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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씨리Rhee Jan 02. 2024

아빠 뒤를 졸졸졸 2

이제는 엄마가 된 딸 엄마 노릇도 어렵네


[결혼하던 날]


그런데 나에게 만난 지 세 번만에 프러포즈를 하는 남자가 생겼다. 내가 결혼을 하겠다고 우기니, 아빠는 "네가 사랑하는 사람이 생겼다니 축하한다." 이렇게 무표정한 표정으로 말씀하시곤 말씀을 아끼셨다. 그러다가 우연히 엄마와 대화를 나누는 것을 들었는데, "사랑한다는 남자가 생기니, 어떻게 하루아침에 저렇게 돌변을 하는지.." 하며 서운함을 감추지 못하셨다. 아마 아빠가 생각하는 '좋은 남자' 기준에는 많이 못 미쳤던 것 같다. 서운함을 온몸으로 표현하는 엄마를 아빠는 달래며 "여보, 시작할 때 백점이었다가 살면서 50점 이하로 떨어지는 사위보다, 시작할 때 50점이었다가 100점으로 올라가는 사위가 낫다 했어." (우리 집 사위는 50점도 못 미쳤던 것 같다.)


결혼식 당일, 내 손을 꼭 잡고 신부 입장 할 때, 나보다 빨리 걷는 아빠를 난 구박 했다. "아빠 조금만 천천히 걸어요!" 그때도 아빠는 무표정한 어투로 "어 그래 아빠가 발걸음이 빨랐나?" 아무렇지도 않은 듯 그렇게 발걸음을 옮기셨다. 시원 섭섭한 결혼식을 마치고, 엄마와 아빠는 한 동안 캐나다로 베트남으로 중국으로 그렇게 여행을 다니셨다. 가끔은 엄마 아빠에게 서운했다. 나는 결혼하고 애 낳고 직.장. 다닌다고 이렇게 뼈가 빠지는데, 맨날 나에게 자랑하듯 여행 다니고 골프 치는 엄마 아빠가 미웠다.


애를 한창 키우던 무렵, 우리 회사에 희망퇴직이 돌았다. "아빠 나 퇴사할 거야. 희망 퇴직하면 1년 치 넘게 챙겨준데." 전화를 끊기가 무섭게 아빠는 우리 집 앞 식당으로 나오라고 나를 불러내셨다. "안돼. 그만두지 마. 여자는 직장을 더 다녀야 돼. 남자들보다 더 여자에게 직장은 필요해." 나는 또 세뇌되어 희망퇴직을 하지 못하고 울며 겨자 먹기로 회사를 꾸역꾸역 다녔다. 그리고는 아빠를 원망했다. '도대체 왜 이렇게 회사를 다니라는 거야. 아빠는 엄마가 우리 다 키워줘서 당신은 편히 직장만 다녔으면서. 아빠는 맞벌이라는 게 뭔지로 모를 거면서 왜 나에게 직장 생활을 강요하는 거야.' 어린 시절 아빠를 사랑했던 깊이만큼 어른이 된 지금 나는 아빠가 미워졌다.


아빠는 일흔을 넘기시고 코로나에 걸리셨다. 코로나에 걸려서 아빠는 격리된 채, 홀로 음압실에 입원이 되셨다. 그때는 엄마조차도 아빠 면회가 허락이 안되던 때였다. 그렇게 강인하던 엄마는 내게 전활 걸어 펑펑 우셨다. 그러곤 이렇게 말했다. "아빠가 너를 그렇게 사랑했어." 이 순간 많은 생각이 들었다. 아빠가 나를 사랑했다는 이야기는 어려서부터 마흔이 넘도록 주변 사람들에게 계속 들어왔다. 그리고 나도 느껴서 안다. 근데 뭐? 나는 마음에 또 과호흡이 왔다. 아빠가 나를 사랑해 준 만큼 나는 아빠가 해주는 이야기들은 내 신념으로 알고 살았다. '여자도 직장을 다녀야 해' 이 말씀 하나에 나는 과거 20년을 원하든 원하지 않든 직장에 뼈를 묻을 각오로 다녔다. 아빠의 말이었기에, 아빠에게 사랑받는 딸이었기에 그 사랑을 계속 받고 싶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슬슬 아빠가 미워지고, 아빠에게 이만큼 했으면 됐지 않아?라고 묻고 싶어 지기 시작했다. 새벽에 우는 아이들을 떼어놓고 여전사처럼 출근하는 나였다. 열나는 아이들에게 해열제를 먹여달라고 말하고 회의에 참석하는 나는 멋진 커리어 우먼이었다. 그 모든 순간 나는 아빠에게 엄마에게 사랑받고 있다는 확신과 신념을 재차 나 스스로 내재화했다. '이렇게 해야 나는 사랑받는 딸일 거야.'  '회사마저 관두면 나는 이제 사람으로서 가치가 없어.'


