻤다. 우리 엄마가 나의 반에 들어와서 교탁 앞에 서서 이야길 시작하는데 아이들이 너무 떠들었다. 이쁜 우리 엄마 말은 안듣구. 그래서 책상 서랍에 있던 30cm 자를 꺼내어 그 자가 부러져라 책상을 뚜들겨 아이들을 조용히 시켰다. 엄마의 약속된 1일 교사 시간은 끝이 나고, 엄마가 학교를 떠나는데 나는 너무 아쉬웠다. 그래서 엄마를 졸랐다. "엄마, 엄마가 들구 온 빵을 우리 반 아이들에게 나눠 주면 안돼요?" 빵을 나눠주면 아이들에게 나의 예쁜 엄마를 더 선보일 수 있으니까. 그래서 엄마가 조금 더 머물렀다가 갔던 것으로 기억이 됀다. '하... 나는 이렇게 못생기게 낳아두고 엄마는 왜 저렇게 이쁜걸까?' 이 생각으로 나머지 학교 시간을 때웠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