나는 생각해 본다. 어제저녁에도 큰애를 껴안고, 오늘 아침에도 작은애를 꼭 안아주면서 '사랑해'라고 속삭여주었다. 그런데, 나는 부모로서 과연 순수하게 정말 아이들을 사랑하고 있는가? 나는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아이들을 구속하고 있지는 않는가? 시험 성적에 나는 쿨한 척, 나는 직장 다니는 엄마로 너무 바쁘니까 너희들 몫은 알아서 하라고 시험 전날 졸려하는 아이 방의 불을 꺼주곤 했다. 그런데, 정작 시험 성적을 받아 오고, 아이들 입에서 나도 알고 있는 아이들 친한 친구들의 이름이 나오면서 백점이고 구십접 이상이라고 하면 묘하게 마음에서 성질이 일어나곤 했다. '왜 너는 그런데 성적이 그 모양이야?'라는 마음이 일어나지만 표현은 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나는 성격이 쿨한 직장 다니는 엄마이니까 나는 아이들 성적 따위에 집착하지 않기로 했으니까. 하지만 마음 한 켠에서는 '내가 뼈 빠지게 직장 다니면서, 학원비 대주고, 시터 할머니 집에 있게 해 드리고, 왜 공부를 이것밖에 못하는 거야?'라는 생각이 물밀듯 밀려온다. '나는 울 엄마처럼 무식하게 소리를 꽥꽥 지르지도, 밤에 잠을 못 자게 하지도 않는데? 심지어 사랑한다고 표현도 잘해주는데?' 이게 진정한 사랑인 걸까? 오은영박사님이 이렇게 말씀하시지 않았던 것 같은데.


나의 아빠에게 진하게 받았던 가끔씩은 과호흡이 왔던 사랑에 나 또한 우리 아이들을 진하게 물들이고 있는 건 아닌지 돌아보게 된다. 과연 아이들을 있는 그대로 사랑한다는 것은 무엇일까? 대가 없는 사랑을 진정 나란 존재가 할 수 있긴 한 걸까? 자신이 없다. 그리고 나중에 우리 아이들이 자라서, '엄마 때문에 내가 이러고 사는데!!'라고 말이나 안 들으면 다행일 거 같다는 생각을 한다.


나는 아이들에게 말했다. "스무 살 되면, 성인이니 이때부터는 용돈을 벌고 생활비를 엄마에게 내놓아." 첫 째는 듣는 둥 마는 둥, 둘 째는 "엄마 너무 서운해요! 선물은 사드려도 생활비는 못 드려요!" 가만 듣자니 이 말도 맞는 말인 건 같다. 여태 어화둥둥 내 사랑 키워놓고 스무 살 되어서 단번에 태세를 바꾸어 생활비를 내놓으라고 말을 하겠는가? 딸 노릇하느라 과호흡이었던 나는 엄마 노릇하느라 머리가 다 빠졌다. 뭐 이리 인생살이가 어렵고 힘이 든 건지? 나 좀 쉬고 싶다.


사랑은 사랑하는 자가 없다.

사랑은 신의 마음인 수용이 사랑이라.

Man does not have anyone whom he loves.

Love is acceptance which is God's mind.

This is what love is.

-Woo My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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